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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작가의 말 | 왜 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1장│여름다운 여름, 겨울다운 겨울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끈기가 없는, 참으로 쿨한 귀 막 청춘의 절정이 지나갔다 하늘을 힐끔 쳐다보는 것만으로 그저 말할 수만 있다면,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는 이 여름의 전부 말하려다 그만두고 말하려다 그만두고 도시에 공급하는 고독의 가격을 낮춰 주기를 눈, 해산물, 운하, 맥주, 친구 2009년 하늘의 목록 2장│생맥주, 취한 마음, 호시절의 마라톤맨 누구나 이미 절반은 러너인 셈 사람이 너무 좋은 게 콤플렉스 우린 모두 영웅호걸 절세가인 여름만이라도 좀 놀면서 지내자, 이 귀신아 이 우주를 도와주는 방법 字宙心을 제멋대로 작동시키는, 말하자면 우주의 중심 준비성 없는 여행자들을 위한 마법의 주문 롤러블레이드 할아버지, 에스프레소 할머니 바바리맨이 아니라 마라톤맨 여름 내내 달렸으니 맥주는 얼마든지 한 번 더 읽기를 바라며 쓰는 글 3장│인생을 선용하는 기술 로자는 지금 노란 까치밥나무 아래에 이것이 지금 네가 읽고 싶은 책이냐? 혼자에겐 기억, 둘에겐 추억 평일 오후 4시의 탁구 시합 그리운 북쪽 나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외롭다고 말하고 싶을 때 우리가 하는 짓 기회야, 인생아, 머리 길러도 괜찮아 4장│그렇지만 삶은 고급 예술이다 어쨌든 우주도 나를 돕겠지 갑의 계획, 을의 인생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 여름의 첫 번째 숨결 물렁물렁한 고무 마음의 지옥훈련 호수가 얼어 붙은 날의 문장들 대화 없이도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질문의 소년, 그리고 20년이 흐른 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5장│더 많은 공기를, 더 많은 바람을 오래 달리거나 깊이 잠들거나 그린존으로 속도를 낮추십시오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일에 중독되다 중력을 거슬러 나를 조금 위쪽으로 물방울처럼, 유리처럼 몸으로 이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 변덕과 변심의 달리기 몸으로 생각하면 그게 시인, 혹은 러너 경계선에서 아픔과 고통을 받아들일 때 다시, 벽 앞에서 심장이 뛰는 한, 시간은 무의미 뛰지 않는 가슴들, 모두 유죄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01장 고독한 인간 구름 숭배자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 것들 어워, 고대의 존재론 두 눈이 멀지 않고는 결코 사막에 들어갈 수 없다 저물녘, 다른 감각 연두색 나의 텐트 02장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오로지 이곳일 뿐인 내일이면 더 맑은 별들을 볼 수 있겠지 이 모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어떤 금기 사라진다는 것, 그 매혹 길을 벗어나다 내 그림자를 따라가면 03장 별 낙타는 지평선을 건너가지 않는다 불쌍한 에인지 바다의 묘지 나에게 없는 그 황금의 시간 밤하늘을 마시다 나는 염소자리 04장 아름다움에 병든 자 사막도시를 지나서 땅의 묘지 투바인 여자들이 모여서 노래 부른다 해발고도 1,900m의 적막 언덕 위의 빈 들판 격자무늬 구름의 집, 게르 별은 왜 뜨는가 05장 만약 모래 우는 소리를 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면 이방인 햇빛 나비 손바닥 반도 못 될 검은 돌 하나를 주워들고 버려진 신발 비로소 석양이 되다 서너 걸음마다 별이 지는 죽은 짐승들이 밤새 울어 내 영혼을 깨우다 바람의 묘지 나그네여 더 이상 길을 가지 마라 06장 푸른 염소 목동자리 햇빛머리사막도마뱀 개의 이름 자이릉, 언덕 위의 할아버지 지나쳐온 구름 07장 하지만 그건 너무 외로운 거야 고원을 걷다 밤이면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들이 목을 빼어들고 길게 운다 그 노래를 조금 더 들었어야 했다 구름 도둑 모래쥐 자크나무 모닥불 바얀작 사막을 건너가는 이를 위한 광학 이론 누가 죽은 말의 머리를 악기에 올려 놓았는가 08장 소행성 랭보 양을 위한 노래는 없다 옹깃 사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토록 그리워하고 있었나 봐요 한밤의 별자리 강좌 손을 들어 별과 함께 손끝을 맞대면 강가에서 뱀이 울고 있었다 09장 아무도 부르지 않는 사라진 노래의 한 구절 들판의 묘지 차르르 차르르 메뚜기가 난다 어느 곳으로든 이제 나는 어르헝 폭포 가는 길 말을 따라서 10장 바이시테 고비 사막에서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만날 수 있다 어워에 바친 것은 황혼, 뒤를 돌아보다 다시 버려진 신발을 찾아서 구름몰이꾼 그 이름은 돌론 보르항 황금여우를 보았다 느림보 마음 작가의 말 1. 느린 마음 아름다운 주름 생각 자라와 고니 오는 봄을 나누세요 흙길 보행 시원하고 푸른 한 바가지 우물물 같은 휴식 뼈아픈 후회 여름의 근면 무언가를 새롭게 기다리는 손 가을 과일이 익는 속도만큼 물고기가 달을 읽는 소리를 듣다 들밥 강아지 대신 거북 따뜻한 마중 뭉클한 순간 움직이고 흘러가는 수레와 배와 물고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새여 내 아버지의 천만당부 가을바람 유별난 생각 오늘 종일 하늘이 하는 이 무일푼의 일 진흙 덩어리 속 진흙 게 깊은 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삶처럼 느리게 희망처럼 격렬하게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2. 