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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족의 탄생!
임동헌을 처음 만난 것은 『섬강에 그대가 있다』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렇게 첫 만남을 가졌다. 그 뒤 『민통선 사람들』과 『기억의 집』을 읽으며 그가 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엿보았다. 독자가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보듯 작가 역시 글쓰기를 통해 또 다른 세상과 만날 것이다. 그의 소설 쓰기는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로 이어졌다. 에세이와 여행 안내서에서 디카 특강에 이르기까지 두루 펼쳐진다. 참 세상을 다양하게 들여다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형식이든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건강한 사람이 갖는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는 동화다. 처음 썼다는 이 동화를 통해, 그가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이로 하여금 어떻게 세상을 보도록 하는지 살펴보자.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 중 책읽기가 있다. 그러니 동화를 쓰는 작업이란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 주는 일이 되므로 작가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이 작품은 수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수지는 독일에 다녀온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빠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집에 도착해 보니 집안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아빠와 단둘뿐이었던 집안에 새엄마에 아기까지 생긴 것이다. 아빠에게 엄마 대신으로 주려던 인형은 주인을 잃어버린다. 수지가 아빠한테 주려던 것은 큰 인형과 손을 데지 않는 냄비였다. 이 두 물건은 엄마를 대신하는 것이다. 즉, 아빠에게서 엄마까지 기대해야 하는 수지의 내면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수지가 모르는 사이 이미 엄마를 대신할 새엄마가 생겼고 거기다 동생까지 생긴 것이다. 새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만남이며 일상을 깨는 변화다. 더구나 돌아간 엄마를 기억하고 있는 수지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수지는 이 모든 변화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형편이다. 수지에게는 큰 위기였다. 그러나 작가는 이 간극(사이)에 완충 지대를 마련해 놓았다. 그것은 바로 수지의 성장이었다. 새엄마의 존재를 알기 전에 수지는 조금씩 자랐다. 아빠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 갔고 직접 라면을 끓여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스튜어디스의 도움이 있기는 했지만 혼자서 독일까지 다녀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지는 조금씩 성숙해 나갔고 새로 생긴 가족을 받아들일 만한 가슴을 갖게 된 것이다. 동화는 동심을 바탕으로 창작된 이야기다. 또한 주된 독자 대상이 아이들이다. 그러므로 작품에 형상화된 아이의 시선을 통해 조화와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 이 작품 역시 수지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화해를 만들어 낸다. 아빠에게 주려던 냄비를 새엄마에게 내민다. 새엄마는 아빠가 부분적으로 맡았던 엄마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며 냄비에 라면을 끓여 준다. 작은 행동으로 비치지만 수지에게는 새로운 길로 나가는 첫걸음인 셈이다. 그래서 수지의 눈물이 값진 것이다. 새엄마와 수지가 교류하게 되는 이유는 아빠 때문이다. 수지가 아빠를 ‘아기’ 같다고 느끼는 그 순간, 새엄마를 ‘엄마’라고 부른다. 이로써 수지는 새엄마와 소통하게 된 것이다. 서로 눈길을 주고받는 행동으로 소통은 시작되었다. 일방적으로 수지를 키워야 하는 엄마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수지에서 벗어나 서로 소통이 되는 건강한 관계일 때 새엄마와 딸은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아빠를 향한 공통의 눈이 마련됐다. ‘가족’이라는 형태는 다양하다. 이제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만을 한정시키지 않아야 한다. 수지네 가족 역시 새로 형성된 가족이다. 새엄마와 수지는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지만 아빠와 여동생으로 인해 단단히 맺어진다. 수지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새로 맺어진 가족 형태를 부끄러워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을 내세워서 임동헌은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부끄러움이나 단점이 아닌 새로운 형태일 뿐이라는 주장을 작품에 녹여 낸 것이다. 눈을 돌려 보면 정말 많은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한 부모 가족, 조손 가족, 재혼 등으로 맺어진 가족, 입양 등으로 맺어진 가족 등 다양하다. 다양한 가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주인공 수지가 당당하게 자라 가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특별히 살갑게 굴거나 배려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다리 펴고 편안히 앉도록 하는 사람. 이 작품을 쓴 작가도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이 작품도 편안히 읽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사진을 찍는 그를 보았다. 카메라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다른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있었다. 한쪽이라도 편하면 좋으련만 끝까지 가방을 벗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균형 잡기 위해서란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절제된 감정과 딱 알맞은 관계 맺기가 합해져서 반짝 빛날 무엇인가를 또 만들어 낼 것이다. 이 작품을 덮으면서, 수지보다 수지 아빠의 뒷날이 자꾸만 궁금해진다. 어쩌면 수지 아빠의 성장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수지 아빠를 어쩌면 좋을까. - 양연주(동화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