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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냄새
목사의 딸들 프로이센 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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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때문에 그녀의 영혼은 그녀 속에서 죽어갔다. 그녀는 결코 그를 본 적이 없음을, 그도 그녀를 결코 본 적이 없음을, 그러고도 그들은 누구와 만나는지도 모르는 채 어둠속에서 만나왔으며, 누구와 싸우는지도 모르는 채 어둠속에서 싸워왔음을 알았다. 이제 그녀는 보게 되었고, 보면서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녀가 틀렸던 것이다. 그녀는 그를 그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고 말해온 것이며, 그와 친숙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줄곧 그녀와 별개의 존재였으며, 그녀가 결코 살아본 적이 없는 식으로 살았고, 그녀가 결코 느껴본 적이 없는 식으로 느꼈던 것이다.”
“연기를 내며 타오르던 생명이 그를 떠나버리고 그는 그녀로부터 떨어져 완전히 낯선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낯선 사람인가를 깨달았다. 한 몸으로 살아오던 그가 이제 별개의 낯선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점 때문에 그녀의 자궁 속에는 얼음장 같은 두려움이 생겨났다. 삶의 열기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바로 이 절대적인 고립이 전부였단 말인가? 두려움에 싸여 그녀는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 사실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그들 사이에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되풀이하여 서로의 벌거벗음을 교환하며 그들은 함께 살아왔던 것이다.” “그와 함께한다면 다른 종류의 햇볕에, 무겁고 크고 땀이 맺히게 하는 햇볕에 몸을 담그는 일과 같을 것이며 끝난 뒤에는 잊어버리게 될 것이었다. 그는 구체적인 개인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따뜻하고 강한 생명으로 한번 목욕을 하는 것이고 그러고 나면 떨어져서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일광욕처럼,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목욕을 하는 것.” “그의 몸에 구멍을 뚫으며 내리쬐는 태양이 그것들을 연결하고 있는 끈에도 구멍을 뚫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추락해버릴 것이었다. 영원한 공허의 흐름 속으로 추락해버리고 말 것이었다. 그러자 다시, 그의 의식이 고개를 들고 나왔다. 그는 팔꿈치로 지탱하여 몸을 일으키고서 빛나는 산들을 응시하였다. 거기, 산들은 온통 고요하고 경이로운 모습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줄지어 있었다. 그는 눈앞이 깜깜해질 때까지 응시했다. 자신의 아름다움 속에 버티고 선, 그렇게도 맑고 서늘한 산들은 바로 그에게서 상실된 것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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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하여 다듬고 추려낸 로런스 문학의 정수
『패니와 애니』는 1991년에 『목사의 딸들』로 발간되었던 것을 표제작인 「패니와 애니」를 비롯해 「눈먼 남자」 「해」, 세편을 더하여 그간의 연구를 반영하고 역어를 다듬어 새로이 펴낸 것이다. 오랜 시간 로런스를 연구하고 소개해온 백낙청 교수의 번역에 로런스 연구자인 황정아 교수의 번역을 새로 더하면서, 기존 번역까지 전면적으로 꼼꼼히 교차 검토하여 정갈하고 깊이있는 번역으로 다시 내놓았다. 이번 개정증보판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로런스의 단편들을 엄선하고 거듭 갈닦아 선보임으로써 로런스 문학의 정수를 압축적으로 맛보게 해준다. ‘창비세계문학’을 펴내며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이래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하고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담론을 주도해온 창비가 오직 좋은 책으로 독자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창비세계문학’을 출간했다. ‘창비세계문학’이 다른 시공간에서 우리와 닮은 삶을 만나게 해주고, 가보지 못한 길을 걷게 하며, 그 길 끝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무한경쟁에 내몰린 젊은이와 청소년들에게 삶의 소중함과 기쁨을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목록을 쌓아갈수록 ‘창비세계문학’이 독자들의 사랑으로 무르익고 그 감동이 세대를 넘나들며 이어진다면 더없는 보람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