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선은 수력발전소 댐 때문에 생긴 인공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해미시가 본 가장 추한 댐 중 하나였다. 이곳은 보이는 게 전부였다. 진기하게 생긴 도로나 갈림길 같은 것도 없었다. 직선으로 쭉 뻗은 주도로가 협만까지 이어졌다. 파는 물건이 다 거기서 거기인 식료품 잡화점 네 곳과 철물점, 자동차 정비소, 공예품 상점, 호텔, 피시앤드칩스 식당, 정육점, 술집, 거대한 교회가 하나씩 있었다. 정부 보조금으로 지어진 주택 단지가 협만 건너에 구겨 넣어져 시노선의 개인 소유의 집들과 분리되었다. 그 집들은 하나같이 작고 칙칙했으며, 역시 정부가 지은 반대편 집들과 놀랍도록 똑같이 생겼다.
마을은 어찌나 황량하고 휑한지, 해미시가 언젠가 보았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그럼에도 해미시는 보는 눈들이 있음을 느꼈다. 단정하게 내려진 레이스 커튼 뒤에 숨겨진 눈들. --- p. 10~11
“그러니까 우리는 바보 같은 경찰 한 명을 다른 바보 같은 경찰에게 잃은 거군요.” 주방 문가에서 상류층의 억양이 묻어나는 빈정거림이 들려왔다. “내가 얘기하겠는데 말이오, 순경. 버릇 나쁜 잡종견에게 훌륭한 정육점 고기를 먹이는 게, 뭐 범죄를 푸는 데 얼마나 마음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보다 우선하더라고 당신 상관에게 편지를 쓰겠소.”
“앉으십시오, 메인워링 씨.” 해미시가 말했다. “제가 곧 응대해 드리겠습니다. 도착한 다음부터 숨 돌릴 겨를도 없었답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압니까?”
“선생님 명망이 선생님을 앞서던걸요.” 해미시가 말했다. “여기 서서 서로 불쾌한 말이나 주고받거나, 아니면 진짜 볼일을 보거나 할 수 있겠습니다. 무슨 범죄를 신고하러 오셨습니까?”
윌리엄 메인워링은 부엌 의자를 빼내 앉은 뒤 훤칠한 경찰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파이프를 꺼내 들고 정확하고도 현란한 동작으로 불을 붙였다. 해미시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무슨 범죄냐고 물었소?” 메인워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한 단어로 말해 주리다? 마법술.” --- p. 25~26
“요전 날에 우리 이모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앨리스터 건이 말했다. “골스피로 가는 버스에 탔는데, 새 모피 코트를 입고 있었어. 뒷자리에서 한 아이가 제 엄마한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래. 그러고는 오렌지 냄새가 났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뭔가가 새 코트 뒤를 비비는 게 느껴지더라는 거야.”
“이런, 세상에.” 메인워링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일은 세상 모든 이모에게 다 일어나는 일이지. 저 언덕들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라고. 네 이모가 다음에 듣게 될 말은 이거였다고 말하려는 참이잖아. ‘그러지 마라, 아가야. 오렌지에 털이 다 묻겠다.’”
“그 말 하려던 거 아니었거든요.” 앨리스터 건이 말했다. “전혀 아니지. 완전히 다른 얘기란 말이에요.”
“그럼 뭐지?” 메인워링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즐거운 경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흠, 말하지 않겠어요. 말해 봤자 듣지도 않을 테니까요.” 앨리스터가 발끈했다.
“할 수가 없다는 뜻이겠지.” 메인워링이 조소를 보냈다. “네 녀석들의 문제는 라디오에서 웬 오래된 사연이나 농담을 듣고서는 곧바로 그게 네 이모나 삼촌에게 일어난 웃긴 일이라고 마음을 먹어 버리는 거야.”
술집 문이 열리고 남자 두 명이 또 들어왔다. 앨리스터와 그의 친구는 안도하는 마음에 신이 나서 그들을 맞이했다.
“이런 빌어먹을.” 해미시가 말했다. “저 사람은 항상 저런 식입니까?”
“항상 그래요.” 매카이가 음울하게 말했다. “당신을 봤군요. 이리로 오네요.”
매카이는 그렇게 번개같이 움직이는 사람은 평생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순간 편안하게 앉아 있던 순경이 바로 다음 순간 쏜 화살처럼 문밖을 뛰쳐나가 있었다. --- p. 39~40
그는 사무실 문을 열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물론 모든 것이 그가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있었다. 그는 바닷가재 창고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위스키 잔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 잔을 넣고 중앙 탱크 모서리에 앉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눈을 깜빡였다. 물이 이상하게 분홍색 기운을 띠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천천히 물을 떠 보았다.
분홍색.
그러고서 탱크를 유심히 바라보는데, 찢어지고 조각난 재킷이 수면으로 떠오르며 부글거리는 물 위에서 뒤집히고 또 뒤집혔다.
그는 일어서서 바닷가재 탱크 안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바쁘게 기어 다니는 검은 바닷가재들 밑에 백골이 그를 향해 웃어 보이고 있었다.
샌디는 너무 놀라 졸도할 뻔했다. --- p. 89
“언제가 됐든 조만간 새어 나갈 얘기란 건 생각해 보시지 않았습니까?” 해미시가 말했다. “제 말씀은 바닷가재 말입니다.”
“새어 나가면 안 돼.” 블레어가 말했다. “그랬다가는 내 모가지가 날아갈 거라고. 그리고 자네도 잘리게 내가 확실히 손을 써 두지. 입 닥쳐. 뉴스 나온다.”
그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앞으로 내밀고, 손은 꽉 움켜쥐고 머리는 숙여 우스꽝스럽게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헤드라인과 함께 뉴스가 시작했다. 영국 총리 관저에서 폭탄이 터졌다. 총리를 타깃으로 한 공격이었는데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각료 두 명과 경찰관 한 명, 형사 두 명, 배달부 한 명이 사망했다. 해미시는 멍하게 뉴스를 보았다. 다음은 미국 허리케인 버사의 여파가 스코틀랜드 남서부의 클라이드 강 어귀를 덮쳤다는 소식이었다. 배들이 침몰하고, 날아다니는 점판암에 사람들이 맞아 죽고,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고, 다리에서 차들이 날아갔다.
“오 하느님.” 블레어가 탄식을 내뱉었다. “죽다 살아났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야!”
해미시는 더할 수 없이 역겨운 기분이 들어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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