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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 우리 아이는 왜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 물음의 답을 찾다

희정 글 / 정택용 사진 / 반올림 기획 | 오월의봄 | 2022년 10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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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468g | 135*210*24mm
ISBN13 9791168730359
ISBN10 11687303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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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 | 문제가 되지 못한 문제들

1부 목소리들

1.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_ 이혜주 이야기
다른 대화: “그럼 넌 내 마음을 아니?”
2. “이제 그 답을 하고자 합니다” _ 김수정 이야기
다른 대화: 산재 신청을 하기까지
3. “그 마음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_ 정미선 이야기
다른 대화: 한 사람 몫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4. 선택지와 직업병

2부 무지와 증명

1. 무지의 이유
2. 증명의 곤혹
3. “평등하지 않기에 근거가 없는 거죠” _ 김명희 보건학 연구자 인터뷰

3부 목소리의 길목

1. 끝이 나지 않은 시작들
2. “우리가 또 하나의 의미를 던졌구나” _ 제주의료원 사건 관계자 인터뷰
3.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없었던 거죠” _ 조승규 반올림 노무사 인터뷰

4부 정상 일터의 사소한 비밀

1. 본 적 없는 사람들
2. 일터, 힘의 세계이자 긍정적 육체의 세계
3. “임신이 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_ 이현주 우송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인터뷰

5부 누군가의 자리,여성

1. “그래도, 그때도 이겨냈어요” _ 김희연, 박지숙 이야기
2. “공주처럼 살라고 그러더라고요” _ 최선애 이야기
3. 오퍼레이터로 태어나서
4. 더 낮은 곳에서 더 위험하게

6부 우리가 동의한 미래

1. 싸우는 사람들의 이동
2. 상식을 만드는 사람들
3. 우리의 삶이 넓어지도록

에필로그.

저자 소개 (3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들이 일한 반도체 클린룸(clean room)은 아주 작은 먼지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기압에서 일해야 했다. 교대근무로 낮밤이 바뀌었고, 성과 경쟁은 몸을 고단하게 했다. 하얀 방진복 안이 땀으로 축축했다. 그들이 사용한 화학물질 일부는 고약한 냄새를 냈고, 그 때문인지 자주 두통에 시달렸다.
--- p.7

그런데 10년이 지나, 이번에는 중년의 모습을 한 이들이 반도체 작업장 환경을 설명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일터였다. 다만 그들이 이상을 호소하는 것은 자신의 몸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자녀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자녀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됐다. 이들이 수정란, 정자, 태아와 같은 상태로 존재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
--- p.8

영세-중소사업장이나 서비스업 판매직원 같은, 그러니까 소위 ‘여자 일자리’라 불리는 직장엔 면역력이 없었다.
--- p.25

직업병에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은 ‘회사가 좋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회사를 좋아했다. 회사 ‘덕분’에 남의 눈치 안 보고, 입고 싶은 것 입고, 먹고 싶은 것 먹었다. 대학 간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고 살 수 있었고, 회사를 다닌 덕분에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얼마라도 보탤 수 있었다. 회사가 내준 기숙사에 살면서 돈을 모으고 그렇게 모은 돈과 회사 주식을 판 돈을 합쳐 결혼 자금을 만들었다. 그러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26

임신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그 ‘당연한’ 일을 하지 않으면 눈총이 따라왔다. 관리자만 보내는 시선이 아니었다. 동료들도 불편해했다. 하지만 그가 임신을 한 2000년대 초반은 외환위기를 갓 벗어난 무렵이었다. 회사 밖에선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를 ‘임신’을 이유로 그만둘 순 없었다. 적은 수지만 하나둘 버티는 여성들이 생겨났다. 수정씨도 마찬가지였다.
--- p.50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음 날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날은 울었겠지만, 수정씨는 다음 날 여느 회사원처럼 출근했다. 임신도 눈치가 보이는데, 동료들에게 안 좋은 개인사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힘들었다.
--- p.51

1991년 1월 14일, 그의 입사일이다. 30년이 지났건만 미선씨는 입사한 날짜를 기억했다. 후에 보니 삼성반도체 전직 사원 중에 입사일을 통장이나 현관 비밀번호로 지금껏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기억에 남을 날이다. 첫 직장. 심지어 대기업 취업이었다.
--- p.77

“한 대는 무조건 청소를 해야 했거든요. 그러면 문을 열고 머리를 처박고 닦는 거예요. 마스크를 쓰면 냄새도 냄새지만, 땀이 비 오듯 나니까. 열기가 남아 있으니까, 마스크 안 쓰고 할 때도 많았죠.”
--- p.79

