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7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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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422g | 140*210*15mm |
ISBN13 | 9788936486822 |
ISBN10 | 8936486829 |
발행일 | 2022년 07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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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422g | 140*210*15mm |
ISBN13 | 9788936486822 |
ISBN10 | 8936486829 |
프롤로그 다른 세계를 그린다는 것 1부 | 공정의 해체와 재구성 1장 |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을 갈망하기까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공정’이라는 시대정신 / 불안정한 사회, 불안한 청년 / 불안정성에 대한 개별주의적 반격 / 각자도생과 식민화된 삶 2장 | 불공정한 ‘공정성 담론’을 해부하다 나도 인국공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 로또취업방지법? / ‘공정’이라는 폐쇄 담론 / 닫힌 세계의 해로움 3장 | “능력주의는 허구”라고 말한다는 것의 의미 시험은 누구에게나 공정하잖아요 / 능력주의의 승자라면 인정합니다 / 마이클 샌델을 넘어서: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주의 비판 4장 | 가진 자들의 사회: ‘공정’에 가려진 차별과 혐오 ‘공정’의 이름으로 할당제를 폐지하라 / 백래시와 무지의 결탁 / 능력과 능력주의, 차별의 공모자 / 차별과 혐오를 넘어: 인정의 재분배 2부 | 다시 쓰는 정의론 5장 | 모두를 위한 돌봄: 두려움 없이 연대하는 나 그리고 우리 번아웃이라고 느껴질 때 / 돌봄의 윤리와 관계적 존재론 / 급진적 자기돌봄 6장 | 보편적 정의: 모두가 온전히 평등한 세계 ‘자유’라는 이름의 사기극: 무한 경쟁, 제1라운드 / 비교와 선별의 위계: 무한 경쟁, 제2라운드 / 무한 경쟁의 스펙트럼을 넘어서: 모두를 위한 정의 7장 | 정의로운 조직: 모두가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곳 갑질은 왜 이렇게 흔할까 / 정의로운 조직은 가능하다 / 지속가능한 일, 조직, 그리고 삶 8장 | 변혁정의의 비전: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영원히 지연되는 미래 / 시대와 불화하는 예시의 정치 / 풀뿌리의 힘: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든다 감사의 글 주 |
김정희원 교수의 공정 이후의 세계는 2022년에 출간된 책으로 한국의 현 신자유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예리하게 분석해주는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가 애리조나 주립대의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라서 공정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궁금했다. 알고보니 교수는 '소셜 코리아'라는 단체를 운영하는 적극적인 사회활동가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느낀 감상은, 한국의 세태를 정확히 꿰뚫고 분석하는 내용 덕분에 속이 시원했다는 것, 그리고 교수님이 피 토하는 심정으로 한국의 미래를 위해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지 외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간절하고 확신있는 톤이었다.
단순히 현 상황을 비판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구조적인, 장기적인 시스템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공정에 대한 담론이 납작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수 있고, 함께 상생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참 와닿았다. 동의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지금 각자도생의 교리의 나라다.
(각자도생의 ‘논리’가 아니라 ‘교리’다!)
계급장 떼고 붙어서 각자 노력해 본인이 얼마나 뛰어나고 치열하게 살았는지 대적해보자. 라는 분위기.
그리고 여기서 이기는 사람은 응당, 정당하게 그 댓가를 획득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공정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높게 쳐준다.
지금 한국에서 공정이란 바로 이런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치열하게 취업준비해서, 정규직으로 입사해, 종잣돈 모아 재테크 열심히 한 끝에, 부차적 수입까지 만들어 그렇게 중상위층에 진입했으니 나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이것이야말로 공정한 사회라는 논리다.
하지만 김정희원 교수가 지적하는 부분은, 언뜻 보면 논리적으로 보이는 이 삶이 사실은 기업 식민화corporate colonization 현상이 삶에 자연스럽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기업 식민화라는 단어는 처음 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생소하면서도 최근 한국에서 떠오른 단어인 ‘갓생’을 학문적으로 명료하게 정의해주는 단어라고 생각되었다.
