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정해영의 다른 상품
|
"삶에 의미가 없을수록 좀더 완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희망의 부재는 부조리한 인간을 미래에 관한 모든 환상으로부터 해방시켜서, 그는 비로소 “사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모험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모험’이라는 핵심적 단어에서 카뮈의 기묘한 ‘희망 없는 낙관주의’가 엿보인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궁극적인 자유가 위세를 떨치는 것이다. 카뮈는 이제 부조리한 인간의 행동들을 묘사하기 위해 몇 가지 모델들을 소개한다. 이 모델들은 다소 자의적인, 카뮈 자신의 성격상의 여러 측면들로 보이며, ‘철학적’이기보다 ‘문학적’인 측면이 크다. 따라서 『시지프의 신화』에서 이 부분은 지극히 모호하고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카뮈는 정복자와 예술가와 더불어, 이런 각각의 모델들은 자신의 행동이 헛된 것이고 어떤 미래도 없음을 알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모험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카뮈의 중요한 부조리 영웅들 중 하나는 『모비딕』에서 흰 고래를 쫓는 에이허브 선장이다.)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왕국 없는 군주이지만 “모든 왕국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들은 ‘모든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이요, ‘명쾌한 무관심’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카뮈에게 궁극적인 부조리 영웅이자 아마도 그의 책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의 핵심은 신화 속 인물 시지프이다. 신에 대한 경멸과 죽음에 대한 증오, 삶에 대한 열정 때문에 신들에 의해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리고 올라갔다가, 그것이 굴러 떨어지면 다시금 그 임무를 시작하도록 운명지어진 인물이다. 카뮈는 시지프가 언덕을 내려가야 하는 ‘중단’의 순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때가 시지프가 자신의 운명을 의식하고 수용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카뮈로서는 시지프에게 성공의 희망보다 더한 고통을 상상할 수 없다. 자신의 노고가 무의미함을 아는 것이 정확히 시지프의 힘이다. 시지프에게는 조금의 희망도 없지만, 그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임무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에게 부과된 고통을 계속하기로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 그는 부조리한 인간이 된다. 그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다. 따라서 우주에 어떤 통제력이 없다는 것이 긍정적인 요인이 된다. 시지프는 또한, 은유적인 의미에서, 돌덩이처럼 육중한 나치 점령의 무게에 짓눌린 프랑스이기도 하다. 동시에 인류를 죽음에서 구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카뮈에게 완벽한 상징적 영웅이다. “정상을 향한 몸부림 자체로 한 인간의 가슴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