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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창시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어느 장수말벌의 주검
폐타이어를 끌고 달리는 아이를 보며
창의력
거룩한 삼겹살
신식 차례
루시
체 게바라
나는 조선 왕조의 후예는 아니다
서울은 집이 산다
더러운 비둘기
목축의 시간
참새와 직박구리
거꾸로 가자
절대루

제2부

하회마을 처마 밑에 걸린 작은 밥상들을 보며
청권사淸權祠를 지나며
구두
에밀레종 소리
호박 눈썹 나물
금오신화
정전
습관이 우울하다
동백나무에도 내장이 있구나
시경詩經을 읽으며
남해에서
매직 아워
방위 그리고 봄

제3부

창호지 쪽유리
추억
동지
중환자실에서
추억은 진보한다
나나 무스꾸리의 하얀 손수건
외할아버지 미루꾸 캬라멜
오래된 수건
내소사에서 그 무거운 돌들을 왜 지고 내려왔을까
어릴 때는 왜 그렇게 귀신이 많았을까
겨울밤
난쟁이
그 많던 다방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도 물레 돌리는 옹기장이를 보며

제4부

아버지 수염은 지금도 자라고 있을까
삶은 계란
고무줄로 묶은 트랜지스터라디오
내가 옛날 트로트 노래 좋아하는 것은
어머니는 비밀번호가 없다네
장모님은 꽃 전도사
우리 장모 괜찬해야
장모 삼우제날
역사
오래된 지명
겨울 까마귀

발문__ 유령, 혹은 잊어버린 존재의 목소리 | 김진경

저자 소개 1

195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초중고 시절을 대전에서 보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1년 ‘5월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아메리카 들소』, 『그래 우리가 만난다면』,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세상에 새로 온 꽃』, 『능소화』, 『거꾸로 가자』, 『썩은 시』 등과 산문집으로 『오래된 집』, 『우리말 땅이름 1·2』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과 오장환문학상을 받았다.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구속 해직된 후 1999년 복직되어 다시 교직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임하여 현재는 자가 격리되어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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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1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82g | 120*188*20mm
ISBN13
9788966550173

책 속으로

내일이면 첫서리가 내린단다. 산간에는 얼음이 언단다.
이제 작별을 고하마. 잘 가거라 나팔꽃이여
너를 땅속 어둠으로 다시 돌려보내며
나도 겨울 들판으로 난 쪽문을 민다.
---「시인의 말」

그대 그리운
목축의 시간이여
가난했지만 한가로웠던
그 목축의 시간이여

뒤뚱뒤뚱 재봉침 의자에
까치발로 올라서서
나비 모양의 쇠걸개로
드르륵드르륵 태엽 감아 돌리던
괘종시계

보름치였던가 한 달치였던가
시곗바늘이 느려지면
시계가 배고픈가 보다
시계 밥 좀 줘라 아버지 말씀에
드르륵드르륵 밥 주던 시계

긴 시계불알로
뎅뎅뎅 종소리처럼도 울었던가
대청마루 까만 마룻바닥
그 적막 속을
가난한 하루가 가고

지금은 시간이 나를 먹는가
시간이 나를 몰고 가는가
그러나 마른 벌판에 나 홀로 서 있어
---「목축의 시간」

짧게 가자
빠르게 가자
무의미하게 가자
그녀는 잊기 위해서 드라마로 간다

그녀는 알레고리에 익숙하다
판타지에 익숙하다
리얼리즘은 천박해
부담스러워

상징적으로 가자
모자 쓰고 가자
가리마도 가리고
바로 클라이맥스로 간다

한일강제합병은 모른다
진주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온갖 암호와 예측에 충분히 익숙하다

나는 거꾸로 가자
예측 불가능하게 가자
벌거벗은 몸뚱이로 가자
저 강변 항하사 같은 금모래밭
남풍에 반짝이며 팔랑이는 미루나무 이파리
그 오르가슴을 나는 잊지 못한다
---「거꾸로 가자」

