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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보다 높이

심장보다 높이

창비시선-473이동
신철규 | 창비 | 2022년 04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1 리뷰 9건 | 판매지수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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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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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182g | 125*200*8mm
ISBN13 9788936424732
ISBN10 893642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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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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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질 수 없는 것들이 무너지고 가라앉으면 안 되는 것들이 가라앉았다
꿈속의 얼굴들은 반죽처럼 흘러내렸다
덜 지운 낙서처럼 흐릿하고 지저분했다

누군가가 구겨버린 꿈
누군가가 짓밟아버린 꿈

어떤 기억은 심장에 새겨지기도 한다
심장이 뛸 때마다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간다
--- 「심장보다 높이」 중에서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생각을 멈추어도 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려고 한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되려고 한다
--- 「해변의 눈사람」 중에서

손과 손이 만나 악수가 되고
바람과 바람이 만나 태풍이 되고
입술과 입술이 만나 말이 되고 사랑이 된다

(…)

손이 멀어지면 몸도 마음도 멀어진다
몸에서 마음이 떠난다
뜨거웠던 입김이 차가워지고
손과 뺨 사이에 타오르던 불꽃
붉어진 뺨만큼 손바닥도 아리다
--- 「뜨거운 손」 중에서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
나약하기 때문에 이기적인 인간
이기적인 것을 감추려고 나약함을 과시하는 인간

신이 현미경으로 볼 때 인간은
지구라는 거대한 사탕에 붙은 먼지검불 같은 것
아무리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광활한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격리 시설 같은 곳이겠지
한번 들어오면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는
--- 「인간의 조건」 중에서

나는 지은 죄와 지을 죄를 고백했다
너무나 분명한 신에게

(…)

이미 울고 있었지만 울고 싶었다
이미 살아 있었지만 살고 싶었다
이미 죽었지만 죽고 싶었다

(…)

다 쏟아내야 끝나는 것이 있다
너무나 분명했던 신이 보이지 않는다
--- 「폭우 지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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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는 한번 읽으면 그 시를 읽지 않은 시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한다. 나에게는 신철규의 「심장보다 높이」라는 시가 그러했다. 시네포엠같이 잔잔하게 이미지가 흐르는 시. 그럼에도 이미지 과잉은 아니고 꼭 적절한 이미지로 최소의 서사를 펼쳐가는 시. 김종삼이 말하는 시네포엠에 가장 가까운 시가 아닐까 한다. 이 시를 읽은 후 욕실 속의 욕조를 볼 때마다 캄캄한 정전이, 물의 재난이, 침몰의 공포가, 스틱스라는 저승의 강이, 헐떡이는 심장이, 몸의 위태로움이, 욕실 문을 긁는 고양이의 발이 느껴진다. 물이 심장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재난과 그 악몽! 아, 이런 공포의 액체적 상상력은 만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자꾸 그 시를 생각하게 된다. 이 표제시를 비롯하여 『심장보다 높이』에 실린 시들은 거의 비가의 느낌을 준다. 비가는 때로 연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침몰이라는 재난 이후의 세계에서의 불안과 애도의 우울과 사랑을 그린다. ‘나’보다 키가 작은 연인이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려 ‘나’에게 심장을 맞추는(「빛의 허물」) 사랑의 묘사에서 나는 죽음의 신화에 맞서는 인간의 따스한 몸의 저항을 느꼈다. 몸은 얼마나 허망한가. 그럼에도 “붉게 달아오른 피가 온몸에 장미 문신을 그려놓는”(「침묵의 미로」) 사랑의 순간은 소멸에 맞서는 절묘한 아름다움이다. 몸도 허망하고 시간도 삶도 허망하지만 타인의 아픈 심장에 나의 슬픈 심장을 맞추는 것, 그것이 이 시집이 보여주는 생명의 눈부신 약동이자 문학의 윤리다. 시는 곧 임상이자 의료라는 것을 신철규의 아름다운 시는 잘 보여준다.
- 김승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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