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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해제 : 노자라는 책과 사람과 사상 일러두기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 제71장 제72장 제73장 제74장 제75장 제76장 제77장 제78장 제79장 제80장 제81장 참고문헌 찾아보기 |
老子,노담(老聃), 태사담, 본명: 이이(李耳), 자: 담(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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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번역 ‘결정판본’ 작업의 성과물
국내에 『노자』 번역본은 수십 여 종에 달한다. 여기에 또 한 권의 『노자』 번역본을 출간하는 것은 이른바 “결정판본”의 필요성 때문이다. 즉 ‘정통’ 번역에 따른 결정판본이 반드시 존재해야 노자사상의 원류(原流)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노자』와 같이 함축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판본의 존재는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노자 사상인지를 파악하기가 무척 힘든 형편이다. 중국 및 조선시대의 다양한 주석서를 바탕으로 노자 사상의 근간을 파헤쳐 최근 들어서는 노자 사상에서도 정치철학적 내용이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음을 밝히는 연구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노자 사상의 근간이 되는 『노자』 책의 정본(正本)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1993년 중국 후베이성 형문시 곽점(郭店) 1호 초묘(楚墓)에서 발견된 이른바 “죽간본” 『노자』는 지금까지 볼 수 있던 『노자』 가운데 가장 이른 전초본(傳抄本)이다. 즉 이 죽간본 『노자』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인 것이다. 그러나 1973년 후난성 창사 마왕퇴(馬王堆) 제3호 한묘(漢墓)에서 발견된 백서본(帛書本) 『노자』 역시 노자 사상 연구에 큰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판본에는 허사(虛詞)가 많은 점이 노출되기도 했다. 또한 익히 알려진 주석본으로 “하상공본”(河上公本) 『노자』와 “왕필본”(王弼本) 『노자』 역시 존재한다. 흔히 노자 사상은 이 두 판본에 의거해 기본적인 틀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즉 앞서 발견된 판본들 역시 노자 사상 연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다주었지만, 학계에서 정통으로 인용하는 판본은 하상공본과 왕필본인 것이다. 두 판본의 차이점을 말한다면, 하상공본 『노자』가 주로 양생(養生) 방면에서 노자 사상을 발휘했다면, 왕필본 『노자』에서는 주로 현리(玄理)의 측면에서 노자 사상을 발휘했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상공본은 민간에서 많이 읽혔고, 왕필본은 사대부 쪽에서 많이 읽힌 듯 보인다. 이외에도 『노자』에 대한 다양한 주석서가 존재한다.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노자』 주해서가 존재했으니, 율곡 이이의 『순언』(醇言)을 비롯해 박세당, 서명응, 홍석주, 이충익 등의 주해서가 남아 있다. 비판정신을 근간으로 유학(儒學)을 새롭게 하다 노자의 사상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유’(有)와 ‘무’(無)의 사상을 언급하기도 한다. 중국의 정치가 왕명(王明, 1904~74)에 따르면, “『논어』 반 권이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했고, “『노자』 반 권이면 천하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곧 유학이 그동안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윤리ㆍ도덕과 정치ㆍ교육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면, 노자 사상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도가(道家)의 비판정신이 끊임없이 유학을 새롭게 해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