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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과 공룡의 벼랑길--전경린
프라자 호텔--김미월 양산 펴기--황정은 결투--윤이형 삼인구성의 가정식 레시피--이홍 시네마--기준영 |작품해설| 우리시대의 서울을 위하여 이경재 |
全鏡潾, 본명:안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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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 6인이 그려낸 여섯 빛깔의 서울
네가 가장 잘 아는 이 도시에서 길을 잃어봐. 거리, 간판, 길고양이, 행인들…… 모두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할 거야. ‘서울’에 대한 다양한 소설적 탐사를 보여주는 테마 소설집 『서울, 밤의 산책자들』이 나왔다. 2009년 출간된 테마 소설집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이혜경 외 8인)의 후속편이다. 이번에 참가한 작가는 전경린 김미월 황정은 윤이형 이홍 기준영 등 모두 여섯 명이다. 19세기 자본주의 발흥기의 대도시 파리를 묘사하면서 발터 벤야민은 대중의 물결에 휩쓸리며 화려한 아케이드 사이를 부유하는 거리 산보자라는 인물 유형에 주목한 바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보들레르의 시에서 그 거리 산보자는 개인과 대중의 경계에서 물신의 도취와 환영(幻影)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는 현대성의 예술적 증인이 된다. 그렇다면 21세기의 메트로폴리탄 서울을 산책하는 우리의 작가들은 이 휘황한 거리에서 어떤 소설적 증언들을 들려줄 것인가.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섯 편의 작품은 각기 독특한 시선과 감성으로 서울의 다층적인 속살을 포착한다. 서울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스무 살 대학 청년의 눈과 십여 년 뒤 그의 진부한 일상의 대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며(김미월, 「프라자 호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섬뜩하고 느끼한 욕망의 하수구로(이홍, 「삼인구성의 가정식 레시피」), 양심이나 자의식 따위는 얼마든지 삭제해버려야 하는 결투장으로(윤이형, 「결투」) 형상화되기도 한다. 동시에 서울은 스스로 백합이 된 인간들이 존재하며( 전경린, 「백합과 공룡의 벼랑길」), 구석진 고단한 삶 속에 시와 노래를 내장하고 있는 곳으로(황정은, 「양산 펴기」) 현상한다. 그리고 무심한 거리의 풍경과 익명의 사람들이 들려주고 상연하는 많은 영화들도 거기 있다(기준영, 「시네마」). 아마도 우리는 이 여섯 편의 소설을 통해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풍경을 넘어 우리 내부에서 숨쉬는 욕망의 원풍경으로서, 낯섦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서울의 이미지와 이야기 속으로 넘어가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소개 전경린, 「백합과 공룡의 벼랑길」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서울의 작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백합과 공룡의 이미지를 통해 아팠던 한시절의 사람들을 돌아본다. “서울은 내게 고도(古都)이다. 추석 연휴에 텅 빈 광화문로를 걸어 남대문을 돌아 을지로로 해서, 종로로 들어가 안국동과 삼청동을 지나, 경복궁 건춘문으로 해서 영추문으로 나왔던 긴 산책은, 생생한 촉감의 꿈처럼 간직되어 있다. (……) 그 후로 서울은 내게 고요한 곳이다. 어떤 소요와 소동과 축제도 빨아들여 정화하는 오래된 폐부를 가진 도시, 그래서 「백합과 공룡의 벼랑길」이라는 아득한 소설 제목이 나왔을 것이다.”--작가의 말 김미월, 「프라자 호텔」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짧은 휴가를 보내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대학 시절, 소설 화자 ‘나’는 (지금은 아내가 된) 윤서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자취방 월세 석 달분에 맞먹는 돈을 모아 크리스마스에 프라자 호텔을 몰래 예약한다. 그날 윤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이야기를 한다면 그녀는 믿을까. 그때의 일을 기억이나 할까. 내가 바로 그때의 나라는 걸, 우리가 그때의 바로 우리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서울의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대학로에서 신촌까지, 삼청동에서 성북동까지, 영등포에서 홍대까지, 그리고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17년 동안 참 많이도 걸어 다녔다. 그간 내 속에 차곡차곡 쌓였던 이야기들 중 하나가 바로 「프라자 호텔」이다.”--작가의 말 황정은, 「양산 펴기」 함께 사는 친구에게 장어를 사주기 위해 구청 앞 바자회에서 하루 동안 양산 팔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의 이야기. 바자회 장터 근처에서는 철거노점상들의 집회가 열리고 호화 청사와 비리 구청장을 비난하는 구호가 들린다. 돌아오는 길 보리개떡을 파는 트럭의 확성기 소리를 버스에서 듣는다. “다른 말도 없이 보리갯 떡 보릿 떡, 하고 반복되는 소리를 노곤하게 듣고 있다가 눈물이 글썽 고인 채로 집까지 실려갔다.” 집에 돌아온 저녁 ‘나’는 종일 양산 아르바이트를 하며 입에 붙은 말들을 잠꼬대로 중얼거린다. “로베르따 어쩌고 이태리 메이커에 제조는 중국산입니다.” 같이 사는 친구가 묻는다. “뭐라는 거야 그거, 시(詩)야?” 윤이형, 「결투」 도시의 삶을 견뎌내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하는 양심과 윤리의 문제를 SF적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계속 분열했고, 분열은 분리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자신과 DNA가 동일한 몸을 처리하기 위해 결투를 한다. 분리체는 평소 사람들이 외면하고 살아가는 양심과 기억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누군가가 흙냄새나 해안선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서 사실은 끊을 수 없는 커피, 끊을 수 없는 음악, 끊을 수 없는 건물들, 끊으면 죽을 것 같은 이 도시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도시에서,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 걸을 때도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혼자 서울을 걸어본 게 언제였을까.”--작가의 말 이홍, 「삼인구성의 가정식 레시피」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사는 한 여자가 실종되고, 그 여자는 비닐하우스촌을 철거하고 유치한 대형쇼핑몰 화재 현장에서 불 탄 시체로 발견된다. 아내를 비롯한 뉴타운 아파트 반상회가 “눈엣가시 취급하던 여자”는 화려한 차림새와 튀는 행동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고 교육센터 유치를 반대한 바 있다. 이후 아내가 차린 식탁에는 느끼한 육류 요리가 계속해서 올라온다. 중산층의 일상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과 불안의 정체를 섬뜩하게 추적해간다. “서울은 605.27제곱미터의 땅을 꽉 채우고 있다가 일 년에 두 번, 삼일 연속 쉬는 날을 맞으면 그 많을 것들을 떠나보내기 바쁘다. 그런 후에, 텅 빈 도로들 위로 흘리고 간 1000만 개의 붉은 가로등이 켜진다.”--작가의 말 기준영, 「시네마」 헤어진 남자친구의 동생과 명동성당 근처를 거닐며 익명의 사람들 속에서 흘러나오는 끝나지 않을 사랑과 이별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서울 거리에는 언제든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뭘 보는데?” “영화. 지금 사람들 이름이 올라가고 있어.” “그 거리의 어느 골목과 대로에 내 진짜 표정을 아무 경계심 없이 지어볼 수 있는 영화관, 박물관, 기도할 수 있는 마당과 누군가 애도할 수 있는 오래된 공간들이 공존한다는 것은 때로 내게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