느린 열애 봄비처럼 통통한 호기심 참깨꽃 가게 앵두 밥상을 차리는 일 울음이 그칠 때까지 울음을 들어라 햇배 파는 집 파르스름한 맨밥 냄새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이 곧 도량 새벽에 홀로 앉아 붙잡아 둘 수 없으니 절망하기 시작하라 따뜻한 화로 같은 고향 쓰다듬는 것이 열애이다 주례사 가슴에 언덕과 골짜기가 있다 이별에게 한난을 바라보는 시간 이제 오느냐 편지 바닷가 해변과 모래집과 물 울타리와 초동일 아침 설날 생각 매병과 연못 온유 마지막 말씀 3. 느린 닿음 자연을 밥벌이시킨 타샤 튜더 물새의 깃털보다 부드러운 촉감 중국 시인 마딩 내와 강으로 나아가는 영험한 큰물 차츰, 조용히, 차근차근하게 밝은 쪽으로 우리를 붙들고 있는 어떤 리듬을 생각하며 젖니 난 아가를 안고 강보처럼 감싸던 달빛 입학식 풍경 비 오시는 모양을 바라보며 그쵸, 라는 별명의 여덟 살 아름다운 스승 빛바랜 사진 열 살 아이와 나의 슬하 매미와 포도 들꽃과 하얀 커피 잔과 종이 카네이션 여름 산사 청보리밭에 앉아 누나는 나를 업고 나는 별을 업고 삼 년 만에 돌아온 제비 노모 추색 굼뜸과 일곱 살 다시 세모를 앞두고 상여가 지나가는 오전 4장 느린 걸음 신발 아, 24일 밤나무 아래 서다 걸음의 속도 시인 신현정 선생을 기리며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한 해 마지막 달을 살며 새해 새날 아침에 난타의 연등 저 들찔레처럼 모든 인사는 시이다 눈보라가 집시의 바이올린처럼 흐느낄 때 대중목욕탕 집 가족처럼 대화 당일과 공일 어머니와 시골 절 햇빛 텃밭 염천과 짧은 이불 사랑의 고백 해녀와 함께 바닷가로 가을 편지 아내라는 여인 더듬대고 어슬렁거리고 깡마르게 나의 작은 기도 |
金衍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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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애써 이기려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말하다 지금까지 7권의 장편소설과 4권의 소설집을 내면서 이름 석 자만으로 문단과 대중에게 신뢰감을 준 소설가 김연수. 그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로서는 이런 궁금증을 품어볼 수도 있겠다. ‘그가 만든 다양한 세계의 출처는 어디일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디에서 영감을 받을까? 대체 김연수라는 소설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어느덧 중진 소설가가 된 그가 그동안 써 왔던 문장과는 다른, 한층 성숙되고 새로운 산문집을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화두는 ‘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 아버지는 전쟁 시기에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분이다. 해방 뒤 귀국한 뒤에도 아버지에게는 이런저런 고생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한국전쟁은 새삼 말할 것도 없고, 그뒤로도 오랫동안 이겨야만 살아남는 세상을 사셨다. (중략) 경기에서 지는 날이면 모든 중대원이 기합을 받았다. 소위 말하는 ‘연대 기합’이다. (중략) 다른 누군가를 이기지 않는다면, 결국 패배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이 패배자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 내게 스포츠란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기만 했다. 과연 이기지 않는 것은 패배를 뜻하는 것일까?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 작가의 말 중에서 《지지 않는다는 말》은 “졌다, 졌어.” 라고 중얼거리며 축구 경기를 보던 아버지에 대한 유년시절의 기억, ‘고통의 연대’를 맛보여 주던 군대에서의 경험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이 책은 김연수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체험한 사랑, 구름, 바람, 나무 빗방울, 쓴 소설과 읽은 책, 예술과 사람 등에 관한 이야기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궁극에는 삶의 기쁨과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문학적으로 더 깊고 넓어진 사유의 문장들, 그의 소설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워진 문장을 읽게 된다. 희망으로 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는 절망에 대해 김연수는 달리기에 대한 애정으로 《달리기와 존재하기》라는 서적을 번역했을 정도로 소문난 달리기광이다. 스물여섯 살에 백수의 서글픔을 달래고자 시작했던 달리기가 어느덧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김연수의 세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처음 대회에 참가해 결승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기록으로 뛰는 둥 마는 둥 고개를 푹 숙인 채 경기장 초입으로 접어드니 길 양옆으로 우리가 들어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가족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꼴을 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이 내게 박수를 치면서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고 격려해주는 것이었다. 그 환호를 대하자마자 내 등이 쭉 퍼지면서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게 느껴졌다. 