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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1구간 낯선 곳에서 길을 물을 사람도 없다
1일 강물이 흐르듯 내 마음도 따라 흐르고 2일 길을 물을 사람도 없는데 3일 청량산 자락을 흘러가는 낙동강 2. 제 2구간 흐르는 저 강물 천리를 흐르는데 4일 안동댐을 지나 병산서원으로 가는 물길 5일 작살로 찔렀다 하면 은어가 올라오고 6일 하회 앞에서 물은 휘돌아간다 3. 제 3구간 시간이 있거든 강물을 보고 배우시게 7일 한 배를 타고 세 강을 건너던 삼강 나루 8일 두 갈래 길에서 흔들리는 내 마음 9일 비를 맞으며 걷는 강길 4. 제 4구간 한가함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 10일 내가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11일 정암 사공아, 뱃머리를 돌려라 12일 길은 없다, 그러나 길은 있다 5. 제 5구간 낙동강은 그래도 낙동강이다 13일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라 |
辛正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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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시절의 낙동 나루는 영남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용무를 보러 가거나 과거 보러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중요한 길목 중 하나였다. 경산, 영주, 영천, 대구 등지에 사는 사람들을 상주를 거쳐 영동으로 빠지거나 상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 괴산으로 가는 길밖에 없었고 죽령을 넘는 사람들은 안동 영양 일대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보러가던 사람들은, 죽령을 '죽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에 넘지 않았고 추풍령 또한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말 때문에 넘지 않았으므로 문경새재나 계립령을 넘어 서울로 갔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상주를 거치는 사람들은 낙동 나루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이 나루가 안동 아래쪽의 낙동강 나루로는 가장 큰 것이었는데 이곳에서 20리 쯤 아래로 떨어져 있는 선산군 도개면 신림동에 '일선교'가 놓인 1967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 나루에 뜸해지기 시작했다. 근처 주민들이 관공서에 진정을 해 이곳에다 '낙단교'를 세우기로 했으나 다릿발 여섯 개만 세운 채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그 뒤 국회의원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이 저마다 다리를 완공시키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왔지만 선거만 끝나면 그만이어서 '선거 다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pp. 239~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