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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 양장 ] 현대문학 핀 시리즈-소설 050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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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66g | 104*182*18mm
ISBN13 9791167902436
ISBN10 116790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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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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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머무는 그이들을 상상했다. 무덥고 뜨겁고 견디기 어려운 바다를 바라보는 그이들을 상상했다. 죽음이 흔해져버린 세계에서, 국가가 스스로를 방기한 세계에서, 잔여물들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불안과 우울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바닷가를 산책하는 그이들을 상상했다. 먼 데 수평선이 허공에 걸려 있고 그 너머에서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외롭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하는 감정이 사치스러울 것이다. 그이들은 햇빛 속에 잠겨들듯 더 깊은 물속으로 침잠해갈 것이다. 그곳에서도 무언가가 발견될 것이다.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이장욱, 「작가의 말」」중에서

한나에게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는 힘이 있었다. 천은 그런 재능을 부러워했고 자신도 그런 것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조금씩 닮아갔다. 천은 한나를 따라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단순하다고 생각한 것이 정말 단순한 것으로 느껴지자 천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알았다. 복잡한 이유라든가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방향으로 단순하게 나아가면 된다. 천은 매사에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26~27

천은 소음 때문에 잠을 설쳤다. 소리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천은 자신이 강박증 환자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천은 무엇에든 잘 사로잡혔고 그렇기 때문에 한나와 함께 살았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무엇에든 잘 사로잡히는 사람이라서 나와 함께 사는 게 아닐까.” 한나가 이렇게 물었을때 천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대답했다. “글쎄, 그런가.” 천이 그렇게 흐릿하게 대답을 하면 한나는 천의 볼을 만지며 장난스럽게 덧붙이곤 했다. “그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그렇죠, 배우 님?”
--- p.31

“어쨌든 왕은 선택해야 했어요. 삶으로 돌아가서 삶을 긍정하고 진실의 일면만을 보고 살 것인가, 죽음을 택해서 삶을 부정하고 진실의 온 모습을 볼 것인가.” (......)
“사실 나는 진실의 일면이고 양면이고 하는 것은 관심 없어요. 진실의 온 모습 따위가 뭐야.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시간의 수많은 차원이라는 것도 웃기고 우스워. 우습고 웃기지. 그러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없을 테니까. 아름다움과 추함이 구분되지 않을 테니까.”
--- p.54~55

“떠나야겠어. 떠날게.”
그런 말을 한 것은 한나였고 한나는 한나답지 않게 감상적인 어조로 덧붙였다.
“구름 같고 연기 같은 것을 보고 예감이구나, 하고 깨달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고개를 들면 이미 그것에는 텅 빈 하늘뿐이야. 구름도 연기도 당신도 없어.” (......)
예감을 한 덕분에 천은 놀라지 않았다.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나가 떠나겠다고 한 이유를 말했을 때는 놀랐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 p.62

“아시겠지만 메소드는 일종의 훈련 방법이잖아요. 배우가 배역에 스며들기 위한 것이죠. 그런데 저는 스며든다고 느끼지 않아요.”
“스며들지 않는다면?”
“글쎄요. 스며들지 않는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에 중독되는 기분이랄까요.”
천은 그렇게 말하고 한나를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한나는, 중독이 된다고요? 스며드는 거나 중독되는 거나 그게 그거 아닌가? 하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뭔가 다르긴 다른 것 같아서였는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 p.105~106

자기도 모르게 대사를 치는 건가. 한나는 천의 표정과 말투가 낯설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아, 이건 내가 아는 사람의 표정과 말투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다른 기억과 낯선 감정을 가진 존재이다. 내가 처음부터 다시 이해하고 적응해야 하는…… 타인이다. 한나는 천에게서 이물감을 느꼈고 이물감은 점점 자라났고 그것은 한나의 몸에서 오래 사라지지 않았다. 천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한나는 확신했다.
--- p.131~132

연은 마치 모수가 앞에 있는 것처럼 말했다. 정말이지 모수는 일기를 쓰고 나서 일기에 사로잡힌 사람 같았다. 사로잡힌다고? 그렇지. 사로잡히는 거지. 모수는 무엇을 생각해서 무어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어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 같았다. 말을 하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 같았다. 노트에 그렇게 적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처럼, 모수는 살아갔다. 모수의 노트를 읽어가면서 연은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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