누가 봤다면 곧 세계신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하려는 선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김연수는 ‘지지 않는다는 말’의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희망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절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라톤은 인생에 대한 은유”라는 표현이 있듯, 그는 인생의 벽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회피하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그저 그 순간이 지나가도록 버티고 기다린다. 또한 소설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매 순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견디며 극복하고, 하고 싶은 일은 지금 하면서 살아간다. 김연수는 이런 삶의 자세 덕분에 인생이 더 소중해졌고 삶은 희망과 맞닿게 되었다고 기록한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버티어 이겨내는’ 삶을 권하고, 삶의 고난 앞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관용과 무덤덤함을 끄집어내어 다시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바로 예술”이라는 든든한 말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루저(loser)’라 느끼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그가 사랑한 삶에 대한 기록 이 책에는 명절이나 공휴일이나 방학이 대목이라는 것을 아는 빵집 아들 김연수의 국민학생 시절이 있고, 위로받고 싶어서, 울컥 터지는 울음을 누르려고 서점에 간 고등학생 김연수가 있다. 친밀한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서로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로도 함께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김연수가 있으며, 도라에몽에 목을 매는 딸애의 환희를 조용히 부러워하는 아버지 김연수가 있다. 이렇게 그가 기록한 삶의 매 순간은 언뜻 평범해 보이는 것 같지만, 아주 조금만 더 집중해서 글을 읽어보면 그가 지나온 삶을 얼마나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특히 지난가을, 나는 잠시도 하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놀라운 정도로 구름은 아름다웠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구름을 바라봤는데, 그래서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그 구름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이 우주에 나 혼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략) 시시각각으로 하늘은 변했다. 바라보면 아름다움은 이내 사라졌다.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이해했다. 아름다움과 시간은 상호보완적이었다. 곧 사라질 것이 아니라면 아름답지 않다. 한편으로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삶이 결국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는 건 결국 우리는 모두 죽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본문 중에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살아갈 날은 무수히 많지만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것, 앞으로 여러 우연과 마주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겠지만 오늘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꾸준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행복이나 기쁨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각을 열고 생각을 바꾸면 즉각적으로 찾아오는 것임을 뭉근하게 알려준다. 그리하여 자신의 진짜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글 곳곳에는 유쾌한 무관심과 들끓지는 않지만 절대로 식지 않을 것 같은 애정이 있다. 삶에 관한 대단한 감정일수록 더욱 담백하게 담아내는 그의 섬세함은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나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만든다. 나아가 그들 모두 자신의 삶을 관찰하고 느끼고 사랑하도록 이끈다. 이 한 권의 책이 세상을 읽고, 듣는 누군가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살아가는 것임을 기억하기 김연수에게 사십 대라는 것은 생에 전환을 맞는 시기다. 그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연민, 공감, 동정 등과 같은 감정들과는 조금 멀어졌다고 고백한다. 조금씩 꾸준히 변화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예술작품을 보아도 예전과 지금의 느낌이 다르다는 어느 전환점에서. 이 전환점은 천천히 가도 되고 너무 힘들면 잠시 멈춰 쉬어 가도 되는 곳이다. 해서 좀 더 빠르게 살지 못한다는 이유로 타인을 인생의 낙오자로 내몰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냥 ‘달리기’를 하느냐, 아니면 ‘후달리기’를 하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의로 달리느냐 타의로 달리느냐를 묻는 것이다. 