그러면 오퍼레이터는 화학물질을 다루지 않은 사람인가? 황유미씨는 화학물질 액체질(불산)이 담긴 통에 반도체 칩을 담갔다 빼는 일명 ‘퐁당퐁당’ 작업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렸다. 용액이 모자라면 가져와서 설비에 채워 넣는 사람도, 누출된 유해물질을 닦아 뒤처리하는 사람도 오퍼레이터이다. 취급과 이것은 얼마나 다르다는 것인가. 사고가 난다면 오퍼레이터가 먼저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 p.120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무관심은 사회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덜 위험하고, 힘이 덜 드는 일을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여자는 원래 골골거리고, 예민하고, 불평이 많은 존재라는 인식도 한몫 거들었다. 아프다고 말해도 잘 들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증거가 있을 리 없고, 증거가 없으니 개인의 경험을 말하기가 더 위축됐다.
--- p.140

출근 이후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반도체 기업은 기존 제조업과 클린룸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일하는 이들에게 클린룸은 먼지 없는 방에서 굴러가는 컨베이어벨트였다. 작업 속도를 정하는 것은 자동화된 설비이지 작업자 자신이 아니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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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질환 직업병 문제,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처음 시작부터 이 문제가 있었어요.” 사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생식독성과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는 계속 현안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임신 중에 아이를 잃은 노동자가 있었고, 난임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노동자도 있었다. 생리통과 생리불순은 너무 흔해서 큰 문제로 여기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아픈 아이를 낳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독자적인 이슈가 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 문제가 ‘젠더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반올림에 제보한 노동자들은 ‘가족이 몰랐으면 한다, 시댁이 몰랐으면 한다’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저는 생식독성 문제가 공론화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젠더 이슈이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한국사회에서 ‘기형아’를 출산하면 부모가, 특히 엄마가 엄청난 부채감에 시달리잖아요. ‘내가 임신 때 무슨 약을 먹은 게 문제였나. 내가 담배를 피운 게 문제인가.’ 오만가지 죄책감에 시달린단 말이에요. 이 사회적 규범 자체가 여성들을 옭아매고 있는 거지요.”(151쪽)

그렇다면 어떻게 생식독성과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를 ‘문제’로 만들 것인가? 이 책은 이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연구자, 의료·법률 종사자, 그리고 반올림 활동가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문제로 만들어왔다. 이 문제는 한국사회가 함께 다뤄야 할 노동권 문제이자, 인권 문제라는 것, 더 나아가 여성 노동자의 임신과 출산, 건강권 문제이고, 질환과 장애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문제라는 것. 이렇게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왔던 사람들은 2세 질환 직업병 문제가 이 사회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반도체 직업병이 삼성의 주장처럼 허언이나 괴담이 아닌 진실이었던 것처럼,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도 이 사회의 상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 책을 쓴 기록노동자 희정. 그 또한 이 문제를 널리 알려온 사람 중 한 명이다. 희정은 2011년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란 책을 통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죽거나 병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쓴 바 있다. 그 책이 나온 지 11년이 되었다. 당시 희정이 만난 이들은 어느새 중년이 되어 있었다. 희정이 익히 알고 있던 그 일터의 그 노동자들. 희정은 이들이 겪고 있는 생식독성과 2세 질환 문제를 기록하며 이 문제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희정 작가의 시선과 통찰력은 더욱 깊고 넓어졌다.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하는 희정 작가의 진실된 글쓰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끝난 문제는 없다, 시작일 뿐

2021년 5월, 이혜주(12년 근무), 정미선(8년 근무), 김수정(20년 근무)은 정식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급여 수급인은 모두 자녀들이었다. 자녀들에게 일어난 손상이 자신이 일했던 회사의 근무환경과 연관이 있다며,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세 사람 모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오래 일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태어나자마자 아팠다.

이들이 산재 신청을 할 당시까지만 해도 ‘태아산재법’이 통과되기 전이었다. 즉 자녀는 산재요양급여 수급권자가 될 수 없었다. 당시 법은 ‘근로자’와 그 유족만 산재요양급여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고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산재 신청은 승산이 없는 싸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대법원이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의 2세 질환이 직업병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자 양상은 바뀌었다. 그리고 2021년 일명 태아산재법이 통과되었다(어머니 측의 태아산재만 인정하고 아버지 측의 태아산재는 배제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드디어 부모의 업무환경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건강손상을 입은 자녀가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여전히 현행법에 요양급여 지급 규정이 없다는 입장이다. 아이의 병이 직업병 때문이라는 판결은 났지만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아직 산재 보상을 받지 못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10년간 법정 투쟁 끝에 이룬 것이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았다. 마찬가지로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의 2세 질환 직업병 인정 투쟁도 해결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개정안을 통해 당사자들이 얻은 것은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권한’뿐이었다. 판결을 기다린 간호사들도, 반도체 2세 질환 직업병 피해자들도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끝난 문제는 없다. 시작일 뿐이다.”(167쪽)

