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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 듣다 9
작품해설 174 작가의 말 195 |
李柱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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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피나무 몸통으로 깎아 나를 만든 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은 나를 만들자마자, 정확히 말해 내 큼직한 두 귀를 깎아내자마자 말에 굶주렸던 사람처럼 갈급하게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러려고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요. 그 사람이 쉬지 않고 들려준 이야기는 작지만 나뭇결이 치밀하게 들어찬 내 몸통 갈피갈피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나무가 영양분과 수분을 저장하며 살아가듯 나는 이야기를 빨아들이며 살아갈 운명이었으니까요.
--- p.12 * 오늘이 며칠인가? 계절이 언제인가? 밤바람이 이리 보드라운 걸 보면 봄이 아닐까. 그러나 목수는 아직 봄꽃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그새 봄꽃이 모조리 떨어진 건 아닐까. 그렇다면 목수는 봄을 빼앗긴 게 아닐까. 도무지 계절을 감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철모르는 철부지, 그게 바로 목수였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훌쩍 지난 지도 한참인데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귀신은 등에 업힌 이 작은 몸이 아니라 목수 자신이었습니다. --- p.49~50 * 꼭두들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양도 자세도 표정도 전부 달랐지만 오직 한 가지, 망자를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산 자들의 지극한 마음이 담겨 있는 점은 똑같았습니다. 한마디로 꼭두는 망자의 저승길 동무이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망자를 애도하는 상주였습니다. 망자는 꼭두가 있어서 왈칵 서럽고 두려운 저승길을 그나마 견디며 건너갔을 것입니다. --- p.69 * 코도 입도 손발도 없이 그저 큼직한 귀와 가느다란 눈, 원통형 몸이 전부였지만 목수는 흡족했습니다. 이 모습만으로 꼭두 하나가 완성되었습니다. 목수도 처음 깎아본 모양의 꼭두였습니다. 그저 온몸으로 귀를 기울이는 일이 전부인 단순하고 밋밋한 꼭두. 이런 꼭두라면 화려하게 채색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입이라도 뚫어줄까, 목수는 잠깐 생각했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습니다. 입을 만들고 나면 꼭두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지 겁이 났습니다. 꼭두가 자신을 향해 빙긋 웃는다면 사랑했던 이의 부재만 떠올릴 것이고 냉담한 얼굴을 보인다면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만 심하게 도질 것 같았습니다. 목수는 꼭두의 어떤 표정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 p.94 * 아비의 물건 중 딱 하나 도시로 챙겨 온 것이 있소. 아비의 머리맡을 오도카니 지키고 있던 작은 꼭두. 그 꼭두는 그동안 아비가 만들어온 꼭두와는 모양새도 빛깔도 한참 달랐소. 아비는 꼭두의 동작도 표정도 생생하게 깎기로 유명한 목수였소. 사람들은 아비가 만든 상여를 볼 때마다 그 화려함과 생생함에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소. 그런데 아비 곁을 지킨 그 꼭두는 커다란 두 귀와 갸름하니 작은 두 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소. 몸통도 밋밋한 원통형 그대로였소. 색깔도 칠하지 않은, 언뜻 보면 만들다 만 습작품 같았지만 나는 알았소. 그 꼭두는 그 모습 자체로 완성이라는 것을. 큼직하게 열린 두 귀와 작은 두 눈도 전부 아비가 의도한 바였다는 것을. --- p.107~108 * 오메, 살다 살다 입 없는 꼭두는 처음 보네잉? 입이 없으면 무슨 일을 했단 말이고? 신참! 입 없이 그동안 무슨 일을 했당가? 입이 없으니 대답을 못 하잖아. 하이 참 답답한 거! 입이 없이 귀만 큼직허니 무슨 일을 했을꼬? 듣는 일을 했겠지! 듣는 게 일이가? 일이지! 그렁가? 글치! 하! 듣는 게 일이라면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는 니가 세상에서 젤로 불쌍타! --- p.144 * 그대, 내 귀에 대고 죄를 속삭였다면, 그리하여 죄의 무게가 돌멩이 하나만큼이라도 줄어들었다면 부디 자비를 베풀어 당장 내 귀를 잘라다오. 뭉텅 자를 용기가 모자란다면 한밤의 생쥐처럼 붉은 개미처럼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내 귀를 갉아다오. 쏠아다오. 용서를 구하는 자여, 나 역시 용서를 구하노니, 제발 내 귀를 없애다오.’ --- p.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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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상실의 시간을 건너