김연수는 스스로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것은 달리기이지만, 달리고 싶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 때문에 억지로 달리는 것은 ‘후달리기’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는 어렵지만 후달리지 않기는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후달리지 않는 삶을 이뤘다면 ‘인생을 한 번 더 살게 되었다’고 여겨 볼 것을 권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모든 사람이 더 많은 일을 경험하고 우연 앞에서 불안해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삶을 보고 듣고 달리기를 응원한다. ‘지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시간을 달리는 이야기들이 잔재해 있다. 어린 시절 온가족이 함께 떠났던, 김천의 유일한 테마파크였던 ‘찌끼사’(혹은 직지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비롯한 유년의 추억들, 혼란 속에서 보냈던 청년기, 그리고 소설가가 된 이후, 40대에 들어선 이후 겪은 일들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맥주를 마시다가, 도서관에 다녀오다가,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보다가 든 생각 등 일상에서 읽고 듣고 보고 쓰고 깨달은 김연수의 만 가지 생각들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내면의 생각들이 깊어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시인 김태형이 고비사막에서 만난 별과 낙타와 무지개 그리고 바람의 영혼 이야기! 고비사막 한가운데서 세상이 너무 고독하고 아름다워서 그만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는 김태형 시인의 첫 산문집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이 도서출판 마음의숲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김태형 시인이 고비사막을 두 번째 다녀와서 쓴 글이다. 처음 고비사막을 다녀왔을 때 그곳에서 보았던 별, 무지개, 구름, 사막 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던 것들은 다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워서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것들이 다시 보고 싶어 작가는 두 번째 고비사막 여행을 떠났다. 떨어지는 별똥별까지도 찍을 수 있다는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똑같은 곳을 두 번이나 연이어 찾아갈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거나 아니면 후회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남기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느닷없이 다시 사막으로 나를 이끌었다. 무엇을 보고 마주해야 할지 나는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다시 기다림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삶은 그렇게 잃어버린 어떤 것들을 대체하는 것으로서만 지속되는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작가는 사막 한가운데 텐트를 치고 밤을 꼬박 새며 찍은 별, 구름, 낙타, 지평선, 무지개 등 너무 아름다워서 기억나지 않던 것들을 생포해 왔다. 그리고 자신만이 보고 느낀 그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보여 주고 들려주고 싶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시인이 만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그가 찾은 아름다운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이 책은 들려준다. 사라진다는 것은 매혹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매혹은 오직 그 순간에 삶을 변화시킨다. 건너가지 않아도 이미 다른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인 듯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면, 과연 나는 뒤돌아볼 것인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여행이라고 누군가 말했으리라.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다른 삶을 꿈꾸어 본 적이 없다. 다른 삶이란 저 너머에 있지 않다. 나는 이곳에 있다. 나는 매혹되는 자다. 이곳에서 꿈꾸는 자다. 다른 삶, 그런 삶을 나는 바라지 않았다. 내가 찾는 아름다움은 그런 슬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쓴 영혼의 자서전 고비사막에 두 번째 다녀온 후 김태형 시인은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50여 편의 시를 썼다. 그 시들은 마치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와도 같았다. 작가는 그것을 더 아름다운 문장으로 승화 시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산문으로 풀어내 만든 책이 바로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이다. 〈느림보 마음〉의 저자인 문태준 시인과 함께 북콘서트를 열며 책 출간 전부터 독자들에게 회자되며 화제가 되고 있는 고비사막의 ‘바람의 영혼’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절실한 고독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는지 온몸으로 보여 준다. 작가는 사막을 걷다가 문득 유난히 고운 모래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모래들을 두 손으로 떠내어 들고 바라보다가 문득 한 줌 배낭에 담아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작가가 이름 지은 바로 ‘바람의 영혼’이다. 