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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상상력, 언어가 닿으려는 그 ‘극적 공간’ 속으로 / 김경주
위대한 유산 ― 리어왕은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보았는가 - 김정환 모퉁이, 당신 / 김근 별을 가두다 / 유희경 교련 시간 / 이영주 에필로그|황인숙 중부식자재할인마트 가격 / 김정환 |
金正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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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그걸로 재벌이 무너지겠나?
노동자4아니죠, 문제는 그것만이 재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고 우리 뒤에도 무언가가 있다는 것, 우리도 무엇의 반영일 뿐이라는 생각이 뚜렷이 든다는 거예요,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죠. 그게 엄청난 힘으로 느껴지고. 사장아아, 도대체 언제 그 전쟁이 끝난단 말인가. 노동자4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게 사장님이 우리에게 남겨 주신 유산인지 모르겠습니다, 재벌과 식구들에게는 남겨 주지 못한 그 어떤 것, 그게 가장 소중한 것 아닙니까. --- p.221 그러고 보니 여긴 골목의 모퉁이군요. 이쪽은 밝고 저쪽은 무척 어둡네요. 내가 이쪽으로 가면 당신 눈엔 보이지 않겠죠? 봐요. 안 보이죠? 자, 이렇게 나오면 다시 보여요. 난 모퉁이 이쪽에 있을 수도 있고 저쪽에 있을 수도 있어요. 당신에겐 내가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죠. 안 보인다고 내가 없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내가 있다는 당신의 믿음이죠. 당신은 이 모퉁이의 밝은 쪽도 어두운 쪽도 선택할 수 있어요. 당신이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해도 모퉁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죠. 달라지는 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내가 아저씨, 아줌마, 처녀, 총각이든, 당신이 소년, 소녀, 노인, 노파여도 상관없어요. 당신이 뭐든 내가 뭐든 지금 필요한 건 당신과 나의 키스뿐이에요. 당신 혹 내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하는 거예요? 내 정체성에 대해서든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든 그런 건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말했잖아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모퉁이는 달라지지 않아요. --- p.235 산장 주인이 잔가지가 별힘 없어 보이지만 말이에요, 결국 나무가 부러지는 건 얘들 때문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란 말이죠. (힘주며) 이 녀석 질기네. 이렇게 미련 같은 거 남기면 이렇게 부러지기가……십상이라고요. 여자그게 무슨 말씀이죠? 산장 주인그렇다고 이렇게……. (꺾는다.) 이제 됐네. 맨손으로 꺾어내면 손에 상처가 생기거든. 이럴 때 생긴 상처가 쓰리기는 또 얼마나 쓰린지. --- p.272 기타 소년소녀 중 둘(혼잣말) 유리관에 가둬놓은 새끼 도마뱀은 유리관 문을 열자마자 썩어버려. 문 밖을 벗어나면 우리 원자들은 돌고 돈다구. 한 번 외부의 공기에 닿으면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는데…… (교실 문을 바라보며) 저 문을 연 적이 있었나. 생각이 잘 안 나네……. 저 문을 열고……우리는 썩은 후에 어떤 성별을 얻게 될까. 나는 어떤 성이 될까. 아주 아주 궁금해. 기다려진다구. --- p.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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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연극을 읽는다!
