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춤과 드러냄의 교과서’『진흙 얼굴』 재출간

‘문예중앙시선’의 네 번째 시집으로 송재학 시인의 『진흙 얼굴』이 출간되었다. 지난 2005년 문예중앙시선으로 출간되어 풍성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선보였던 『진흙 얼굴』이 6년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복간된 것이다. 이 시집은 사유는 곧 감각이며, 세계는 무엇보다도 이미지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와 미학으로 세계를 읽으려는’(시집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자서) 송재학 시인의 감각적인 이미지의 시세계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텍스트이다. 치과의사이면서 ‘틀어박혀 시만 쓰는 사람’으로 잘 알려진 송재학 시인은 지난 6년간 특유의 시세계를 구축해 나가며 시집 『내간체를 얻다』(2011)와 산문집 『풍경의 비밀』(2006)을 펴냈고, 2010년에는 「공중」외 시편들로 제25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송재학 시인은 1986년 등단 이후 꾸준히 세상의 존재론적 근원에 의문을 표시하며 깊은 사유를 보여주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진흙 얼굴』은, 문학평론가 박수연(해설「감각의 흐름, 이후」에서)이 밝히고 있듯이 ‘감춤과 드러냄의 교과서’이다. 그는 ‘대상을 폭로하는 언어’가 아닌 ‘존재가 보내는 눈짓을 감춤의 언어’로 세상의 존재론적 근원에 의문을 드러낸다. 세상으로 향한 촉수의 긴장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 답을 구’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대상의 변이체를 감각화하는 방식’으로 탐구하며 현실적 ‘심각함’을 잃지 않고, 현실의 ‘어두움’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어두움 속에서 심각하게 오래 타는 불’이다.


사유하는 것은 곧 감각하는 것이다

죽은 자의 육체가 누런 봉투처럼 납작해졌다/육체란 이처럼 자유로울 때가 있어야 하는 법/갑작스런 부음이 내 귀에 혓바닥을 날름거려/죽음과 삶의 경계를 불온하게 속삭인다/(…)/내가 토악질을 한 가로수에서도 가지 부러진 곳을 제쳐두고 많은 옹이가 눈에 뜨인다/다른 나무가 건드린 물집이다/창문을 지나가는 덩굴이 멈칫거리는 건 너무 많은 불빛과 마주쳤던 탓인가
―「부음」 부분

송재학의 시들은 여러 대상을 통한 감각적인 이미지가 넘쳐난다. 그 이미지들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분명하게 다가오지는 않고 모호하고 흐릿하게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이유를 박수연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시의 아름다움은 그 (대상을 향해) 나아감을 대리 표상하는 이미지의 연쇄 때문이고, 그의 시의 어려움은 이미지 연쇄의 비약 때문이다. 이 비약이란 그러므로 대상에 육박하지 못하는 언어들의 머뭇거림이 그 대상의 감각을 다른 대상의 감각으로 바꾸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송재학 시인에게 생각(사유)은 곧 감각이다. 그의 시에서 한 대상에서 여러 대상으로 뻗어나는 감각의 전이가 보인다면, 그것은 송재학의 사유가 그렇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의 시가 ‘대상 앞에서 머뭇거리는 언어’를 입는 이유는 ‘그것의 진면모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세계가 움직이기 때문’이며, ‘세계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흙 얼굴』에 감각적인 이미지가 넘쳐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송재학 시인은 어떤 ‘알 수 없는 대상’을 탐구하기 위해 ‘그 대상의 변이체를 감각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박수연 평론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 감각과 함께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방식, 그것이 송재학의 시이다.’(박수연, 해설「감각의 흐름, 이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