북 콘서트 때 작가는 그 모래를 아주 작은 유리병에 담아 독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자신이 만난 모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참을 걷고 또 걷다가 지쳐 쓰러지려고 할 때쯤 볼록 솟은 사막 언덕 아래 아주 고운 모래들이 앉아 별처럼 반짝이며 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국과 넓은 몽골 대륙을 날아다니다가 고비 사막 둔덕 아래 안착한 모래들을 보는 순간, 저것은 분명 ‘바람의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저것을 조금 퍼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가면 또 생각이 안 날 것 같아서였습니다.” -김태형 시인의 말 중에서 이 책은 시인 김태형이 몸으로 만나고 담아온 바람의 영혼이다. 고독해서 더 빛을 발하는 사막에 사는 별들이 들려주는 말이다. 방랑하며 소멸하는 구름의 삶이다. 긴 속눈썹을 껌벅이며 사막에서 기다림의 성자가 된 낙타처럼 오랜 시간 지평선을 바라보며 그리움으로 쓴 영혼의 자서전이다. 때로 고단하고 힘겨운 우리 생 앞에 나타난 고비사막의 무지개 같은 선물! 몽골의 아름답다는 고비사막을 다녀와 쓴 몇 여행기에는 그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별이 없는 고비사막은 고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김태형 시인의 이번 책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은 그야말로 별의 책이다. 북두칠성, 견우성 알타이르, 5등급의 녹색별 이자르, 이 별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을 가진 별 풀체리마, 어제보다 밝지 않아 구박받는 별, 밤하늘이 검은색이 아니라 은빛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작가가 찍은 은하수 등 90여 장의 사진들이 펼쳐진다. 작가는 여행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서 갈증과 멀미, 불편함과 불면과 멀어졌다고 기록한다. 그 온전히 혼자인 시간동안 ‘당신’으로 불릴 모든 이들과의 관계를 끊고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시력이 4.0이나 되는 맑고 밝은 눈을 가진 사막의 사람들, 바람이 쌓아 올린 모래산, 모래쥐, 도마뱀, 그늘 한 점 없는 황무지의 바람, 기다림의 동물 낙타 등의 이야기가 한 편의 시처럼 펼쳐진다. 시인은 매일 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하면서 사막을 횡단했다. 그리고 정제되지 않았던 존재에 대한 물음들을 수첩에 적어 내려갔고 그 물음에 답이 되는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것은 구도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난 성자의 모습이 아닌, 소년의 맑은 시선이었다. 시인이 내면에서 묻고 대답한 것들이 때로 동화처럼 따뜻하면서도 맑게 그려지고 있다. 왜 떨어지는 별을 향해 소원을 비는지 안다. 그보다 더 간절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별은 이렇게 떨어진다. 그리웠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이 되지 못한 나와 당신과 바람과 황무지와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마저 한순간 별이 되어 떨어진다. 모두가 저 별의 파편을 품고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무엇인가 떨어진 것이 있다면, 다 타고도 남은 그 무엇이 있다면 당신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고비사막은 자연의 거처다. 바람, 뜨거운 태양, 햇빛, 낮게 뜬 구름 아래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풍경, 그러다가 광활한 들판과 사방 하늘에 뜨는 무지개들을 그린 이 책은 도시의 삶에 지쳐 때로 너무 고단하고 힘든 당신의 생 앞에 나타난 일곱 빛깔 무지개와도 같은 선물이 될 것이다. 매혹, 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 모든 것을 잃은 자는 그 자리에서 신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오랜 경전의 시편들은 그렇게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상실감 뒤에 오로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신과 나,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마주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외로움과 아름다움’이다. 인간 존재와 모든 외로움에 대해 고민하는 시인은 문학, 신화, 사회, 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을 펼치면서 독자들을 동화적 상상력의 세계로 이끈다. 사막으로 가기 전 작가가 일상의 모든 것과 관계를 가진 유기체였다면, 사막에서는 모든 것과 조금 떨어져서 큰 그림을 보고 관계의 맥락을 살피는 기록자였다. 시인은 고비사막 생활 안에서 혼자 있으나 결국 함께 있는 삶에 대해 깨닫는다. 혼자가 가 닿는 ‘당신’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게 된다. 가령 사막을 따라가다 보면 오아시스가 나오는 것, 각자 혼자 떠 있으나 함께 움직이는 성운을 보는 것, 호른 소리를 내며 밀려들어 오는 바람이 결국 새로운 모래산을 만드는 풍경이 그러하다. 그래서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함 끝에도 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무언가가 여행 끝에 있을 것이라고 적는다. 