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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파우스트 박사 2 - 세계문학전집 245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 EPUB
민음사 201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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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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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파우스트 박사
에필로그
저자의 말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저자 소개 1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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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ann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1955년 동독 및 서독에서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강연을 하고, 고향 도시 뤼베크의 명예시민이 되어 스위스로 돌아왔지만, 혈전증 진단을 받아 8월 12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교회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토마스 만의 다른 상품

역자 : 임홍배
<20세기 초반의 가장 위대한 독일 소설가>로 지칭되는 토마스 만은 북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 뤼벡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 하인리히 만, 아들 클라우스 만도 작가였으며 아버지가 사망하자 집안이 파산, 몰락하여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97년에는 단편집『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출간하였고 1901년에는 스물다섯의 나이로 장편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하였다. 이어 자서전적 단편 「토니오 크뢰거」가 수록된 『트리스탄』(1903)을 발표하면서 삶과 죽음, 시민과 예술가, 정신과 삶이라는 이원상을 거듭 대결시킴과 동시에 양자간의 조화를 모색하였다. 『베니스에서의 죽음』(1912)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더 한층 달구어낸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같은 해에 집필에 들어가 완성에 이르기까지 12년이라는 기간이 걸린 『마의 산』(1924)을 통해 그의 이름은 국내외로 널리 알려졌으며 <바이마르 공화국의 양심>으로 불리게 되었다. 1929년에는 『부덴부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에도 『마리오와 마술사』(1930),『요젭과 그의 형제들』(1943),『파우스트 박사』(1947),『선택받은 사람』(1954) 등 소설뿐만 아니라 평론 및 수필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창작력을 선보인 만은 1955년 8월 12일 취리히에서 사망하였다.
역자 : 박병덕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 독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구니터 그라스의 문학세계』, 『독일현대작가와 문학이론』(공저), 『카프카 문학론』(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헤세의 『싯다르타』,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사상』,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 솔즈베리의 『새로운 황제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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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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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8.44MB ?
ISBN13
9788937495458
KC인증

출판사 리뷰

토마스 만 스스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밝힌 최후의 걸작
광기와 혼돈의 시대, 비운의 천재 음악가로 다시 태어난 20세기 파우스트
독일 정신의 모순과 타락, 인간성과 예술 문명의 몰락에 대한 뼈아픈 자기비판
“그렇습니다. 예술은 정체되고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예술은 스스로를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 차이트블롬은 이 년 전에 죽은 자신의 친구이자 천재 작곡가인 아드리
안 레버퀸의 전기를 집필한다. 고독하고 오만한 레버퀸은 창작의 위기를 겪다가 악마를 대면
하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이십사 년 후에 영혼을 바칠 것’을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이
후 그는 온갖 시대적 혼란과 주변의 불행 속에서도 뛰어난 곡들을 창작하지만, 결국 십 년간
정신 착란에 시달리다 죽는다. 그는 정신을 놓기 전, 마지막 작품인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
을 들려주기 위해 지인들을 모은 자리에서 누구도 믿기 힘든 비밀을 털어놓는데…….
토마스 만은 “독일인으로 태어나면 독일의 운명과 죄과를 짊어져야 한다.”라고 했다. 그가 나
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삼 년여에 걸쳐 완성한 이 소설에는 독일인으로서의 고
뇌와 신랄한 자기반성이 아프게 녹아 있다. 이는 오늘날 이성의 폭력으로 위기에 처한 인간
성과 예술, 문명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가장 악마적이고도 가장 독일적인 예술’이
라는 음악을 매개로 신비로운 독일 정신과 독일의 역사, 사상, 문화를 아우른 이 소설에서
토마스 만은 대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 토마스 만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이다. ─ 죄르지 루카치
▶ 『파우스트 박사』는 토마스 만의 가장 깊이 있는 예술적 몸짓이다. ─ 《뉴리퍼블릭》
▶ 토마스 만은 독일의 불행 가운데 있는 행운이다. 작가들이 토마스 만을 비판하는 것은 그
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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