전철을 기다리다
우연히 들여다본
내방역 주변 지역 안내도에
작은 글씨로 희미하게 박혀 있는
옛 지명들

뒷골 너른골 찬샘골 장아뜰
벌말 벌모롱이 구렛논 뱅돌래미
가꿀고개 오르메 도구재
사궁길 사복촌 새텃말
내방역 주변 마을
옹기종기 정겹던 옛 이름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산책 다니던 골목골목의
옛 이름 맞추어보며
흥분되고 신이 나서
전철 몇 개 지나쳐 보내면서도
다시 땅 냄새 맡은 듯
물 냄새 맡은 듯

나는 땅속을 달리며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와 강철재를 부수고
땅 위에 땅 위의 옛 마을들과
고샅길과 시냇물과 고갯길을
머릿속 환히
다시 세우고 있다

---「오래된 지명」

출판사 리뷰

“나직하면서도 견고한 내성의 어법”
사소하지만 빛나는
존재들의 웅얼거림


『오월시』동인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재철 시인이 5년 만에 여섯 번째 시집 『거꾸로 가자』로 돌아왔다. 그동안『아메리카 들소』『그래 우리가 만난다면』『생은 아름다울지라도』등의 시집을 통해 생활의 진실에 바탕을 둔 민중시를 써온 윤 시인은 이번 시편에서 지나간 시간에 묻힌 잊어버린 존재들의 목소리를 호출해낸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빛나는 그 존재들의 웅얼거림에 귀 기울인다. 나직하지만 견고하게 흐르는 윤재철의 시들은 치열한 현실인식과 서정을 동시에 품으며 낮지만, 은은하고 아름답게 사람들 사이를 흐른다. 너무 부족하지도 흘러넘치지도 않는 현실과 꿈 사이, 그 어딘가에 머무른다.

『거꾸로 가자』에서 윤재철의 시들은 단순한 추억팔이에 그치지 않고, 오래된 미래를 좇으며 깊은 현실 인식과 서정의 결을 보여준다.

그는 거꾸로 간다. “예측 불가능하게”, “벌거벗은 몸뚱이”로. 아침 등굣길 교정에 그는 풀숲 속 나팔꽃을 본다. 별밭 같은 꽃밭을 보며 나직이 속삭인다.

밤새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이
땅의 어둠과 은밀히 교접하여 작고 푸른 꽃을 피웠다.
아침의 영광이여
그러나 속절없는 사랑이여.
-「시인의 말」부분

그는 나팔꽃에게서 영광을 보지만 동시에 속절없는 사랑도 확인한다. 그는 단순한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현실에만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 나팔꽃을 다시 “땅속 어둠으로 돌려보”낸다. 그러고는 “겨울 들판으로 난 쪽문”을 민다. 여기에는 오래된 미래가 도래해 있을 것이다. “문풍지 우는/바람이 아름다웠던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더 아름다웠던 때”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거꾸로 가자』는 윤 시인과 함께 걸어 들어가는 그 오래된 미래로의 초대장이다.

김영호 문학평론가는 윤재철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시인 윤재철은 이상과 열정을 가지되 그것이 파괴적인 격정으로 나아가지 않고, 이지적인 분별이 있으되 도사풍의 예지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다만 탁한 진흙구덩이 삶에 작은 뿌리를 심으며 자신의 순정을 잃지 않고 서서히 꽃을 피우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번뜩이지 않고 소박하다.

너무 부족하지도 흘러넘치지도 않는 윤재철의 시편은 현실과 꿈 사이, 그 어딘가에 머무른다. 그리고 위 지적대로 순정을 잃지 않은 채 작은 뿌리를 심으며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그가 사유하고 있는 세계의 속도는 세상을 굴리는 보통 시곗바늘의 움직임과는 다른 듯하다. 이번 시집에서 그의 시세계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대체 무슨 상황이기에 “거꾸로 가자”고 하는 것일까.

