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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염상섭 장편소설
염상섭
현대문학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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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해설 | 『삼대』와 1930년대 중산층 이데올로기 비판 ? 서경석

삼대

인상기 | 나와 《폐허》 시대 - 염상섭
염상섭론 - 성경린

작가 연보

저자 소개 1

廉尙燮, 횡보橫步

서울출생. 교토부립제2중학교,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10월에 「암야」의 초고를 작성하고 『삼광』에 작품을 기고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펼쳤다. 1920년 2월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1920년 7월 김억(金億), 김찬영(金瓚永), 민태원(閔泰瑗), 남궁벽(南宮璧), 오상순(吳相淳), 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폐허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선일보학예부장, 만선일보와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서울출생. 교토부립제2중학교, 보성소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학부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10월에 「암야」의 초고를 작성하고 『삼광』에 작품을 기고하는 등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펼쳤다. 1920년 2월 『동앙일보』 창간과 함께 진학문(秦學文)의 추천으로 정경부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1920년 7월 김억(金億), 김찬영(金瓚永), 민태원(閔泰瑗), 남궁벽(南宮璧), 오상순(吳相淳), 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동인지 『폐허』를 창간하고 폐허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선일보학예부장, 만선일보와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1921년 『개벽』에 발표한 처녀작「표본실의 청개구리」한국 최초의 자연주의적인 소설로 평가되며, 암야」「제야」「전야」「만세전」등을 통해 근대 중편소설의 초석을 닦았으며, 이후 소시민들의 생활상을 치밀하게 보여줌으로써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장편소설 『삼대』에 이르러 집대성 되었다.

1920년대 염상섭은 대체로 당시 문단에서 양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고자 노력하였는데, 단편 "윤전기"를 통해 그의 가치중립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바 있는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삼대"는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가족간에 벌어지는 세대갈등을 그려낸 그의 대표작이다. 서울의 한 중산층 집안에서 벌어지는 재산 싸움을 중심으로 1930년대의 여러 이념의 상호관계와 함께 유교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을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예술원 종신회원, 경향신문 편집국 국장, 만선일보 편집국 주필, 국장, 시대일보 사회부 부장,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를 역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 『두 파산』, 『일대의 유업』 등의 단편소설과 『무화과』, 『백구』, 『취우』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1963년 작고하였으며,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화훈장 은관, 3.1 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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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염상섭
1897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염상섭의 호는 제월霽月, 횡보橫이며 교토 부립제2중학을 졸업하고 게이오 대학 예과를 중퇴했다. 《동아일보》《동명》《조선일보》《매일신보》 등의 기자를 지냈고, 만주로 이주 《만선일보》 편집부장을 지냈다. 1920년 동인지 《폐허》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소설 창작 활동을 시작, 1936년 만주로 이주하기 전까지 한국 문학을 대표할 만한 뛰어난 작품들을 다수 발표했다. 『만세전』『삼대』 등이 이 시기 대표작이다. 해방 후 귀국하여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냈고, 작품집 『해방의 아들』과 장편소설 『취우』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제2의 전성기를 보냈다. 1954년 서라벌예대 학장으로 부임,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63년 직장암으로 별세했다.
해제 : 서경석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한국 근대 리얼리즘 문학사론』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640쪽 | 818g | 153*224*35mm
ISBN13
9788972755784

출판사 리뷰

염상섭의 『삼대』, 시대적 응전으로서의 소설 쓰기
신문 연재본이 아닌 해방 후 을유문화사 판본의 중요성


새로운 세대에 걸맞은 새로운 문학 전집을 위해 현대문학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한국현대문학전집」의 2011년도 2차분 마지막 작품으로 염상섭의 『삼대』가 출간됐다.

1897년 종로에서 태어난 염상섭은 전형적인 서울 중산층 집안의 삶의 습속과 언어 감각을 타고났다고 평가받는다. 일본으로 유학 갔다가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의 지방 신문사에 취직했던 그는 1920년 《동아일보》 정경부 기자로 임명되어 귀국했다. 그 뒤로 《시대일보》 편집부장(1924), 《조선일보》 편집부장(1929), 《매일신보》 정치부장(1936) 등으로 활동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지평에서 벌어지는 근대 역사의 소용돌이를 직간접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소설화했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사회성 짙은 성격의 소유자들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 기인했을 터다.

『삼대』는 가족사 소설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작가가 『삼대』라는 장편소설에 내장했던 중층적인 구조를 고려하건대 작품 속 갈등들을 단순화한 데에 지나지 않는다. 『삼대』는 1920~1930년대 한국 사회의 근대적 풍속도를 가족 삼대의 갈등으로 형상화하면서 작품의 또 다른 축인 사상운동가들을 통해 계층과 이념적 갈등까지 포괄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 사회의 풍속도란 가족 삼대의 갈등만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계층이나 이념의 갈등까지 포괄해야 현실성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삼대』는 사회소설로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염상섭은 두 인물군의 삶과 욕망을 여과 없이 들추어냄으로서 식민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 비전과 윤리적 주제를 검토했다. 당대의 중산 계층인 조씨 일가가 유산을 두고 벌이는 처절한 대립과 갈등, 그리고 식민 치하의 반체제 사상운동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크나큰 괴리는 이미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내면화된 식민지 조선인의 윤리적 지향을 비관적으로 보여준다.

『삼대』는 횡보 염상섭이 1931년 1월 1일부터 같은 해 9월 17일까지 215회 연재한 작품이다. 그러나 『삼대』의 신문 연재본은 미완으로 끝난 인상이 짙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지적 가능하다. 첫째는 『삼대』가 지닌 사회소설적 성격으로 인해 검열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작가 자신이 그 후편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 연재본 『삼대』를 완미하게 결말지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후속작인 『무화과』와 『백구』가 작품의 완성도에서 『삼대』의 성취에 걸맞은 수준에 못 미치자 작가는 검열의 장애가 사라진 해방 후 애초의 3부작 계획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삼대』만으로 완결된 을유문화사본 『삼대』를 출간하기에 이른다. 본 전집이 이 을유문화사 판본을 정본으로 삼은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특히 을유문화사본의 중요성은 완전히 새롭게 가필한 마지막 장 ‘백방’에서 잘 드러난다. 장편소설로도 대단히 분량이 긴 작품 속에 얽힌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이 장면에 이르러서 집약적으로 제시되며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장이 없었다면 『삼대』는 그만큼 높은 평가를 받아오지 못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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