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문을 닫고 등교 연기를 거듭하면서, 학부모들이 가장 먼저 맞이한 어려움은 돌봄이었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으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무엇인가를 배우는 일 이전에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부모, 특히 맞벌이 부부 등 아이를 종일 돌볼 수 없는 가정의 부모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방치되어 있는 아이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어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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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격차 이전에 집에서 점심을 먹는 아이들과 거르는 아이들로 나뉘고, 부모의 지원 속에서 비교적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아이들 밖으로 일상을 좀체 추스르지 못하는 아이들이 교사들의 눈에 들어왔다. 격차는 동일 학년 학생들 사이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학교 간에도 나타났다. 대면 수업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공립학교가 대다수일 때에도 대면 수업을 안전하게 전개해 간 사립학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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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고 일본에서는 교육이 계층을 재생산하기보다는 형성하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특히 한국에서 이 사실이 두드러진다. 조선의 쇠락과 일제강점기를 겪는 동안 구래의 신분 질서는 상당히 약화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의도하지 않게 경제적 측면에서의 출발선 평등이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교육에서 거둔 성취는 사회적 지위를 배분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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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서 학생으로 수업내용이 전달되고 학생들은 그 내용을 처리하는 ‘정보처리’의 과정으로만 교육, 수업, 학습을 바라본다면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가장 효율적인 교육시스템을 제공해 준 것이다. 그러나 성인인 대학생들과의 수업에서조차도 교육은 정보처리의 효율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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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교사들은 새로운 수업 형태인 화상 수업에서 빛나는 아이들을 종종 발견하였다.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는 박 교사는 교실 수업에서는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했던 중위권 학생이 화상 수업에서는 50분 수업 내내 집중을 하는 경우를 자주 관찰하였다. 매체가 주는 흥미로움이 주된 원인인 것 같다고 아이들의 말을 빌어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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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배움들, 누군가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배움의 다양한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우리가 개인의 능력이나 특성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상당 부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집중력’, ‘끈기’, ‘학습동기’와 관련하여 그것을 ‘소유’한 학생과 부족한 학생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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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고 유능한 교사라도 자주 실패한다는 사실은 교육적 실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오랫동안 교직에 있어 본 교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러한 잦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시행으로서의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영위,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의 결과를 알 수 없고 이 결과의 불확실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즉 실패를 기꺼이 무릅쓰면서 그것을 계속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이라는 실천적 영위의 본질적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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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은 학교에서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활동이다. 그리고 가르침이 있는 곳에는 항상 교사가 있다. 한편, 이때 가르침이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 전달이 핵심이 되는 활
동이 아니다. 가르침의 활동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론적 지식의 습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것으로 무장된 인지적 자아를 아이들 스스로 넘어서도록 외부에서 자극하는 것, 인식이 아니라 인식의 조건으로서 아이들의 존재론적 자아를 일깨우는 것이다.
--- p.132
학교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식 교육이든 지식외 교육이든 ‘세계’를 아이들 앞에 열어 보여서 아이들이 그 세계와 자유로운 관계를 맺으며 내적으로 연결되도록 하
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하여 교사는 학생과 세계 사이의 매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라는 공간은 어린 세대가 세상 어디에서도 시험해 본 적이 없는 자기 자신의 존재론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실험하며, 어떤 다른 외적 목적에 의해 전적으로 전유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와 세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유희하게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 p.135
지방대의 경우, 이러한 정지 상태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교수-학습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지만, 학생이 대학생활에 적응하고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던 다양한 행사들이 모두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동아리 활동, 선후배 간의 술자리, MT 등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굳이 대학에 다녀야 하는가, 라는 회의뿐이다.
--- p.165
교육은 수많은 모순되는 목적과 관계와 순간이 모인 통합의 과정이며 관계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 가는 사회적 경험이자 활동으로, 이를 간과한 개별화된 프로그램은 지극히 제한적인 차원의 학습만이 가능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교육과 학습이란 지식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참여와 상호개입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낄 수 있을 때 완성된다. 개별화, 자율화된 원격 학습은 이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 p.178
등교가 거듭 연기되고 원격 수업이 이루어지는 기간 중에 학교와 교사의 대응에는 상당한 격차가 나타났다. 이 기간에 사실상 학생을 방치한 학교가 있었는가 하면, 개학 연기 기간에 학생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교사가 원격 수업 기간에 장기 결석하는 학생을 방문하여 학생 상태를 확인하고 특별히 돌볼 필요가 있는 학생들은 원격 수업 기간에도 등교하도록 하여 점심 식사를 챙기고 교사의 원격 수업에 참여하도록 한 학교도 있었다.
--- p.202
한동안 전국적으로 공동 보조를 맞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온 지역의 교육감이 형평의 이유를 들어 전국적 등교 연기를 요청하였
다. 즉, 우리 지역에서는 확진자가 나와서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는데, 다른 지역에서 등교를 하는 것은 형평이 맞지 않는다거나 우리 지역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는 형편인데, 다른 지역의 고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식의 주장이 등장했다.
--- p.212
저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친 작년부터 올해까지 대학교수의 삶에 교육이라는 영역이 크게 부각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교육 자체의 의미나 가치는, 글쎄요 저는 크게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오히려 그 의미나 가치를 우리가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전히 ‘학습권’과 ‘교육권’은 개념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물론 이 두 가지 권리를 모두 어느 정도 보장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학습권이 개인의 행복과 번영을 지원하는 다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권리라면 교육권은 그 이상의, 혹은 이와는 다른 차원의 더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의미를 지니는 권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학교는 학생의 학습권보다는 교육권을 책임져야 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교실이 하나의 모습일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교실은 기술이 잘 결합된 환경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칠판과 분필만 있는 교실도 미래 교실의 하나를 구성할 것 같습니다.
자발적 학습을 강조하면 할수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강화될 것입니다. 지금 도입된 유연학기나 자율학기, 대학의 유연한 변화는 아주 소수의 학생만이 혜택을 누릴 수 있고 도전해 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발적 학습과 경험을 교육과정의 하나로 인정하려는 현상을 위해서라도 오히려 교수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지금까지 수행했던 역할에 대해 교사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리고 팬데믹 와중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요.
학교는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미래 세대를 위한 유일무이한 공적 장소로서 다음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도록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즉, 어린 아이들이 어떠한 도구적인 목적에도 봉사하지 않고 순전히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적 가치를 가지고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자유롭게 그리고 실험적으로 탐색해 보는 곳으로 말입니다.
학력격차의 이면에 관계의 격차, 상호작용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문제의식을 나누고, 모든 학생이 마땅히 누려야 할 관계와 상호작용의 자원이 무엇이어야 할지 등에 대해 공동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그것을 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 떠안는 문제로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사회 전체적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유일한 제도가 교육입니다.
--- pp.222-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