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같은 밤
토머스는 과학 시간에 유전 단원을 배우면서 자신이 입양아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부모님은 토머스가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자세한 설명을 거부하고, 집 안에는 3주째 냉랭한 기운만이 감돈다. 그러던 어느 저녁, 그레이트폴스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힌 사내 두 명이 집으로 찾아온다. 그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토머스의 출생일과 태어난 장소를 확인하더니, 눈앞에서 부모님을 무참히 살해하고 토머스를 납치하려고 한다. 토머스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 가까스로 탈출한 뒤 유일한 친구인 재크의 도움을 받아 그레이트폴스로 달아난다.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토머스 핸들, 맞지?”
얼굴에 흉터가 있는 경찰이 토머스에게 물었다.
“아……, 네.”
“2007년 6월 20일 오후 5시 30분, 그레이트폴스 시립 병원 산부인과 출생이 맞고?”
토머스가 입을 다문 채 물끄러미 쳐다보자 어머니가 대신 답했다.
“네, 맞아요. 그런데…….”
그 순간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키 작은 경찰이 총을 꺼내 들더니 어머니에게 두 발을 연달아 쏘았다. 아버지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을 겨를조차 없었다. 키 큰 경찰이 개머리판으로 아버지를 후려쳐 쓰러뜨리고는 곧장 사살했기 때문이다.
“너는 우리랑 간다.”
키 작은 경찰이 토머스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토머스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부모님을 구하려는 반사적인 몸짓조차 불가능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진 어머니의 몸 주위로 핏물이 퍼져 나가는 걸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얼떨떨하기만 했다. 키 큰 경찰이 토머스를 잡아끌며 집 밖으로 나가더니, 자기네가 타고 온 소형 트럭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마침 길 위에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났다. 경찰이 눈살을 찌푸리며 토머스의 옆구리에 총부리를 들이밀었다.
“잔머리 굴릴 생각 하지 마!”
옆구리가 아파서였을까? 아니면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그 순간, 토머스는 무감각 상태에서 벗어났다. 아드레날린이 확 솟구치면서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가는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경찰이 지나가는 자동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1초가 될까 말까 한 찰나의 순간, 토머스는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하여 경찰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 p.9~10
위험한 제안
토머스는 그레이트폴스에서 살인범들의 정체와 자신을 뒤쫓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애쓰지만 혈혈단신 청소년에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조금씩 희망을 잃어가던 그때, 집에 찾아와 현장 조사를 했던 팀 경감을 발견하고 그를 미행하다가 한 요양원에서 사지 마비 환자인 솔을 만나게 된다. 뛰어난 직감과 말솜씨로 토머스의 관심을 사로잡은 솔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면 토머스의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은밀하게 제안한다. 토머스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은 솔은 경찰서의 인맥과 요양원 사람들, 그리고 토머스를 움직여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거기 너, 누구야?”
토머스는 화들짝 놀랐다. 휠체어에 타고 있던 솔이라는 남자가 소리친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못하기 때문에 토머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직 여기에 있는 거 알아. 숨소리가 들리거든.”
토머스는 적당히 둘러댔다.
“이모할머니를 뵈러 온 건데요.”
“웃기고 있네. 네 말이 사실이면 난 발레단 수석 무용수야.”
토머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당장 말해. 그러지 않으면 간호사를 부르겠어.”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사지가 마비되긴 했어도 머리는 멀쩡하거든? 네 옆에 있는 할머니도 원래부터 그런 상태는 아니었어. 여덟 달 전에 여기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 그때는 뇌졸중이 일어나기 전이었으니까. 그 할머니의 유일한 불평이 자기를 보러 올 가족이나 친척이 한 명도 없다는 거였어. 무남독녀로 태어나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았다더군. 그런데 갑자기 종손이 나타났다는 걸 나더러 믿으라고?”
토머스는 문 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기다려!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그냥 설명을 듣고 싶을 뿐이야.”
