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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인은 사막의 시인이자 우주의 시인이다. 시집 『오브제를 사랑한』은 모래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뛰어난 상상력이 펼쳐지는 유감없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시는 어린 말들이 처음 눈뜨는 광야를 치달려 가기도 하고 야생의 눈빛으로 그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지구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그의 상상은 덧칠된 세상의 시간을 지우며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생멸의 시간을 영원의 시간으로 바꾸고자 하는 치열한 탐구의 발로이기도 한 것인데 그는 이를 위해 행성의 극지까지 찾아가 구름의 방정식을 생각하는 상상으로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유창한 말의 자유로운 구사, 거침없는 행간의 운용, 자신의 어법에 대한 자신감 등이다. 그의 시는 지금 갈기에 붙들린 바람이 말의 잔등을 치며 별의 가장자리로 달리고 있다. 이 시집에서 우리는 극한을 치달리는 상상력과 활달한 말의 다중성을 형상화시켜 불가사의한 생의 비의에 자신을 투척한 한 시인이 맞닥뜨리게 되는 비극적 운명의 황홀을 맛볼 수 있다. -최동호(한국시인협회장·고려대 명예교수) 김추인에게 시는 생명의 꼬투리에서 발현된다. 자신의 뜰에 만발한 꽃들에서 온다. 바닷물 속 못생긴 쒼벵이에게서 온다. 지구별의 사막과 고원에서, 저 하늘 바깥을 떠도는 소행성과 명왕성과 까마득한 우주 저편 암흑에서 온다. 그리하여 삶은 이 세속 세계의 속된 원리에서가 아니라 가까우면서도 멀고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생명과 사물의 원리 속에서 찾아진다. 사막의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처럼 반짝이는 시어들, 별들사이를 흘러가는 사유의 리듬. 유장한 상상력을 지닌 시인으로 그의 시는 자신의 내적공간을 어떤 누구보다 치열하게 실천적으로 펴 나가는 시인이다. 이 사람을 보라. 여기, 삶이라는 사막에 투명하리만치 말간 생명의 샘 하나를 퍼 올리고 있는 시인, 사막의 유목민처럼 자유로운, 그 낮만큼 뜨겁고 그 밤만큼 서늘한 시의 가슴이 있다. -방민호(시인·서울대 교수) 부활을 향한 존재론과 시학 “더 쓸쓸하고 더 고통 받아라. 내 시의 영토는 변방, 외로움이 나를 키운다. 결핍의 고통이 창조를 낳으리니 그리하여 고통 그 너머를, 모든 경계의 바깥을 볼 수 있는 시안詩眼의 두 눈알, 움켜쥐고 홀로 달리는 거야. 유레카를 외칠 그날까지.” -김추인의 시론, 「시인의 유레카를 위한 리허설」 중에서 김추인 시인의 시론에 따르면, 외로움과 고독은 시인의 삶의 무게로 더욱 묵직해질 것이다. 또한 그 고통의 무게가 그를 변방으로 내몰고, 사막에 도달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 사막이야말로 ‘유레카!‘(??찾았다!’)를 외치며 ‘아이-되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다. 사막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고독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 사유해야 한다. ‘시간 너머’는 시간과의 긴장 속에서만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막을 꿈꾸는 “호모 노마드”인 김추인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거의 모든 시들에서 이런 팽팽한 시적 긴장을 맛볼 수 있다. 어린 말이 처음 눈뜨던 광야가 있었다 그곳에 가면 내 말이 있을 것이다 풀을 뜯고 초원을 달릴 것이다 야생의 눈빛으로 더 먼 곳을 내다보며 믿진 않았지만 휘파람을 불었다 거짓말처럼 멀리서 흙먼지를 풀며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 모래의 길 하나를 끌고 내 말이 돌아오고 있다 세상을 짚어본 눈빛은 깊고 넉넉하리라 정강이가 튼튼해진 문장, 말의 관절이 유연해 보인다 -「중의적 말의 유목에 대하여」 부분 사막에서의 유목을 통한 ‘아이-되기’라는 김추인 시인의 의지가 표명된 시다. 그렇게 튼튼해진 말들은 “더 먼 곳을 내다보”면서 사막을 가로질러 나간다. 그리하여 시인의 상상은 사막에서 다시 저 우주 공간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그 확장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하늘 바깥의 우주 공간만이 아니라 당신과 나 사이, 몸속으로 내밀하게 열린다. 우주는 모든 ‘사이’의 공간면서 “허수와 실수 사이”의 공간이다. 시인에 따르면 이 “허수와 실수 사이”의 경계란 0, 즉 ‘헛것’이다. 시인에게 시간을 실재하지 않는 헛것으로 만드는 것은 시간과 시간 사이의 경계다(「헛것에 대한 명상」). 김추인 시인은 이 헛것의 존재에 대해 “투과자”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대가 나의 몸을 통과해나갈 때 나는 어지럽고 혼미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그렇다면 사랑이란 헛것에 들르는 상태인 것이다(「내력」). 그렇게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헛것-신기루’는 시인의 삶에 있어 본질적인 무엇으로서, 새 생명은 이 무화되는 치열함으로부터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다. 하나의 씨알이 꽃피려고 만 번을 미워하고 천 번을 사랑한다는 것 -「똥 한 덩이의 오디세이」 부분 시인에게 시쓰기는 해체되고 죽어버린 것에서 생명을 발견하고 재생으로 이끄는 작업이기에, 시인은 다시 죽음과 삶이라는 “경계의 다른 지점”에의 인식으로 나아간다. 하여, 시간의 흐름(죽음)에 거슬러 새로운 시간을 형성(부활)하도록 이끄는 오브제를 발견하는 일은 자연스레 시인의 과제가 된다. 느티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나이테를 읽는 눈 길고 연한 하절무늬와 짧고 촘촘한 동절무늬 사이 아른아른 유리의 길을 따라가며 읽는다 흔들리고 꺾이며 폭풍우와 맞서던 시간을 햇살과 물소리와 눈발 비껴나는 시간을 …(중략)… 초록과 회록 사이에 누가 흔들흔들 가고 있다 언제였더라 부끄러움과 설렘 사이를 거울이 응시하던 풀 내 나는 육체의 남녘은 몹시 흔들리는 반 추상체의 나무 두 그루 -「시간을 위한 거울 오브제」 부분 나이테로부터 현현하는 삶의 시간은, 시인으로 하여금 위의 시 전문에서 “부끄러움과 설렘 사이를 거울이 응시하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뇌실 먼 기억의 빗금 사이”로까지 흘러간 “거울 속 구름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시인은 ‘오브제’를 찾아내게 된다. 위의 시에서 저 “반 추상체의 나무 두 그루”가 바로 시인의 오브제이다. 오브제의 상상력을 통한 삶의 사색은 이 시집의 중요한 한 특색을 이룬다. 시인은, ‘감 씨’에서“꽃의 압축파일”을 찾아내기도 하고 나아가 감나무가 “고염나무였다는 DNA”를 발견하는(「씨앗」)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시적 오브제의 끝까지 파고 들어가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을 이번 시집 속에서 내내 수행하고 있다. 시인의 말 문득 얼떨결에 받은 남의 공처럼 낯설고 놀랍기도 한 오늘에게 가만히 속삭인다. 나는 호모 노마드, 혹시 내가 보이지 않더라도 기다리지 마시라. 길이 없어서 어디나 다 길인 사막 시간 바깥의 어느 낯선 사막에서 나, 신기루놀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