기업 식민화corporate colonization는 다시 말해 일종의 기업 논리가 삶 전체에 침투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열심히 살면 보상받는다, 내가 노력한만큼 나에게 돌아온다. 라는 믿음인 것이다.
문제는 슬프게도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이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질 자체도 부모의 경제수준에 따라 급격히 차이가 나는 나라.
사회복지제도와 노동자 권리가 여전히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한국에서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는 계속해서 도태되고, 약육강식의 극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혼자’ 살아남는 구조를 공고히 할 수 밖에 없다.
(쓰다보니까 오징어 게임, 피지컬 100이 생각난다.)
겉으로는 공정해보이지만 그 속은 차별과 도태와 불평등이 난무하는 시스템인데, 이건 정부 입장에서 굉장히 날로 먹는 세뇌구조라고 느껴졌다.
갓생을 추켜세워주고 개천의 용을 칭찬해주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 않은 본인에 대해 자책만 할 뿐, 사회복지 제도와 재분배 시스템을 상상하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세상을 겪어보지 않아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주의가 공산주의 좌파 담론으로 무기화되는 나라에서 낙인 찍히는 것이 무서워 차마 요구할 용기를 내지 못하기도 한다. (쓰다보니 더 슬퍼진다)
김정희원 교수가 강조하는 대책들은 유럽의 사회주의적 복지와 재분배 시스템을 많이 닮았다고 느껴졌다.
어느 한 명을 제치고 내가 올라선다고 장기적인 행복이 유지될 수 없으며, 급진적 자기돌봄 (공동체와 연대, 상생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 윤리를 토대로 저울을 재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매우 와닿았다. 특히 본인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고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는 말이 굉장히 따뜻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현 정부와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갇혀 있는 폐쇄적 선동 담론을 넘어서 연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매우 의미있는 글이다. 누스바움 같은 이들은 마치 '선량한 시민'이면 무언가 해결될 듯한 인상을 주는 글이 주는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던 글이다. 각각의 벽에 갇힌 개인의 틀을 넘어서 연대로 나아가서 무언가 변화를 모색해 보자는 매우 실천적 제안이다. 한국 사회에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공정은 흡인력이 있다. 왜 그런가. 불안정과 사회 갈등의 국면에서 공정이란 말에 동조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키멀은 미국 사회가 최근 사회문화적 구조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밀려난' 백인 남성들이 세상이 변하는 바람에 내가 억울하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느낀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 같은 억울한 감정을 피해 입은 특권이라고 명명했다. 백인 남성들이 되레 피해자 정체청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젠더 상황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공정성을 매개로 한 미국 사회의 담론을 세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개인 책임("네가 진 빚은 네 책임이지"), 둘째 각자 도생("나도 노력한 거야. 나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셋째 고통 감내의 원칙("나 여기까지 오려고 죽도록 고생했어. 너도 고생 좀 해야지")이다. 한국 사회의 공정 경쟁, 각자도생, 능력주의 논리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공정성 모델은 구조적 역사적 불평등을 무화시키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회적 맥락의 효과를 지워버리는 원자화 모델이다. '온전한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차별과 불평등을 외면하게 만든다.
돌이켜 보면 '자기 계발서'가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많이 팔려나갔고,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유행을 타고 우리들 내면에 스며들면서 어느덧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이 체화된 결과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마무리된 건 아닌지. 우리는 어떻게 이 콘크리트를 해체할 것인가.
해당 문건은 <오징어 게임>을 소재로, 특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초점을 맞춰 한국 사회를 분석해나간다. <오징어 게임>의 암울한 줄거리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느끼는 절망감, 그중에서도 취직, 결혼, 계층 이동이 좌절된 청년 세대의 절망감을 반영한다고 설명하면서, 거대 양당의 유력 대선후보 두 명이 모두 '공정 fair'하고 '정의로운 just'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똑같이 외치는 것이 청년 세대의 냉소만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
비단 미국 외교관들만 요즘의 한국 사회를 이렇게 독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 듯하다. 이제 더 이상 신조어가 아니라 클리셰가 되어버린 '헬조선' '흙수저' '영끌' 같은 단어를 다시 되새겨본다. 우리 앞에 놓인 삶에 대한 좌절과 무력감, 특권층에 대한 분노와 불신,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 그래서 어떻게든 생존하거나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대박을 치고 싶은 심정.
