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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
양장
신정일
생각의나무 200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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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와 산책

책소개

목차

1. 제 1구간 낯선 곳에서 길을 물을 사람도 없다
1일 강물이 흐르듯 내 마음도 따라 흐르고
2일 길을 물을 사람도 없는데
3일 청량산 자락을 흘러가는 낙동강

2. 제 2구간 흐르는 저 강물 천리를 흐르는데
4일 안동댐을 지나 병산서원으로 가는 물길
5일 작살로 찔렀다 하면 은어가 올라오고
6일 하회 앞에서 물은 휘돌아간다

3. 제 3구간 시간이 있거든 강물을 보고 배우시게
7일 한 배를 타고 세 강을 건너던 삼강 나루
8일 두 갈래 길에서 흔들리는 내 마음
9일 비를 맞으며 걷는 강길

4. 제 4구간 한가함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
10일 내가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11일 정암 사공아, 뱃머리를 돌려라
12일 길은 없다, 그러나 길은 있다

5. 제 5구간 낙동강은 그래도 낙동강이다
13일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라

저자 소개 1

辛正一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 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었다. 2010년 9월에는 관광의 날을 맞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을 만든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독학으로 문학·고전·역사·철학 등을 섭렵한 독서광이기도 한 그는 수십여 년간 우리 땅 구석구석을 걸어온 이력과 방대한 독서량을 무기로 《길 위에서 배운 것들》,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섬진강 따라 걷기》,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전3권), 《낙동강》, 《신정일의 한강역사문화탐사》,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 60여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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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3월 2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56쪽 | 1153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4982321

책 속으로

옛시절의 낙동 나루는 영남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용무를 보러 가거나 과거 보러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중요한 길목 중 하나였다. 경산, 영주, 영천, 대구 등지에 사는 사람들을 상주를 거쳐 영동으로 빠지거나 상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 괴산으로 가는 길밖에 없었고 죽령을 넘는 사람들은 안동 영양 일대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보러가던 사람들은, 죽령을 '죽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에 넘지 않았고 추풍령 또한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말 때문에 넘지 않았으므로 문경새재나 계립령을 넘어 서울로 갔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상주를 거치는 사람들은 낙동 나루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이 나루가 안동 아래쪽의 낙동강 나루로는 가장 큰 것이었는데 이곳에서 20리 쯤 아래로 떨어져 있는 선산군 도개면 신림동에 '일선교'가 놓인 1967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 나루에 뜸해지기 시작했다. 근처 주민들이 관공서에 진정을 해 이곳에다 '낙단교'를 세우기로 했으나 다릿발 여섯 개만 세운 채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그 뒤 국회의원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이 저마다 다리를 완공시키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왔지만 선거만 끝나면 그만이어서 '선거 다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pp. 23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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