솔은 토머스가 입을 꾹 다물자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노숙자가 요양원에 밥과 온기를 노리고 들어오는 일은 드물지 않아. 하지만 너한테서는 거리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궁금한 거야.”
“아저씨 짐작대로 전 노숙자예요. 밖이 너무 추워서 방문객으로 위장해 들어온 거고요.”
“어떻게 들어왔다는 거지? 방문객은 입소자의 이름을 대지 않으면 로비를 통과할 수 없어.”
“되게 끈질긴 분이네요.”
“경찰이었을 적만 해도 그게 내 최고의 장점이었지. 가까이 와 볼래? 얼굴 좀 보게.”
토머스는 휠체어를 빙 돌아서 솔의 맞은편에 가 섰다. 예상대로 한창 일할 나이대의 어른으로 보였다. 토머스를 바라보는 솔의 눈은 몸 상태와 딴판으로 활력을 뿜어내면서도 그 속에 한없이 깊은 슬픔이 어른거렸다.
“잠시라도 재미 볼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모자 좀 벗어 볼래? 제발 부탁이야.”
토머스는 주저하며 모자를 벗었다.
“과연! 아까 그 가족사진 속의 아들이 맞구나. 대체 여기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 중이야?”
--- p.69~71
새로운 문
그들은 핸들 일가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팀 경감을 통해 경찰의 수사 정보를 얻던 중, 토머스가 부모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세 건의 살인 사건을 하나로 연결하는 날짜가 바로 토머스의 출생일인 2007년 6월 20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이 과정에서 거대 제약 회사 파머코프사의 음모가 얽혀 들면서 무시무시한 진실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토머스는 쭈뼛거리며 병실로 들어갔다.
“아, 너구나.”
“네, 저예요. 죄송하다는 말을 하러 왔어요.”
“뭐가 죄송하지? 도둑놈처럼 도망친 거? 아니면 나한테 처음부터 거짓말한 거?”
“거짓말한 적은…….”
“영양가 없는 대화는 그만두자. 토머스, 방금 팀과 통화했어. 상가 약국 하면 뭐 떠오르는 거 있니?”
“거기에서 펜토바르비탈을 훔쳤어요.”
“그래, 내 짐작대로군. 럭키 박스 같은 데서 그런 약이 나왔을 리도 없고. 문제는 약국의 감시 카메라야. 기술팀이 영상을 세밀하게 잘라서 분석해 봤더니 영화에나 나오는 ‘순간 이동’ 장면을 본 것 같다고 했다는구나. 대체 무슨 소린지 설명 좀 해 볼래? 어려서부터 이사를 왜 그리 자주 다녔지? 팀이 네가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가 선생님들을 만나고 왔어. 청소부 아주머니가 널 악마라고 했다는데…….”
토머스는 이를 악물었다. 평생 숨기고 싶었던 일을 저런 식으로 떠벌리다니!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다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놈의 능력, 아니 저주 때문에 구경거리가 되기 일쑤인 데다 심지어 괴물 취급까지 당하는 게 어떤 건지 알까? 누군가 우리를 찾아올까 봐 야반도주를 밥 먹듯이 하고, 피난살이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다는 게 뭔지 아냐고! 솔은 토머스가 흥분한 것을 눈치채고는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말을 이었다.
“토머스, 나한테 다 털어놔 봐.”
토머스의 뺨 위로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절망적인 처지 때문에 나오는 눈물인지, 아니면 자기만큼이나 팔자가 고약한 사람을 만나서 나오는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마음속의 둑이 무너진 듯했다.
토머스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누구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능력으로 살인범들을 두 번이나 따돌리고 여기까지 왔노라고 고백했다.
“제가 미친놈처럼 보일 거라는 거 알아요. 이런 얘기를 털어놓으면 상대방은 절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줄행랑치곤 했으니까요.”
“난 그럴 수가 없는걸. 휠체어에 처박혀 사는 주제에 널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줄행랑칠 수 있겠니?”
“죄송해요.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고…….”
“농담이야.”
“아, 그럼 아저씬 제 말을 믿어요?”
솔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 p.124~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