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카운터에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공짜 귤을 오른쪽 주머니에 세 개, 왼쪽 주머니에 세 개 욱여넣어도 실망하느라 잠자코 입을 다무는 대신 으이그 하면서 어깨를 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네가 그냥 그런 사람이어서, 평범한 사람이어서 좋다고, 친밀하다고. 네가 나 같다고. 때론 미워 보일 정도로 욕심내 뭔가를 챙기다가도, 문득 마음이 허물어질 때면 남에게 속없이 다 퍼주기도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자고. 너 역시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 어깨를 쳐주면 좋겠다고. 내가 가진 단점, 나약함, 자주 하는 거짓말들, 사과하지 못한 실수들, 떳떳하지 못했던 많은 순간, 나만 아는 비겁함, 자신은 보지 못하고 바깥으로만 손가락질하는 이 마음을 네가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거울을 보듯 중얼거리면서. “그런 게 사람이지.”
---「그런 게 사람이죠」중에서
열아홉 겨울에 서울로 떠나고 집은 늘 잠시 다녀가는 곳 정도로 여길 때,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기 바빠서 나 좋은 거 나 바쁜 거 나 슬픈 거 그런 것에 빠져 고향 집은 먼지 앉은 닫힌 방처럼 여길 때. 그때도 이곳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걸어가다가 혼자 일하는 엄마가 눈에 밟혀 또 가던 길을 멈추고 밭두렁을 올라와 풀을 뽑아주었을 것이다. 엄마 주름이 늘어가는 시간 동안 할머니 허리는 점점 더 굽어갔겠지. 이제 늙은 엄마와 더 늙은 할머니가 뙤약볕 아래에서 풀을 뽑는 가운데 나만 멀뚱히 서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우예 이키 착하나. 그런 말에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만큼 착하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
아무런 셈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자각 없이도 돕는 할머니 곁에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배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이미 틀렸다는 비관이나 사람에게 환멸을 느낀다는 말 같은 건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무런 셈도 없이 돕는 사람」중에서
도망치고 싶어지는 순간이 몸집을 부풀려 커지면, 나는 인숙 씨가 아니라 인숙 씨 집 앞에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속으로 그것들과 겨룬다. 밤새 무서운 기세로 덩굴손을 뻗는 오이, 뙤약볕 아래 매운맛을 응축 중인 고추, 참나무의 양분을 한껏 빨아들이는 표고버섯과 마침표처럼 딴딴하게 여물어가는 참깨 같은 것들. 그런 것들에 지지 않으려고. 너희들이 아무리 무성하게 자라나도, 인숙 씨가 기른 것 중 가장 튼튼한 것은 나여야만 한다고. 이 삶을 아끼는 것으로 나는 그의 자부가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한여름 그늘 한 점 없는 들판에 팔다리를 꼿꼿이 펼치고 선 작물이 된 기분이다.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듯이. 내 삶이 아직 자라고 있다.
---「인숙 씨가 살면서 가장 아낀 것」중에서
시간이 생기면? 하루를 어떻게 쓰고 싶어? 혼자가 된 밤이면 일기장 여백에 틈틈이 ‘진짜 가지고 싶은 시간’에 대해 적어보곤 했다. 괴로운 것을 피해 뒷걸음치는 인생 말고, 좋은 것을 향해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런 물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덜 쓴 희망을 발견한 사람처럼 조용히 기뻐졌다.
---「오늘 하루가 다 내 것이었으면」중에서
망할까 봐 두려워 아무 선택도 하지 않거나,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을 스스로 ‘실패’라 부르는 대신, 계속해 보고 싶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좋은 실패, 실은 좋은 경험들을. 그럼에도 좌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땐 ‘열린 결말’이라 생각해 보기로.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쓰이는 중이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인생은 열린 결말인 셈이니까. 이 경험이 나를 어떤 길로 이끌어갈지, 어디까지 데려갈지 지켜보는 마음으로 걷고 싶다. 덜 낙담하면서 더 씩씩하게.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한 편의 이야기 속을.
---「안 망했어요. 우리 좋은 실패들을 해요」중에서
산자락 아래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 몇 동은 커다랗고 둥근 모자 같은 회색 지붕을 이고 있다. 건물 사이로는 조경이 잘 된 너른 정원이 펼쳐져 있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매일 여름인 나라의 리조트 같다고 한 적도 있는데, 그게 수녀원이라는 걸 검색해 보고서야 알았다. 아침에 창밖 풍경을 기록할 때면 오늘 보고 듣고 냄새 맡은 모든 것들을 적어두는데, 수녀원에서는 반복해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 송풍기를 이용해 도로 위에 떨어진 낙엽과 나뭇가지를 치우는 소리, 수녀원 곳곳의 텃밭에서 농사일을 할 때마다 출동하는 경운기 소리, 비를 맞고 웃자란 풀들을 베어내는 예초기 모터 소리. 어쩌면 이렇게 부지런할까 싶은 소리가 매일 다르게 들려온다.
어제는 자려고 누웠다가 강과 수녀원을 곁에 두고 사는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매일같이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을 책임지고 가꾸는 손길을 볼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작업실 옆이어서 다행이라고. 늘어지거나 우울해지려 할 때마다 누군가 같은 속도, 같은 마음으로 풀을 뽑고 작물을 키우고 비질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운이 난다. 나도 힘을 내서 몸을 일으켜야지, 내 일상을 돌봐야지 하고.
---「오늘이란 계절 속에 있는 것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