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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함께 찾아 온 소설의 새로운 풍경] <소설 보다> 시리즈가 봄을 맞아 새로이 옷을 갈아입고 찾아왔다. 이 계절이 주목한 작가는 김멜라, 나일선, 위수정이다. 펜데믹 시대의 불안과 소외된 존재들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지금 이곳에 필요한 이야기를 전한다. -소설MD 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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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심은 장뇌삼 씨앗이 발아해 삼이 되고 삼이 산의 비밀이 되어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이야기. 10년, 혹은 30년 뒤의 미래. 그때가 되면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될 거라고 대니가 말했다. 그때가 되면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장애인도 마음껏 운전하고 바다에서 서핑할 수 있을 거라고 체가 말했다. 그런 일들이 다 평범해져 더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고 사람들은 집 화단에서 키운 양귀비 잎을 피우며 더 먼 미래를 상상할 거라고 두 사람은 말했다.
--- 「〔나뭇잎이 마르고〕 김멜라」 중에서 JS의 오른팔에 새겨진 열 마리의 새를 하나씩 천천히 들여다보며 볼 때마다 새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 같아. 팔에 열 마리의 새를 새긴 이유는 매번 물을 때마다 달랐는데 어쩌면 그 모든 것이었을지도, 아무것도 아니거나 너무 자유롭거나, 오늘은 묻지 않았다. 미안, 기억이 지워지고 부재가 성장하고 있어, JS는 말하고 오른손을 펴 내 눈을 가렸다. 많이 볼수록 우린 좁아지는 거야. --- 「〔from the clouds to the resistance〕 나일선」 중에서 둘은 나란히 앉아 습관처럼 뉴스를 보았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리조트 회사가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하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둘이 신혼여행지에서 묵으려고 예약했던 리조트 중 하나였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갑자기 변하는 건가 봐. 하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 「〔은의 세계〕, 위수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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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 계절의 소설
“체와 대니는 먼 훗날 누군가 발견하게 될 산의 비밀을 상상하며 나무 아래 씨앗을 심었다.”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는 “‘퀴어/장애/여성’이 그려지는 방식”(조연정)에 관한 이야기다. 대학 동아리 선후배 사이인 ‘체’와 ‘앙헬’은 죽음을 앞둔 체의 할머니를 뵙기 위해 오랜만에 재회한다. 소설은 앙헬의 기억을 빌려 체를 설명하는 데 여러 대목을 할애한다. 길이가 다른 다리 때문에 “작은 웨이브를 그리며” 걷는 체, 시와 전시회, 술과 밴드 연주를 즐기는 체, “난 여자 가슴이 좋아”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체. 그런 체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이 익숙하게 그의 정체성으로 따라 붙던 ‘퀴어/장애/여성’ 같은 단어는 사라지고,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체가 하는 말을 다 알 수 있었던 시절”이 찾아온다. 한때 “둘만의 비밀”을 공유할 만큼 가까웠던 그들은 흔히 그렇듯 “합당한 이유” 없이 멀어진다. 그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먼저 주고, 준 만큼 되돌려받지 못해도, 다시 자기의 것을 주”는 체의 모습은 사랑을 베푸는 것도 하나의 의지임을 헤아리게 한다. “실제 생활에서도 저는 별명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 속뜻은 그리 대단치 않거나 장난스러운 것이기 마련이지만 (그래서 비밀로 간직하지만) 바로 그 점이 좋습니다. 서로 장난을 칠 수 있는 관계를 좋아하는 것이겠지요. 서로의 비밀을 간직하면서도 애정이 깃든 장난이 허용되는 관계에서 소설의 어떤 부분이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김멜라 × 양순모」에서 “삶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면, 아니 꿈이란 게 있긴 했다면, 우리는 백지처럼 시간에 대해 얘기한다.” 다양한 매체를 경유하며 소설의 새로운 형식을 실험해온 나일선의 「from the clouds to the resistance」는 1959~60년의 일기와 2018년의 일기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소설 제목은 동명의 영화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장 마리 스트로브 감독의 이니셜이 JMS (혹은 JS)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작가는 이처럼 실재하는 작가와 작품을 허구의 이야기 곳곳에 섞어 독자의 시간을 교묘히 흩뜨린다. “나일선의 텍스트에서 구축되는 모호한 정서적 관계를 지시하기 위한 적합한 단어는 ‘대화’ 아닐까?”(강동호). 사실과 픽션이 혼재한 채 교차하는 텍스트는 두 대의 카메라를 마주 보게 배치해 “리버스 숏”으로만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현세기와 전세기의 예술가들이 주고받는 편지처럼 읽히기도 한다. 소설의 화자를 포함해 창작자와 향유자는 서로 다른 시공간과 감정 상태에 놓일 텐데 그 “간극이 주는 가능성”(작가 인터뷰)이야말로 나일선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무언가 중첩되는 느낌에 끌리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문장과 문장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에 무언가 충돌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완결되는 느낌이 희박했으면 좋겠다. 어딘가로 연결되는 통로나 과정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쓰면서 그런 생 각은 자주 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 나일선 × 홍성희」에서 “그때만 해도 팬데믹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지 아무도 몰랐다.” 위수정의 「은의 세계」는 팬데믹으로 드러난 사회의 그늘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재난은 다양하게 분화된 도시 계층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데, 온라인 영역에서 일하는 ‘하나’와 ‘지환’ 부부가 안온한 생활을 유지하는 반면, 사촌동생 ‘명은’은 청소와 소독을 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로 타인의 위험을 대신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처음에 “도와주는 셈 치”고 명은에게 청소를 의뢰했던 하나와 지환은 시간을 거듭하며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명은이 집에 혼자 있는 상황을 꺼리거나 명은이 머무른 자리에 소독제를 뿌리는 장면은 안전을 빌미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죄책감 없이 분출”(작가 인터뷰)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한편, 명은이 다녀간 첫날 책을 읽다 잠든 지환은 “날이 바짝 선 식칼”이 복부를 찌르는 환상통을 겪게 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갑작스러운 사고나 살해를 ‘당하는’ 감각에 시달린다. 이는 사회적으로 안전지대에 속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국은 얄팍한 허구에 불과함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지환의 환상은 재난 상황의 근원적 공포를 “우리는 다행인 줄 알자”라는 말로 쉽게 덮어버릴 수 없음을 상기한다. “팬데믹은 삶의 아이러니를 경험할 수 있는 배경이 되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불안에 시달릴 테고, 그것은 본능적으로 감지되는 붕괴와 멸망, 죽음의 징후에 기인한 것일 테니까요.” 「인터뷰 위수정 × 김보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