내가 가는 길 끝에 있을 어떤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은 이 세상 누구의 마음에나 있을, 그리움의 대상인 당신과도 같다. 이제 다 되었다. 가슴속에 남겨 둔, 차마 하지 못했던 한마디 말이 뜨겁게 두 눈에 맺히고 있었다. 그래, 이제 다 된 것이다. 이 별 아래에서 나는 내 한마디 말을 삼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잊지 않기 위해, 사막의 황량한 아름다움에 미쳐 온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내 가슴속에 남은 한마디 말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황량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본문 중에서 『느림보 마음』 문태준 시의 모태가 되는 산문의 언어! 가을날의 숲처럼 우리 마음을 사색으로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 “살아오면서 내가 사랑했던 시간은 누군가의 말을 가만히 들을 때였다. 뒤로 물러설 때였다. 이 세상이 너무 신속하다. 쉴 겨를과, 나란히 가는 옆과, 늦게 뒤따라온 뒤를 살려 냈으면 한다. 세상의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지지 않도록. ―작가의 말 중에서” 2009년 〈느림보 마음〉으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한국 최고의 서정 시인 문태준! 그가 한껏 풍부해진 감성과 깊어진 사유로 더 아름다워진 산문을 들고 3년 만에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의 글은 서정시의 음률을 품고 있다. 그래서 문장을 곱씹어 읽다 보면 메마른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갈수록 독해지는 세상에서 문태준의 존재와 그의 글은 더없이 소중하고 값지게 다가온다. 30여 편의 원고를 추가해 새로워진 〈느림보 마음〉에서 문태준은 서정 미학의 정수를 보여 준다. 그는 참깨꽃, 햇배, 도토리 등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작고 평범한 것들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사랑하는 사물과 풍경은 하나같이 작고 사소하다. 볼품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일상의 소소한 풍경들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5천 원짜리 왕순댓국집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주변을 스치는 말 한마디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는 사람, 그리고 그 말하는 이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문태준이다. 이렇듯 그의 시선은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에 느릿느릿 가 닿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구절처럼 그는 작은 것에도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지고 천천히, 그리고 오래 본다. 일상에 치여 우리 주변에 있었으나 보지 못했던 혹은 보고도 무심히 넘겼던 사물과 풍경들은 문태준의 따뜻한 시선 아래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의 시선을 좇아 주변에 있던 평범한 사물과 풍경들을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낮은 자리에 있는 것에 눈길이 머무는 그의 글은 독자들의 마음에 고요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나는 가끔 이발관이나 세탁소, 그도 아니면 우리 집 마당에 널린 빨래들이 바람과 햇살에 보송보송 말라 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이런 풍경을 떠올리면 가슴 한 모퉁이가 밝아진다. 이 풍경에 내 마음을 슬쩍 얹어 보고 비추어 본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저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올려 본다. ―본문 중에서 고향 그리고 가족, 시인 문태준만이 그릴 수 있는 눈물 나는 풍경들 이 산문집의 바탕에는 고향과 가족이 있다. 그의 몸은 도시에 있지만, 마음과 정신은 고향에 머물러 있다. 그는 추풍령과 황학산이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여름이면 냇가에서 멱을 감으며 놀았고, 그러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따뜻한 돌을 귀에 대어 빼내곤 했다. 가을에는 탱자나무 울타리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사과 과수원에 몰래 들어가 사과 서리를 하기도 했다. 자연이 가장 친한 친구였던 고향 마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그의 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문태준을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은 “들밥 풍경” 같다. 일상에 너무 떠밀려 살지 않기 위해, 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그는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마다 들밥 풍경을 떠올린다고 한다. 들밥을 이고 가는 여인, 그 밥을 나눠 먹는 농부들, 빈 들밥을 집으로 가져가는 여인 등 아주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는 고향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들밥 풍경. 그의 글 역시 이 들밥 풍경처럼 서정적인 풍경화 한 폭을 떠올리게 한다. 이 풍경화에는 느릿느릿 길게 우는 황소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조리로 쓰륵쓰륵 쌀을 이는 소리와 밥 익는 냄새가 난다. 