상상의 블랙박스를 여는 네 작가의 ‘희곡 창작 프로젝트’ 2탄! 요즘 같은 시대에 희곡을 읽는다는 것은 정치적인 퍼포먼스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건 마치 굴삭기의 거대한 삽날로부터 단양쑥부쟁이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 띠를 형성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그게 시인들이 쓴 희곡이라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 김연수(소설가)의 추천사 중에서 이제 연극을 읽는다! ― 이매진 드라마톨로지 제2권 『위대한 유산』 시인들이 희곡을 썼다. 희곡 쓰는 시인 김경주가 김정환·김근·유희경·이영주 등 네 시인의 희곡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전방위적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독자와 소통하고 있는 장정일과 김경주가 나서 여러 작가들에게 희곡 쓰기를 권장했고, 그 결과 ‘이매진 드라마톨로지’라는 이름의 시리즈가 시작됐다. 이 책 『위대한 유산』 은 그 두 번째 책이다. 희곡은 서술적이지 않은 대신 행위의 형식을 모방하는 완성도 높은, 어떤 무대를 예상하게 하는 문학이다. 그런데 희곡은 시나 소설에 밀려 여전히 장르 피라미드의 아래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현실에 문제를 느낀 작가들이 장르의 경계를 넘어 희곡을 쓰고 읽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희곡은 희곡을 쓰는 작가 자신의 표현 양식과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이 희곡집 시리즈를 통해 그런 시도가 이어져 질 좋은 희곡이 더 많이 쓰여질 뿐만 아니라 고립된 문학으로만 끝나지 않고 관객을 앞에 둔 공연으로도 이어짐으로써, 희곡은 희곡으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높여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매진 드라마톨로지는 그런 노력의 시작이다. 시인들이 펼치는 ‘희곡’의 향연, 그리고 숨어 있는 드라마 문학 이력의 첫 줄을 희곡에서 시작하지 않은 작가들이, 매번 해 오던 방식을 제쳐 두고, 희곡도 여러 가지 문학적 표현의 영역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한 가운데, 새로운 표현에 도전하면서 자신만의 시대 인식을 기반으로 해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독자들은 네 시인의 희곡 속에서 ‘아니러니, 풀 수 없는 수수께끼, 끊임없이 증폭되는 모호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도 있고, 브레히트식의 통렬함이나 확고부동한 참여 정신의 한 형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작가 스스로 선택한 ‘중요한 문제’에 관한 여러 가지 상황의 난립과 양립의 다채로움일 것이다. 김정환의 〈위대한 유산 ― 리어왕은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보았는가〉는 한국 사회 민주화의 분수령이자 이른바 ‘87년 체제’라고 불리는 시기의 시발점인 1987년 6월 29일부터 1991년 소련 몰락까지 이어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중소기업 사장, 사장의 세 딸과 세 사위, 그리고 노동자들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통렬하고 꾸밈없는 대사와 함께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모순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시대의 유산이 위대한 까닭은 바로 우리 앞에 놓인 몰락의 잔해를 넘어설 사랑의 힘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김근의 〈모퉁이, 당신〉은 한쪽은 어둠이고 다른 한쪽에는 가로등이 어슴푸레 비추고 있는 어느 모퉁이를 무대로 삼아, 밝은 쪽 모퉁이 벽에 기대 있는 벤치 위에 놓인 가방의 독백을 들려준다. 아무도 없는 빛과 어둠, 그러나 완전한 빛이 아닌 어두운 밝음 속에서 키스를 통해 소통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독자 또는 관객이 어떤 선택을 해도 모퉁이는 달라지지 않고, 또 다른 가방의 독백이 시작될 뿐이다. 소통은 이렇게 수동적인 선택의 종속변수일 뿐이다. 유희경의 〈별을 가두다〉는 고지대에 자리한 허름한 산장을 배경으로 한다. 산이라고 하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산장 주인을 중심으로 갈등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킨다. 비 오고 안개 낀 산장에서 별은 하늘에 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결국 비가 그치고 날은 개는데, 별과 함께 그 산장 속에 가두어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영주의 〈교련 시간〉의 등장인물에는 이름이 없다. 살이 있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무생물에 머물러 있는 이 존재들은, 어쩌면 교실 속에 갇혀 지내는 우리 아이들일 수도 있겠다. 어른이 되고 성별을 갖게 되는 것이 진화인지 퇴화인지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침묵을 깨려는 몸짓을 할수록 독백으로 바뀌는 자신의 말 때문에 절망하는 주인공은 결국 꽉 막힌 교실을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얻는다. 상상력이 질식당하는 시대, ‘숨어 있는 드라마’를 창조하려는 시인들의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시대와 함께 달라지는 작가들의 의식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