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후 밀어닥친 가난과 산업화의 영향으로 온 국민이 심각한 영양부족과 만성피로에 시달려야 했던 1963년. 우리나라의 한 제약회사에서 박카스라는 획기적인 피로회복제 겸 영양제를 생산해 낸다.
박카스든 쌍화탕이든 1978년 당시에는 중요한 인사 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선물이었다. 그 정도면 받는 사람도 부담 없이 기분 좋게 받을 수 있었고, 들고 가는 사람 역시 큰 부담이 없었다. (6쪽)
당시 광주 시민의 죽음을 절규하며 신촌역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죽어간 부산의 어느 노동자의 이야기는 신문 한 귀퉁이에도 실리지 않았다.
대신, 방송과 신문은 대회 한 달 전부터 시작되는 사전 행사를 연일 방송해서 국민의 눈과 귀를 그곳으로 집중시켰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했다. (71쪽)
“이 쉐끼, 얌마! 내는 대학 못 가봐 모르겄지만, 저거 공부하기 싫어 지랄뱅이 떠는 거 아이면, 저 뭔데? 쟤들 사는 세상은 데모 몇 번 한다고 바뀌는 그런 말랑말랑한 세상이야? 내가 살아온 세상은 겁나 힘들었어. 세상이 데모로 바뀌어? 니미 뽕이다, 마.” (80쪽)
사실, 우석에게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었다. 해동건설 일만 잘 처리한다면 우석은 동호 말처럼 전국구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고, 고졸 출신 어쩌구 하는 무시도 더 이상은 받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우석은 자꾸 순애가 눈에 밟혀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늘의 운세가 동쪽에서 운명이 기다린다 했는데…… . (136쪽)
30년 이상 자본주의 국가는 선하고 공산주의 국가는 악하다는 이분법적인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만을 받아온 우석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우석은 감당하기 힘든 혼란스러움으로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147쪽)
“이 엉터리 감정처럼 이 사건은 온통 엉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좋은 책 읽기 모임은 그냥 독서 모임일 뿐입니다. 책 살 돈 모지란 학생들이 책 돌리 보고, 토론하고, 기특하게도 저들 공부한 거를 야학 열어가 노놔주고……. 잘했다고 박수칠 일이지요! 여기 박진우 군 및 피고인들 모두 피고가 아이고, 이 부당하고 엉터리투성이인 공권력의 피해자입니다!” (181쪽)
지금의 상황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창준에게 문을 나서려던 우석이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그런데…… 국민이 가난하다고 법의 보호도, 민주주의도 누리지 못한다는 건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안녕히 계십시오.” (187쪽)
드디어 〈애국가〉가 끝나자 동영은 손을 내리며 우석에게 말했다.
“어이, 변호사 양반, 당신 생각엔 6·25가 끝난 거 같지? 응? 우리 휴전이야, 휴전, 잠깐 쉬는 거라고. 근데 말이야, 사람들은 전쟁이 다 끝난 줄 알아. 왜 그런 줄 알아? 나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 같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빨갱이들 잡아주니까, 너 같은 놈들이 뜨신 밥 먹고 발 뻗고 자는 거야.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봐, 나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당신이 할 수 있는 애국이 뭔지.” (198쪽)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법적 근거도 없이 국가란 법의 개념도 모르면서 국가 보안 문제라고 마구 내질러서 국가인 국민을 탄압하고 법을 짓밟았잖소?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이 나라 정권을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오?” (230쪽)
“수경아! 먼저 정말 미안하다. 내 신문 보고 뛰어나갈 때만 해도 다 때려칠라 캤다. 그런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진우한테도 그러면 안 되는 거고. 나나 당신한테도 이러면 안 되는 거고……. 근데 내 여기서 때려치면 계속 이럴 거 아이겠나. 여보, 내 포기할 수가 없다. 우리 건우, 연우한텐 이런 세상 물려줄 수가 없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수경아.” (243쪽)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