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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때로는 유쾌하게 환기되는 이런 내면의 공포를 갈갈이 찢기고 잘린 자신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 ‘스토리텔링’으로 드러내 보였다. 카프카의 작품에는 독자와 공유할 뚜렷한 세계관도, 지배적인 철학도 없었다. 오로지 보통 이상으로 예민한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어지러운 이야기가 있을 뿐이었다. 그의 작품에 스며 있는 ‘분위기’를 굳이 얘기하자면, 뭐라고 꼭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현대 문화의 ‘도살자들’은 그를 하나의 ‘형용사’로 변모시켰다.
우리 시대의 어떤 작가도, 아마도 셰익스피어 이래로 그 누구도, 이토록 폭넓게 과잉 해석되면서도 뒷전으로 미루어진 적은 없을 것이다. 그를 장폴 샤르트르는 실존주의 작가라 주장하고 카뮈는 부조리주의 작가로 보았으며, 그의 평생 친구이자 편집자인 막스 브로트는 몇 세대의 학자들에게 그의 우화들이 도달할 수 없는 신의 존재를 추구하는 정교한 탐색 과정의 일부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의 소설 『소송Der Prozess』과 『성Das Schloss』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은 권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까닭에 ‘카프카스럽다’(kafkaesque)는 말은 대단히 효율적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서양 세계에 전해준 얼굴 없는 관료 조직과 연관되기에 이르렀다. 어쨌거나 ‘카프카스럽다’는 카프카의 많은 작품에 얽혀 있는 난해한 유대식 농담은 무시한 채 불운과 우울에 관한 판타지들과만 뗄 수 없게 결합되어 버린, 우리 시대에 거의 신화적인 몫을 떠맡고 있는 형용사이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