오래된 미래를 좇는 현실 인식과 서정의 깊이

그는 첫 시에서부터 이렇게 고백한다. “바퀴는 몰라/지금 산수유가 피었는지/북쪽 산기슭 진달래가 피었는지(중략)//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너무 오래 달려오지 않았나”(「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부분). 세상은 바퀴에 의해 굴러간다. 바퀴는 끊임없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른다. 그러고는 다시 원위치. 아침이 밝으면 다시 바퀴가 움직인다. 운동하는 아이들의 근육이 프로 시장이나 대학에 팔려나가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창의력’을 내세우며 끊임없이 ‘새것’ 또 ‘새것’을 지향한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은 그의 눈에는 그저 “어둠도 없고 별빛도 없”이 너도 나도 없이 집만 살고 있는 황폐한 땅일 뿐이다. 하여, 그는 숲속 어딘가에 묻힌 산수유, 진달래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브레이크를 달고자 한다. 세상을 굴리는 이 거대한 바퀴에.

그대 그리운
목축의 시간이여
가난했지만 한가로웠던
그 목축의 시간이여
(중략)
지금은 시간이 나를 먹는가
시간이 나를 몰고 가는가
그러나 마른 벌판에 나 홀로 서 있어
-「목축의 시간」부분

비둘기가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은 지상에서 그는 위 시처럼 “가난했지만 한가로웠던” 목축의 시간을 꿈꾼다. 자신을 몰고 가는 시간에 맞서기 위해 마른 벌판에, 때로는 “영하 십이 도 맹추위”에 서 있기를 자처한다. 그렇다고 그가 좇는 기억과 추억이 한자리에 머물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뿌옇게 김 서린 거울 속/벌거벗은 채 늘어뜨린/내 손가락이/루시를 닮았다/뼈만 남은 긴 손가락”(「루시」부분). 그의 기억은 순환과 반복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이 지상의 시간 주변을 맴돈다. 때문에 『거꾸로 가자』에서 윤재철의 시들은 단순한 추억팔이에 그치지 않고, 오래된 미래를 좇으며 깊은 현실 인식과 서정의 결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거꾸로 간다. “예측 불가능하게”, “벌거벗은 몸뚱이”로. 시인의 말로 되돌아가보자. 아침 등굣길 교정에 그는 풀숲 속 나팔꽃을 본다. 별밭 같은 꽃밭을 보며 나직이 속삭인다.

밤새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이
땅의 어둠과 은밀히 교접하여 작고 푸른 꽃을 피웠다.
아침의 영광이여
그러나 속절없는 사랑이여.

그는 나팔꽃에게서 영광을 보지만 동시에 속절없는 사랑도 확인한다. 그는 단순한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현실에만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 나팔꽃을 다시 “땅속 어둠으로 돌려보”낸다. 그러고는 “겨울 들판으로 난 쪽문”을 민다. 여기에는 오래된 미래가 도래해 있을 것이다. “문풍지 우는/바람이 아름다웠던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더 아름다웠던 때”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거꾸로 가자』는 윤 시인과 함께 걸어 들어가는 그 오래된 미래로의 초대장이다.

추천평

윤재철의 시들은 그의 기억이 진보하는 자리를 보여준다. 기억이 진보하는, 그래서 자신이 난쟁이인 줄 아는 난쟁이의 자리는 죽음의 이쪽 아니면 저쪽이다.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데로부터 기억은 진보하는 것이다. 그 자리는 이제는 내가 귀신 같은 유령의 자리이기도 하다. 이 유령은 사소한 기억들을 웅얼거린다. 그 사소한 기억들은 사소하지만 존재가 자신을 숨기면서 드러내는 빛남의 순간에 대한 기억이라는 점에서 근원적이다. 그것은 존재의 웅얼거림이다. 망각의 시대에 시인이 서 있는 자리가 어찌 유령의 자리처럼 곤궁하지 않을 것이며, 그 곤궁한 자리에서의 웅얼거림이 어찌 근원적이지 않겠는가.
김진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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