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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냥 보낼 수 없는 이유
‘아직도 싸이월드 하는 사람’이라는 말 그때 우리에겐 싸이월드가 있었으니까 도토리 다섯 알 인생 전 국민 주택 보급 시대가 열리다 라디오헤드가 가고 핑크퐁이 왔을 때 싸이월드는 사랑을 타고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나와 싸이월드 사진첩만 아는 이야기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도토리묵과 밈, 서태지와 브이앱 싸이 1만 시간이 남긴 것 미니홈피는 리뉴얼 중 80년대생의 추억 복합기 |
저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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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라는 작고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이 얼마나 큰지 나는 얼마나 작은지 깨치던 그때, 싸이월드는 이미 몰락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대세였다.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 기삿거리를 찾고 업계에서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자들도 많아졌다.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되겠다 싶어서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회사 선후배들이나 취재원들의 프로필을 보여주면서 친구로 추가하겠냐고 물었다. 웃고 있는 그들의 수많은 사진을 훑어보았다. 일상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관계가 몇몇 주변 지인들을 넘어 출신 학교와 직장, 출입처, 심지어 해외로까지 무작위로 확장돼 있었다. 망해가는 구멍가게 단골이 글로벌 유통 체인의 신식 매장에 처음으로 진입한 기분이었다. 화려했고, 세련됐으며, 놀라웠다.
--- 「‘아직도 싸이월드 하는 사람’이라는 말」 중에서 ‘도토리 다섯 알’은 나의 주제이자 분수였고 합리적 소비, 부담 없는 호의, 건강한 우정을 규정하는 척도였다. 소망상자에 담아둔 BGM을 가끔 친한 친구들과 선물로 주고받았다. ‘당신에게 도토리 다섯 알은 아깝지 않습니다’라는 뜻이었다. 최소 열 알의 도토리가 필요한 스킨을 선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건 ‘매우 고맙습니다’ ‘아주 미안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처럼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을 때 썼다. 가끔 도토리 열 알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당신은 내 사람’이란 뜻(혹은 열망)이었다. 만약 그런 생각도 없이 도토리를 스무 알 넘게 상습적으로 남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내 기준에서 그건 심한 허세가 있거나 관계의 결핍으로 인한 불안이 있거나, 사기꾼이었다. --- 「도토리 다섯 알 인생」 중에서 첫 일촌은 싸이월드의 존재를 알려준 M과 맺었다. 일촌명은 ‘울트라캡숑짱미녀’로 지었다. M의 홈피로 구경 갔더니 M이 일촌을 맺고 있는 친구 목록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미니홈피로 이동하는 것을 ‘파도타기’라고 불렀다. 나는 사이버 서핑의 즐거움을 금방 깨쳤다. 새로운 친구의 미니홈피에서 또 다른 친구의 미니홈피로 넘실대는 파도를 탔다. 오프라인에서는 근황을 알기 어려운 이들, 친해지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던 이들에게까지 금방 닿을 수 있었다. --- 「전 국민 주택 보급 시대가 열리다」 중에서 여자들의 우정이 시작될 때, 대가 없이 뭉클한 호의가 싹트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 스무 살의 Y는 소규모 세미나 수업에서 알게 된 친구였다. Y는 누군가를 배웅해주는 걸 좋아했다. 수업이 끝나고 잠시 나누는 대화가 아쉬웠는지 늘 바래다주겠다면서 따라왔다. 그날은 계단이 너무 많아 Y가 돌아가기 힘든 지점까지 왔다. 이제 그만 가보라고 만류하자 그녀는 마지못해 머쓱하게 손을 흔들고 도서관 계단으로 뛰어올랐다. 그 뒷모습이 이유 없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 「싸이월드는 사랑을 타고」 중에서 싸이월드에서 가장 골치 아픈 관문은 일촌명 짓기였다. 새로 알게 된 누군가와 온라인에서 더 친밀하게 이어지려면 ‘일촌’을 맺어야 했는데, 그러려면 반드시 그 관계를 규정하는 이름을 지어야 했다. ‘나의119’ ‘엔돌핀’ ‘말이필요없는’ ‘2gether’에서부터 ‘동네바보형’ ‘1초원빈’ ‘초록맥주병’에 이르기까지. 그러고 보면 싸이월드는 참으로 서정적인 플랫폼이었다. 그의 이름을 지어줘야만 비로소 그가 나에게 와서 일촌이 될 수 있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중에서 싸이월드는 매주 수요일이면 새벽 2시부터 7시까지 전체서비스를 중단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아바타와 함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더욱 좋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뜨면 나는 금단증상으로 하염없이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비슷한 처지의 싸이폐인들과 ‘분노의 네이트온’을 하며 불안에 치를 떨기도 했다. --- 「싸이질 1만 시간이 남긴 것」 중에서 싸이월드가 리뉴얼 중이라고 한다. 완전히 끝난 줄 알았던 싸이월드의 부활 소식에 주성치 영화가 생각났다. 〈소림축구〉로 입문해 팬이 된 이후로 거의 모든 작품을 역주행해 봤다. 주성치 영화의 제일 좋은 점은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신없는 활극 가운데 분명히 절벽으로 떨어졌고, 분명히 둔기에 맞고 쓰러졌는데 그래도 절대로 죽지 않고 짠 하고 다시 나타났다. 가끔은 주성치조차 (자신이 감독까지 한 영화이면서도) 상대역을 향해 “아까 죽은 거 아니었어? ”라고 물었다. 스스로 봐도 ‘말이 안 되는 생명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싸이월드는 주성치 영화와 닮았다. B급이고, 재밌고, 무엇보다도, 절대 죽지 않는다. --- 「미니홈피는 리뉴얼 중」 중에서 우리는, 아니 나는, 왜 그렇게 싸이월드를 하고 살았던 걸까. 미니홈피에 접속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그날의 감상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던 날들. 기숙사 방에서는 늘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이 흘러나왔었다. 새로운 곡으로 배경음악을 지정해놓으면, 룸메이트 후배는 “이번 달 저희 방 BGM은 이건가요?”라고 놀리듯 물었다. 싸이월드는 내 일부였고 분신이었다. 마치 거울 보고 단장하듯이 수시로 싸이월드 프로필을 바꾸고, 미니미 옷을 갈아입히고, 사진첩이나 게시판 폴더를 정리했다. 매일 방문자 수를 확인했으며, 방명록 댓글도 정성껏 달았다. 특별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으로, 자칭 문학도의 고뇌를 담은 자의식 과잉의 난삽한 글을 수없이 써서 올렸다. 한때 나는 싸이월드의 그 작은 미니홈피 안에서 정말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 「80년대생의 추억 복합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