세상의 아픔을 묵묵히 들어온 '큰귀' 꼭두가 전하는 고요하고 묵직한 위로와 용서 “치밀함과 신선함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주혜는 “엄정한 사유와 섬세히 벼린 언어로 우리 사회의 여성현실을 예리하게 탐색”했다는 평을 받으며,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세 권의 소설집과, 네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며,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탄탄한 소설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는 이주혜는 과거, 받아들이지는 못한 존재나 시간을 현재에 마주하며 ‘기억을 다시 쓰는 행위’를 통해 다양한 관계를 그린 전작에서 진일보해, 이번 신작에서는 그들 내면의 깊이 박힌 고통을 시대적 아픔과 함께 확장된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목수는 출산 중 아내를 잃고, 홀로 남겨진 딸마저 방치한 채 깊은 비통과 상실감에 빠져 지낸다. 오랜 방황 끝에 겨우 정신을 차린 목수는 아내와 마을 사람들을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 상여를 만들고 죽은 이를 위로하는 나무 인형 ‘꼭두’를 정성껏 깎기 시작한다. 성인이 된 목수의 딸 순주는 아버지를 떠나 도시의 공장으로 보내지고, 홀로 남은 목수는 입은 없고 귀만 커다랗게 달린 기이한 모양의 ‘큰귀’ 꼭두를 만들고, 자신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목수는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고, 아비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집에 내려온 순주는 큰귀 꼭두를 챙겨 가지만 비극적인 사건으로 순주마저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또 홀로 남겨진 큰귀 꼭두는 순주의 방을 떠도는 혼령들과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묵묵히 듣는 존재가 된다. 훗날 순주의 고향 동생이었던 선자의 손을 거쳐 한 갤러리 특별전에 전시된 큰귀 꼭두를 마주한 미술평론가(나순원)는, ‘듣는 꼭두에게 죄를 속삭여 죄의 무게가 줄어들었다면 부디 자비를 베풀어 당장 그의 귀를 잘라다오’ ‘그럴 용기마저 없다며 가엾은 그의 귀 앞에서 입을 잠시 다물길’ 권한다. 그 어느 것도 온몸으로 고통을 들어주는 꼭두의 아픔보다 더한 아픔은 없다고 하며 관람객들에게 고해와 용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기를 권한다. “내 귀를 잘라다오. 나를 놓아다오.”(172쪽) 어쩌면 꼭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눈치도 없는 그런 아이로 자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꼭두의 절규는 애도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산 사람’의 한이자 이야기의 영혼들이 떠나고 혼자 남은 이야기꾼의 외로움이기도 하다. 『꼭두, 듣다』는 그간 작가가 보여줬던 ‘기억의 서사화’를 현대사와 접목하며 한 발 더 나아간다. ‘이야기의 이야기’를 향한 이주혜의 실험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강도희(문학평론가) 표4 기쁘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번잡하거나, 무탈하거나 괴롭거나, 나는 지금 듣고 있습니다 꼭두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독자는 이제 소설을 덮으며 누군가의 꼭두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독자 역시 듣는 이이고, 누군가의 꼭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엿본 우리의 몸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듣고 말하는’ 자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듣는 일은 종종, 들려주는 이의 고통마저 내 몸에 감내시킨다. 그것을 통과한 내 몸은 다시 그것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내지 않을 수 없다. 너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그녀/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김미정, 작품 해설 중에서 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딱 한 마디로 대신하고 싶었다. 파주에서 처음 만난 후로 국립민속박물관 본관에서, 또 연희동의 어느 편집숍에서, 서촌의 작은 갤러리에서 꼭두와 여러 차례 마주쳤지만, 소설 속 ‘큰귀’는 실제로 본 적 없는 꼭두다. 어쩌다가 큰귀가 내게 찾아왔을까? 내 이야기를 속속들이 전할 수 있는 귀가 필요했을까? 아니면, 마지막의 큰귀처럼 나 역시 듣는 일이 고통스러운 걸까? 아직 답은 당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한마디는 분명하게 전할 수 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번잡하거나, 무탈하거나 괴롭거나, 나는 지금 듣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