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5월 20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372g | 130*194*21mm |
ISBN13 | 9791130637167 |
ISBN10 | 1130637166 |
발행일 | 2021년 05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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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372g | 130*194*21mm |
ISBN13 | 9791130637167 |
ISBN10 | 1130637166 |
아직 살아 있습니다 … 7 틈 … 43 윌슨과 그의 떠다니는 손 … 73 중국인 부부 … 99 메켈 정비공의 부탁 … 131 로드킬 … 169 목요일 사교클럽 … 197 책무덤 … 225 한남동에는 점집이 많다 … 255 해설 | 솔베이지의 선택지_이지은 … 263 작가의 말 … 281 |
아직 살아 있습니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다산책방에서도 <오늘의 젊은 문학>이란 이름으로 국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론칭했다. 어쨌든 국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읽을 거리가 풍부해져서 기쁜 일이다.
그 역사적인 첫번째 작품은 나푸름 작가의 소설집이다. 2014년 등단작인 <로드킬>부터 2020년 발표한 단편까지 총 아홉개의 작품이 엮여 있고 이름 만큼이나 신선하고 멋진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SF도 아닌 것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소재들이 무척 흥미로웠고 이런 스타일은 유지되지만 이야기의 소재는 다채로워서 즐겁게 읽었던 소설집이었다.
표제작이면서 제일 앞부분에 배치된 <아직 살아 있습니다>는 솔직히 처음에는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안되었다. 같은 사무실 직장동료끼리 얼굴을 안보고 지내다 한 사람이 죽었는데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직원도 있다는 설정이 이해가 안되었는데 알고보니 근미래에 아바타 같은 실리콘 더미가 사무실에 있다는 의미였다.
이 소설이 기괴했던건 주말에 장례를 치룬 동료 박 대리가 시스템 오류로 실리콘 더미에서 로그아웃되지 못한 채 월요일에 출근해 있고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더미는 계속 업무를 하고 있고 퇴사처리가 안된다는 전개였다. SF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살짝 꼬아서 풍자하는 듯했던 점이 신선한 매력이었다.
아홉가지 이야기 모두 어느 하나 빠질게 없었는데 그 중 나푸름 작가의 등단작인 <로드킬>도 인상 깊었다. 살인과 외도까지 가미된 미스터리 스릴러(?)이면서도 아내의 비밀을 수십 년 동안 부정하고 끝내 기억에서 지워냄으로써 매일 아내에게 밥상을 받는 남편의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전개가 일품이었다.
그외에도 사고로 잘린 손이 돌아와 제멋대로 돌아다닌다는 설정의 <윌슨과 그의 떠다니는 손>, 어금니가 흔들리면서 시작된 부부의 다툼이 대화를 겉돌며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틈>, 중국인 부부, 목요일 사교클럽, 책무덤, 한남동에는 점집이 많다 등의 작품들을 재밌게 읽어볼 수 있었다.
분명 언젠가 과거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면 터미네이터에서 나오는 인간보다 더 지능화된 로봇들이 전쟁을 하는
모습이라거나 나를 닮은 더미가 나를 대신해서 직장생활을 한다거나 하는 모습들.
박대리가 죽었다. 분명히. 그래서 상가집까지 다녀왔다. 그런데 직장에 있던 그의 더미는
여전히 살아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열심히 일만한다.
하긴 어떤 더미들은 오류가 발생하여 쓰러지기도 하고 인지기능이 떨어지기도 한다.
박대리의 오류를 고쳐 그가 떠나도록 해야하는데 정말 이러다가 언젠가 더미들이 산사람대신
삶을 이어가는 날들도 오지 않을까.
잘린 왼손이 살아있다고 믿는 윌슨. 실제 손이 잘렸어도 어떤 사람들은 가렵고 아픈 증상을
느낀다지 않은가. 윌슨의 왼손은 살아남아서 온갖 짓들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이제 윌슨은 이미 잘린 왼손을 죽이기 위해 고심한다.
'목요일 사교클럽의 여자'는 늙어가는 일을 몹시 두려워한다.
과거 결혼생활을 했을 때에는 출산후 몸매가 망가지는게 싫어서 낙태를 하기도 했다.
새로 만난 남자 장과 기분좋은 데이트를 즐기고 침대까지 갔건만 여자는 충격을
받는다. 왜? 장이 너무 일찍 불을 껐기 때문이다. 여자는 생각한다. 아 내몸이 너무
늙어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구나. 정말 그랬을까.
문득 이 글을 쓰는 서재방의 책들을 둘러본다.
왜 남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화려한 서재에 꽂힌 책을 아들이 읽지 못하도록 했을까.
책을 읽지 않고 전시만 했던 아버지가 자신보다 더 지혜로워질 아들이 두려웠던 것일까.
알 수 없다.
다소 난해한 단편들을 보면서 미래의 어느 시대를 갔다온 것도 같고 잠깐 꿈을 꾼 것도
같은 경험을 했다. 어쨌든 2022년 첫 달,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아직 살아있음이
증명이 된 셈이다. 내일은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