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보는 눈과 풍경을 보는 눈, 생명을 보는 눈으로 나눌 때 가장 많은 사람(평범한 사람)이 풍경을 보는 눈에 들어갑니다. 지도를 보는 눈은 책상에 앉아 개발 정책을 펼치는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바쁘게 달리거나 개발에 동조할 때 지도를 보는 눈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지도를 보는 눈은 더 강력한 힘을 얻어 거칠게 개발을 추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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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보는 눈은 적고, 주로 발길을 멈출 때나 낮 시간보다는 이른 아침과 밤에 나타납니다. 힘이 약합니다. 그러나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려면 평범한 사람들이 생명을 보는 눈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보는 눈은 풍경을 보는 눈에게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지도를 보는 눈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늘 지도를 보는 눈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생명을 보는 눈이 될 때 세상은 더욱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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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변하면 변한 대로 적응해야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가난한 나라 젊은 노동자가 먹고살고자 낯선 땅으로 이주해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똥가리는 이주 노동을 해마다 되풀이해야 하니 어떤 측면에서는 이주 노동자보다 더 삶이 험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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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곧 세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니 해마다 이주해서 날품팔이 노동을 하는 새를 대하는 태도가 곧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부디 말똥가리를 비롯한 새들이 우리나라를 좀 더 환경이 좋아지는 곳이라고 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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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는 고니처럼 부리가 날카롭습니다. 날카로운 부리를 개흙 속에 집어넣어 흙을 파헤치며 식물 뿌리, 물고기, 무척추동물을 찾아서 먹습니다. 특히 새섬매자기 뿌리를 아주 좋아합니다. 상체를 전부 개흙 속에 넣을 때도 있습니다. 거꾸로 선 엉덩이만 보이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생존하려는 몸부림 같아 숙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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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생명으로 바라보면,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새소리 대부분이 울음소리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생명이든 자기 일상을 울음으로 채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소리는 새들끼리 하는 의사소통일 때가 가장 많습니다. 그 외에 자기 영역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도 하며, 갑자기 나타난 사람 때문에 놀라 소리를 내기도 하고, 짝을 찾느라 목소리를 뽐내는 때가 있으며, 그저 기쁨을 누리고자 노래하고, 아주 드물지만 슬플 때는 울기도 합니다. 새소리는 이렇듯 ‘말’과 ‘노래’와 ‘울음’으로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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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힘들기는 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더 힘든 여건입니다. 새는 평균 체온이 대체로 40도 안팎으로 사람보다 높거든요. 심지어 참새는 41.5도나 되고요. 체온이 높을 뿐만 아니라 높은 체온을 유지하고자 심장도 빠르게 뜁니다. 사람 심장이 1분에 60~70번 뛰는 동안 까마귀는 345번, 참새는 무려 460번이나 뜁니다. 벌새는 1,200번이나 뛴다고 합니다. 에너지를 온몸에 보내려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달고 새는 한여름에도 먹이를 잡으려고 계속 몸을 씁니다. 먹이를 저장해 놓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사냥을 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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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는 보통 8월부터 보이는데 2021년에는 7월부터 많이 보였습니다. 까닭을 알아보니 북극권 기후 변화 탓이었습니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 크나큰 화재가 잦았습니다. 기온이 높아져 풀과 나무가 더 잘 자라고, 따스한 공기가 상승 기류를 타고 올라가 번개가 자주 치니 도요새가 번식하는 곳에 화재가 자주 났습니다. 번식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번식깃을 달고 찾아온 도요새가 반가웠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도요새는 오랜 세월에 걸쳐 생존 전략을 몸에 새겨 왔는데, 요즘 같은 급작스러운 변화에 맞춰서도 생존 전략을 세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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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6도로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2.7m/s로 부는 몹시 추운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추우면 기러기도 먹이터로 떠나는 시간을 늦춥니다. 잠자리에서 나오기 싫은 것은 사람이나 기러기나 매한가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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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는 습지와 둘레를 사람 편의에 맞춰 관리합니다. 안전에 신경 쓰고 민원에 민감하게 반응해 습지 둘레 나무들을 전지합니다. 그것도 한창 새의 번식기에 작업합니다. 고목도 어느 순간에 없앱니다. 어느 하나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난 것이 없는데 너무 사람 입장에서만 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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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퇴근해 건물마다 불이 꺼지자 기러기와 오리가 습지를 점령했습니다. 수천 마리 기러기와 오리가 소리를 내며 그곳에 있었습니다.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새가 곁에 있었다니!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습지를 떠나고, 사람들이 퇴근하면 그제야 습지에 찾아와 알지 못했을 뿐, 새들은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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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새는 언제 어디서 천적을 만날지 모릅니다. 새는 대부분 한 입 먹고 경계하고 한 입 먹고 경계하는 것이 몸에 배었는데 그게 다 천적 때문입니다. 먹이를 쟁여 놓지 않으니 먹이가 없는 시기를 넘기기도 참 힘듭니다. 오죽 살기 힘들면 머나먼 나라로 이동하는 새가 그리 많겠는지요.
--- p.162
위기가 닥치면 약자가 먼저 희생됩니다. 사람보다 약한 새나 다른 동식물이 먼저 죽어 나가고, 그다음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우리는 지금 그들이 한꺼번에 죽어 나가는 현상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 p.167
새를 보는 일은 결국 새를, 새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는 일입니다. 새의 전체를 온전하게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제 자신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낮이든 밤이든 주중이든 주말이든 새를 보러 그렇게 다니는 까닭은 바로 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나이가 들고 어느덧 체력도 떨어져 꿈도 희미해지는 저의 맨 얼굴, 한때 정의를 부르짖고 사랑과 평화를 간구했지만 점점 초라해지는 저를 직시하려고요. 여전히 풍경을 보는 눈, 지도를 보는 눈에 머물고 있지만 생명을 보는 눈으로 나아가야 할 한 인간을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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