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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현대문학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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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문학전집

책소개

목차

해설 | 이상 문학, 의미의 놀이와 삶의 변주 이해하기 ● 조영복

지도의 암실
휴업과 사정
지주회시
날개
봉별기
동해
공포의 기록
종생기
환시기
실화
단발
김유정
불행한 계승
산촌여정
조춘점묘
동생 옥희 보아라
추등잡필
권태

인상기 | 이상李箱의 편모 ● 박태원
인상기 | 이상의 모습과 예술 ● 김기림

작가 연보

저자 소개 1

李箱, 김해경金海卿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30년 [조선]에 첫 소설 『12월 12일』 연재를 시작하며 등단했다. 이후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내며 활발한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30년 [조선]에 첫 소설 『12월 12일』 연재를 시작하며 등단했다. 이후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내며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친다.

19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연재했는데, 난해하고 파괴적인 형식에 독자들의 항의를 받고 연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오감도 작가의 말」은 연재 중단 후 쓰여 해당 잡지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1936년「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날개」는 이상의 대표 소설이다. 이듬해는 1937년 2월 사상불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되었고, 같은 해 4월 17일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현대시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며, 1930년대에 있었던 20년대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반발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다. 그는 건축가로 일하다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겉으로는 서울 중인 계층 출신으로 총독부 기사였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20세부터 죽을 때까지 폐병으로 인한 각혈과 지속적인 자살충동 등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기이한 작가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시와 소설을 창작한 바탕에는 이런 공포가 늘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10년에 태어나 1912년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집에 장손으로 입양되었고,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마쳤다. 손가락이 잘리고 빈궁하게 살았던 친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입양한 백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영민하여 학업 성적은 우수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질이 있어 학창시절, 직장시절 내내 그림에 꿈을 품고 열중하였다. 또한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있었고, 예술적 이상향으로 동경(도쿄)을 꼽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선각자이며, 천재,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전위예술의 선구자라고 자처했는데, 식민지 시대임에도 민족적인 자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현대적인 문명에 심취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 고유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유럽이나 일본 문학계에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생활은 나태하고 난잡, 무기력했다고 전해지며,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잡지 [조선(朝鮮)]의 1930년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한 『12월12일(十二月十二日)』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고,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였다. 이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수정하여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소설 『지팡이 역사』 수필 『혈서삼태』와 『산책의 가을』 등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연재되는 동안 삽화를 맡아 그리기도 하는 등 창작 활동은 계속하였다. 친구인 구본웅(具本雄)과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일때부터 각별히 친했으며, 대학입학시 그가 선물한 스케치박스(사구상)에서 필명인 이상이 나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화가 구본웅이 인쇄소 창문사에 이상의 일자리를 주선하여 근무하면서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인 [시와 소설]을 창간하고 편집해 발간하지만 1집만을 발간하고 그만둔다. 이후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백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으나, 가족들의 무지와 가난에 곧 질려서 보름만에 나와버렸다. 1933년, 무질서한 생활로 폐병이 심해져 각혈까지 한 그는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그의 연인인 금홍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금홍을 못잊고 방황 하다가 제비 다방을 마련해 그녀를 마담자리에 앉혔다. 그는 금홍과의 만남 이후에도 여러 여급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간 적은 없었다. 다만 이들과의 관계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면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었다.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러던 그는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이자 친구 구본웅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금홍과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건강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탓인지, 가족과 아내를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 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고, 『봉별기』를 [여성]에 발표하였다.

그의 마지막 여자인 변동림은 『동해』 『단발』 구필 『행복』 『종생기』의 『선』 『실화』의 『연』 등에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1937년 불량선인(사상불온) 혐의로 운 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렀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20세기 한국문학사에 내장된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집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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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 : 조영복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대학 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문인기자 김기림과 1930년대 ‘활자―도서관’의 꿈』 『월북 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깨어진 거울의 눈―문학이란 무엇인가』(공저)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460g | 148*210*30mm
ISBN13
9788972755661

출판사 리뷰

시대를 앞서 간 천재의 절망이 낳은 기교, 혹은 그 무서운 기록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는 작가 이상의 세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독백과 함께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경이로운 징후를 보여준 이상의 작품선이 현대문학에서 펴내는 한국현대문학전집의 열일곱 번째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상의 문학 이력은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인 1930년 시작되어 1937년 스물여덟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끝났지만, 작품을 둘러싼 논쟁은 21세기에도 끊임없이 증폭되고 계속 재해석되고 있다.

최근의 이상 연구는 시인이자 소설가로서뿐만 아니라 건축학도, 화가, 장정가, 삽화가, 심지어는 다중 매체 아티스트, 매체 이론가로서 전인적 활동에 대한 연구까지 확장되고 있다. 오늘날 이상의 작품은 모더니즘만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역까지 넘나들 만큼 전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상의 글쓰기는 문자 언어의 체계를 벗어나 말놀이, 기호 놀이, 의미 놀이,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이포그래피적인 감각들과 연계된다. 그의 텍스트는 문자 언어를 파고들면서도 문자의 통사적 맥락이나 표상적 의미의 한계를 넘어서서 기호의 층위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전위성이 이상 문학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이상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인내심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의 작품을 해석할 때 소설, 수필, 시 같은 문예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들은 그다지 소용이 없다. 소설 구성의 기본 요건인 주인공과 사건 등의 요소들이 미미하기도 하고 작품들을 관통하는 입체적인 통일성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상 소설의 독특함은 허구와 실제 삶이 잘 분리되지 않는 데 있다. 그의 소설은 실제 자기 삶을 패러디한 것이거나 그것을 뒤집어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이상의 글쓰기는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면서 생성되는 혼돈의 공간 속에 존재한다. 그 혼돈의 공간 내부에는 죽음에 대한 이상의 깊은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이상은 김유정처럼 중증 결핵에 시달렸는데 첫 작품인 ?12월 12일?부터 일관되게 그의 문학적 주제는 ‘자살 충동’이었다. 항상 죽음을 의식했던 이상은 자신의 글쓰기를 ‘공포의 기록’ 혹은 ‘무서운 기록’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무서운 기록’을 다 마치기 전에는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상이 사망한 직후 발표된 ?종생기?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불멸성’의 의지를 드러낸다. ‘쓰레기 같은 자신의 생애를 천하의 눈 있는 선비들에게 보이겠다는 호언’은 그의 자존감이다. 이상의 냉혹한 자기모멸과 냉소, 자학은 자존감의 이면이며 궁극적으로 ‘불멸성’에 대한 의지인 것이다.
자살 충동에 관한 무서운 기록과 불멸성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충돌하는 이상의 작품 세계는 난해하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인 모더니즘 문학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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