<공정 이후의 세계>, 16~17쪽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엄청났던 것으로 보아 이는 한국을 포함한 고도로 발전했지만 속의 군데군데가 곪아 있는 국가와 사회들의 실상을 잘 반영하고 풍자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정'과 '정의', 이 두 단어를 남발하는 이들은 많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다. 오히려 부조리하다. 아직도 n 포 세대, 헬조선, 영끌과 같은 단어들이 성행하는 것으로 보아 더욱더 그렇다.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 책을 읽다 보면 감이 잡힐 것이다.
통계청은 국제노동기구 ILO 의 기준을 따라 주 1시간 이상만 일하면 취업자로 정의한다. 또한 수입이 없더라도 가족의 사업을 돕고 있거나 일시적인 이유로 휴직 중이라면 모두 취업자로 집계된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실업률이 체감 실업률보다 훨씬 낮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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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자조와 냉소, 혹은 분노와 좌절이 담긴 '노오력'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런 경험에서 나온다. 고도성장기에 청년 시절을 보내며 국가와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했던 이들이 기억하는 20대와 오랜 저성장 사회에서 단 한번도 경제적 호황을 누려보지 못한 채 그저 일다운 일을 찾기 위해 계속 달려온 이들이 경험한 20대는 전혀 다른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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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기대해왔던 사회적, 경제적 특권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이들의 억울함, 박탈감, 피해의식은 한국 사회에서도 관찰된다. 문제는 한국 정치가 이 같은 불안한 마음의 근본적 요인과 구조적 기원을 탐색하려 애쓰기보다 오히려 이런 심리를 적극 이용하면서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 이후의 세계>, 20~25쪽
한국 정치가 이젠 정말 올바른 길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진정한 의미로' 상식적이고 이상적인 형태의 정치로 탈바꿈해야 하나 퇴보 중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대, 사회 초년생을 타깃으로 한 공약과 정책을 나름대로 내놓는 다곤 하지만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에 불과한지, 단순 표심과 지지를 얻기 위해 겉치레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의 본질적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는 책이라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한편으로 공감을, 또 한 편으로는 반성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공정성을 매개로 한 당시 미국의 사회적 담론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개인 책임 individual responsibility ("네가 진 빚은 네 책임이지."), 둘째 각자도생 bootstrap mentality ("나도 노력한 거야. 너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셋째 고통 감내의 원칙 sufferance doctrine ("나 여기까지 오려고 죽도록 고생했어. 너도 고생 좀 해야지.")이다. 한국 사회의 공정 경쟁, 각자도생, 능력주의 논리와 놀랍도록 닮아 있지 않은가?
<공정 이후의 세계>, 32쪽
미국 사회에서 자국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문제는 사회 갈등의 핵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부유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 어마어마하기로 유명한 미국 대학의 학자금을 대출받기로 결정한 학생들은 졸업 후 5년까지 빚이 줄기는 커녕 더 늘어나기 까지 하는 기현상을 맞본다. 불어나는 이자를 비롯해 빚을 모두 갚기 위해 그들은 뼈빠지게 일하고 40대가 되어서야 20대 초반의 학자금 대출을 마무리하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이 끝나는 것이다. 미국 내에선 민주당과 공화당 진영 간 이 문제를 두고 의견 충돌이 잦다고 한다. 비교적 나이대가 높은 공화당 지지자들은 왜 정부가 학생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구제책을 펼치냐고 불만을 가지며 점점 더 거세게 항의 중에 있다.
'온전한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차별과 불평등을 외면하게 만든다. 모든 개인은 노력을 통해 성취해야 하며 그외의 경로는 부당하다. 나의 '노오력'은 내 미래를 배신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구조적 억압과 불평등을 조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과 수정 조치는 나의 노력을 보장할 것 같지 않으니 일단 반대한다.
<공정 이후의 세계>, 33쪽
정치인들은 제각기 자기 이름을 걸고 "OOO표 공정"을 내세우며 공정의 의미를 재정의하려 들지만, 한국 사회에서 공정의 의미는 확장되기보다 더욱 빈곤해지고 있다. 그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본질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건설적인 논의는 불가능해진다.