태어나자마자 아픈 아이,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클린룸에서 일했던 이혜주씨는 아들이 아프게 태어났다는 것을 첫 수유를 하자마자 알게 되었다. 아이가 모유를 삼키지 못하고 다 게워냈던 것이다. 수술 후 아이는 신장 한쪽이 없다는 판정과 함께 선천성 식도폐쇄증 진단을 받았다. 밥을 먹다가 호흡곤란이 오는 상황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병이다. 음식물이 식도에 걸리면 아이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서 빼내야 한다. 이 때문인지 아이는 자주 아팠다. 무슨 병인지도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혜주씨는 엄마로서 아이를 챙겨야 했다. “엄마가 돼서 여태 몰랐다니” 하는 자책과 함께. “애 키우는 거 너무 힘들어요, 사실.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키우면서 힘이 드니까. 계속 제가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괜히 제 잘못 같고.” 이혜주씨는 아이가 왜 아픈지 늘 궁금했다. 반올림을 만나면서 아이가 직업병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산재 신청을 하겠다고 나섰다. “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계신 분들도 많을 텐데. 한 사람이라도 보태야죠. 여러 사람이 하면 좋지 않나요?”(36쪽)

삼성반도체에서 20년간 일한 김수정씨는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임신 4개월 차에 알았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던 날 의사가 아이의 신장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각종 검사를 받아야 했고, 원인 모를 병에 시달렸다. 김수정씨는 아이가 왜 아픈지 그 원인을 알고 싶었다. 원인은 고사하고 아들의 병명을 알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개복까지 해서 얻은 병명은 콩팥무발생증과 방광요관역류증, 그리고 IgA신증. 신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IgA신증은 10만 명 중 2명이 걸린다는 희귀질환이었다. 왜 아들은 이런 병을 안고 태어났을까? 김수정씨는 이제 그 답을 알고 있다. 아들이 어렸을 적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라고 묻던 말에 답을 하기 위해 산재 신청을 하게 되었다.

정미선씨는 삼성반도체 온양사업장 1기 사원이다. 1991년에 입사해 1998년 퇴사했다. 퇴사할 당시 그는 임신 중이었다.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날부터 아이는 아팠다. 선천성 거대결장. 아이의 대장은 이미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아이의 대장을 다 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뿐만 아니라 정미선씨 자신도 병을 얻었다. 2010년 갑상선암 진단, 2011년 류머티즘 진단, 2013년 뇌전증 발병, 2014년 자궁경부 이형성증 진단. 그는 산재 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그의 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런 병을 앓으면서도 그는 자신 때문에 아들이 아픈 거라며 부채감을 느끼며 살았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처음에는 신랑한테도 말을 못 했어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혼자 속으로만 삭이고. 어떻게 할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진짜 그 마음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85쪽) 그는 2015년 5월, 산재 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아니라 아들이 수급자였다.

생식독성물질을 누가 알까?
“기업은 알려주지 않는다”


생식독성물질은 여성, 남성의 생식기관에 손상을 일으킨다. 이런 물질에 노출되면 유산·난임, 선천성 질환을 지닌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커진다.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된 가임기 여성은 국내에 최소 10만 명. 이들 대부분이 생식독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쓴다. 즉 생식독성물질이 무엇인지 노동자 대부분은 잘 알 수가 없다. 그만큼 국가와 기업이 그 정보를 숨기고, 잘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재 신청을 한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삼성이라는 회사를 너무 좋아하고 믿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일한 직장이 위험하다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왜 몰랐나. 스스로 찾은 답은 이것이었다. 너무 어려서. 첫 직장 생활이라. 의심하기에는 너무 큰 회사여서. 사원을 ‘가족’이라 말하는 회사였고, 일이 많고 분주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회사였다. 반도체 기업의 오퍼레이터 입사 나이는 대체로 열아홉. 고3 여름방학이 지나 타지로 와서 3주간의 신입 교육을 받은 후 근무지로 배치됐다.”(117쪽) 그들의 나이는 대체로 열아홉, 스무 살. 그 누가 자신이 일하는 곳에 유해물질이 가득하다는 걸 의심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게다가 삼성은 1999년 기흥사업장이 최고 안전 사업장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무재해 세계 기록을 보유한 그 사업장에서 지금까지 직업병 산재 판정을 받은 이는 27명이고, 이 중 12명이 세상을 떠났다. 또 삼성은 고졸의 말단 생산직 오퍼레이터 여성 노동자들에겐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유해물질을 채워 넣고 닦고 뒤처리하는 사람은 모두 오퍼레이터들인데도. “기업은 모를 만한 사람을 뽑아 일을 시키고,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고, 알면서도 모른 척하도록 길들인다. 기업은 일하는 사람의 무지를 조장하는 수많은 장치를 가졌다. 장치는 작동했고, 사람들은 그 장치 위에서 성실히 일했다.”(122~123쪽)