애틋한 고향의 흙냄새, 풀냄새, 나무냄새가 느껴진다. 이 소리와 냄새들은 향수를 느끼게 하는 향기가 되어 우리 주변에 퍼져 흐르며 은연중에 입은 내상을 치유해 준다. 그리고 이 고향에는 한평생을 전답과 함께 살아온 농사꾼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다. 힘들 때 묵묵히 자식의 손을 잡아 주는 아버지와 “밥 먹자”는 한마디 말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고향을 느낄 수 있다. 내 어릴 적 풍경에는 ‘어머니의 혀’가 하나 있다. 나는 오글오글 몰려다니며 놀다 눈에 검불이 들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어머니는 바가지 물로 입을 헹궈 내시고 당신의 가장 부드러운 살인 혀로 내 눈을 핥아 주셨다. 나는 ‘보은’을 생각하는데 격절한 것이 있지만,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신의 그 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를 보면 한 채의 앉은뱅이 집을 보는 것 같다. 아귀 같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벼락도 맞고 늦눈보라도 맞아 이제 어머니는 별로 성성한 곳이 없다. 층층시하 자식을 두었지만 어머니의 품은 갈대의 품처럼 거칠고 삭막하기 그지없다. 다리는 사슴보다 여위었고, 살갗은 옻처럼 검어졌다. 어머니는 어느새 조백했다. 한 꿰미의 북어를 사 들고 기뻐 돌아오던 어머니의 환한 미소는 어디로 갔을까.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듯이 나는 내 어머니의 품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감꽃 져 내리던 날, 텅 빈 마루에 홀로 넋을 놓고 계시던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도 떠나보낼 수가 없다. 흰떡을 좋아하시는 내 어머니, 한 시루의 흰떡을 쪄 젊은 내 어머니에게 그리고 이제는 조백한 내 어머니에게 나는 돌아가야겠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그 나무 그늘에게로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겠다. ―본문 중에서 소설가 김훈의 추천사처럼 고향의 늙은 아버지를 말할 때 문태준의 글은 아름답고 강력하다. 그러나 혀로 검불이 들어간 시인의 눈을 핥아 주시던 노모를 그리는 글은 절절하고 아파서 아름다움을 넘어 눈물이 난다. 가족이라는 말보다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나눠 먹는 존재를 뜻하는 ‘식구’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는 문태준. 해 질 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마중 나갔다가 저녁 밥상에 다 같이 모여 국수를 말아 먹었던 그에게 가족보다 식구라는 단어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의 산문은 식구들과 함께 먹는 밥 한 그릇이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는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덜어 내기와 삶의 리듬 회복하기는 느림보 마음을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 평범하고 작은 것들에 눈길을 주며, 고향 풍경과 사람을 사랑하는 문태준은 삶에서도 욕심부리지 않는다. 느림보 시인이라는 별명답게 묵묵히 그의 길을 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덜어 내기”라고 말하는 그의 말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가 이야기하는 덜어 내기의 모습은 다양하다. 소찬(少饌)으로 먹기, 말 줄이기, 욕심부리지 않기, 헐거운 하루 보내기, 마음속의 혼란과 혼돈 몰아내기. 덜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덜어 내다 보면 자신만 손해 보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것이며 자신을 비우고 느린 마음으로 살 때,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가. 마음의 욕심을 덜어 낼 때, 그리하여 느린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해진다. 문태준의 말대로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달렸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한숨 크게 내쉴 필요가 있다. 남이 빨리 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뒤꽁무니만 쫓아가다간 넘어지기 십상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걸음의 속도를 찾는 것,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느림보 마음을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바쁜 일상에서 오는 삶의 피로에 지친 이들에게 〈느림보 마음〉을 권한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시원하고 푸른 한 바가지 우물물 같은 휴식”이 될 것이다. 오늘 한낮에는 덩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이 뾰족한 들쥐가 마른 덩굴 아래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갈잎들은 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 오늘은 일기(日記)에 기록할 것이 없다. 만족한다. 헐거워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 (…) 조용해지니 더욱 행복하다. 밤이 깊어 흐르는 달을 보니 행복하다. 달의 서책을 읽을 만하다. 가을이라는 방에 빈 책상을 하나 놓아둘 만하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