<공정 이후의 세계>, 44쪽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결과를 '불공정하다'는 프레임으로 공격함으로써 다른 대항 담론의 형성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유리한 담론적 지위를 더 쉽게 확보하게 된다. 스탠리 디츠는 폐쇄 담론은 일종의 자기참조체계 sel-referential system 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특정 기표 signifier 의 의미가 고정됨으로써 기존의 조직, 이해관계, 권력 그 자체를 스스로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 같은 폐쇄 담론은 갈등의 실체를 은폐하고 해당 맥락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형태로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폐쇄 담론은 사회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공정 이후의 세계>, 46쪽
인국공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한참인 때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사회 문제에 대한 담론에 참여하기 위해선, 저자의 말에 의하면, '공정'을 외치는 이들만이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다. 길게는 10년 가까이 해당 업무를 수행한 이들임에도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당사자들. 오랜 기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인력임에도 그동안 채용 당시와 다르지 않은 봉급에, 곱지 않은 시선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던 것이다. 실상은 정규직 전환이 아닌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이었는데도 일부 정치인들과 선동꾼들의 억지 주장과 논리로 정확한 정보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갔다. 자극적인, 자칫 미취업자와 취준생의 분노를 살 수 있는 제목으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오보를 되짚는 기자들의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정규직 채용 인원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 아니냐는 논리로 인해 취업률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에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것이다. 소위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내가 얻을 수 있는 밥그릇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내가 확실히 밥그릇의 주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식이다.
대학이든 전문 직종이든, 단지 정원만 늘린다고 해도 공정하지 않다며 당사자들이 즉각 발발하는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반발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의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내가 앞으로 개원해서 먹고살기가 힘들어지겠지.")이나 사회적 지위("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겨우 정규직 자리를 잡았는데 아무나 이런 자격을 쉽게 가져가서는 안 되지.")를 걱정하는 움직임일 때가 많지만,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그저 공정성을 잃을까 우려된다고 호소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이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가치중립화하는 언설을 동원한다. 한국의 공정성 담론에서 매우 두드러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공정 이후의 세계>, 50쪽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충돌하는 사안이면 무조건이고 반대하는 현상이 지배적이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라는 저자의 말이 재밌으면서도 씁쓸하다. 사람 심리라는 게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하고 이익에 침해되는 것에 반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긴 하다만, 협력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현실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으로 나의 편의가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사유서 세장이면 해고할 수 있는 거 알지?"
...
"마음 같아선 사직서를 쓰게 하고 싶은데 기회를 줘보는 거야. 어떻게 하나 보려고."
...
"또 이렇게 영혼 없는 소리 할 거면 바로 찢어버리고 사표로 바꿔서 쓰게 할 거야."
...
"다들 보셨죠? 사유서. 그래, 내가 '충격요법'을 줬는데 그간 뭘 느꼈어?"
...
미국 출국을 며칠 앞두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정신이 없었지만 어쩐지 꼭 참여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사단법인 직장갑질 119'와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직장갑질 뿌수기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직장 내 괴롭힘 수기'를 읽으면서 1분 간격으로 한숨을 내쉬다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고통을 겪고 계신 어떤 분이 "때로는 지는 싸움이라도 꼭 해야 한다"라고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대목에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공정 이후의 세계>, 171쪽
때로는 지는 싸움이라도 꼭 해야 한다.
과거에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겪고서도 속으로만 참고 넘어갔던 게 늘 후회로 남았다. 요즘은 후회하지 않으려 잘못된 것을 그때그때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과거로 갈 수만 있다면 하나하나 바로잡고 마땅한 조치를 취하고 싶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거나 공론화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로 재직 중이기에 문체와 단어 선택이 정교하고 마치 논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평소 '한국 사회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어 왔거나 공정성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해 지적인 탐구를 하고 싶었던 독자들에게 꼭 한 번쯤은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근 2년간 우리 사회에서 들끓었던 공정성과 관련된 이슈 하나하나를 되짚어보고 진실에 다가갈 수 있으며 미국 사회현상과 비교까지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책!
※ 이 리뷰는 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