오퍼레이터 또는 여자 일자리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여자 일자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도체 나와서 현실을 깨우쳤죠. 반도체에서 일하던 거는 나가서 써먹을 데가 없어요.”(24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퍼레이터로 입사해 결혼하고 임신을 하면 퇴사하는 게 정해져 있는 길이었다. “갓 스물이 된 오퍼레이터들이 전자·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 7~8년이 되면 자의 반 타의 반 퇴사하며 사라졌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일이며, 전자산업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경력단절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시간은 분절되고, 이것은 다시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자를 만들어낸다. 자본은 끊임없이 생애주기를 조각낸다.”(201쪽) 임신을 해도 퇴사하지 않았던 김수정씨 같은 사람도 회사의 ‘명예퇴직’ 권유에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그 뒤로 ‘여자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다. ‘여자 일자리’란 대게 비정규직, 하청·외주·파견업체 직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반도체 회사를 그만둔 오퍼레이터들도 이런 일자리를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것은 경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여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책은 이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전한다. 여성이라서 임금을 남성보다 적게 받고, 그것도 수십 년째 여성의 월급이 남성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것. 한국사회는 임신한 여성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지극히 드물며, 그래서 여성은 남성보다 근속연수가 짧을 수밖에 없다는 것. 책은 이렇게 ‘여성이라서’라는 이유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현실들을 낱낱이 지적한다. 또한 업무상 재해의 판단 기준이 남성 노동자 중심의 산업에서 발생하는 산재를 중심으로 한 게 많아서, 여성 노동자의 직업병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전한다.

어린 소녀들이 오퍼레이터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자세히 살핀다. 우리 모두 이 생산직 오퍼레이터들을 ‘착하고 모범생이었던 누군가의 딸’로 기억하고 있진 않았는지 묻는다. “젊은 여성을 클린룸에 유폐하고 ‘근면하고 순한’ 노동자로 통제한 것은 기업과 가정의 무의식적인 공모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가 여성을, 아니 자원 없는 여성들을 ‘오퍼레이터로 태어나게’ 한 것은 아닐까.”(295쪽)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생식독성으로 아프게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마음을 나는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다. 그 부모들의 피울음을 곁에서 보면서 10년을 싸웠다. 2020년 마침내 대법원은 산모의 업무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해 산재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이걸로 끝일까? 우리의 일터가 생식독성으로부터 안전한지,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는 없는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 현정희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위원장)
이 책은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보이지 않았던 재생산(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월경과 성/재생산에 대해 말하기를 터부시하는 문화, 여성 노동의 주변화와 평가절하, 자녀의 장애가 엄마의 책임이라는 모성 신화가 부여한 죄책감을 뚫고 ‘태아산재’라는 단어가 국회에서 들리기까지 싸워온 여성 노동자 당사자, 그 자녀들, 활동가들, 연구자들을 성실하게 따라가며 기록한다. ‘태아 산재’만 들었을 때는 특수하고도 생경해 보이지만, 여기에 얽혀 있는 노동권과 재생산권, 장애인권과 건강권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풀어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기록노동자 희정의 탁월함은 그간의 여정의 총화에 가깝다.
-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셰어(SHARE) 기획위원)
피해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제본해서 보관해두었습니다. 주제별로 표시하다 보니 생식독성, 자녀의 건강손상, 여성의 건강권 문제가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그간 없던 문제가 아닌, 아직 문제가 되지 못한 문제였습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 온 희정 작가가 그 내용이 궁금하다 했습니다. 그 후 반올림과 함께 피해자들을 만나고 고민을 나눴습니다. 반올림 사무실 한편에 자리 잡더니 입시생처럼 관련 서적과 논문을 보며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2011년 르포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 나온 뒤 다시 만난 희정 작가는 여전히 성실하고, 더욱 깊어져 있었습니다. 반올림은 이제 이 책을 들고 또 다른 변화를 만들기 위해 활동을 합니다. 함께해주세요.
-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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