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는 사랑이다. 채워도 채워도 비어 있는 것,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것이 사랑이다. 채우지 않으면 비어 있는 곳도 없으니, 주지 않으면 모자라는 것도 없으니 채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탄생하는 공간. 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결핍되기 시작하는 시간, 사랑. 사랑은 나를 사라지게 한다. 사랑은 내가 사라질 때만 지속된다. 당신의 손이 먼저이고 당신의 안색이 먼저이고 나는 점점 사라진다. 내가 사라질 때만 나타나는, 내가 부재할 때만 계속되는 순간. 당신을 통해서만 내가 사는 것. 사랑의 방향, 그리고 시간의 방향.
--- p.24
문화가 있는 거리는 은폐된다. 은폐된 곳에서 은폐의 힘으로 개방된다. 이 역설의 논리가 문화의 힘이다. 숨어 빵을 굽고 있는 작은 공간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다. 서로 어깨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러나 어깨가 닿지 않고 소곤거린다. 문화에 대한 또는 문화라는 최소한의 예의.
‘문화 게릴라’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은, 숨어 있는 동시에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전복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
--- p.50
골목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골목의 목록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
골목은 사이에 난 길이다. 마주 보는 이쪽과 저쪽이 있다. 가게끼리 마주 보며 있기도 하고 벽과 집이 마주 보고 있기도 하다. 벽과 벽이 마주 보고 있기도 하다.
골목에서는 멈춘다. 당기는 안쪽이 있기 때문이다. 골목에는 냄새가 배어 있다. 빠져나갈 것은 다 빠져나가도 남는 최종의 것들. 그것들이 섞이며 만드는 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골목. 숨어들기 좋은 곳. 숨어 있기 좋은 곳. 최소한의 통로. 숨통.
--- p.63
내가 걷는 한강에는 다 있다. 강의 물, 물의 결, 물의 결 속, 물의 결 위 공기와 햇빛과 어둠, 다리들, 나팔꽃들, 붉고 찢어진 발가락을 가진 비둘기들. 찢어진 발가락을 신발 속에 감춘 사람들,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타고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애완견을 끌고, 운동을 하고, 낚시를 하고, 졸고, 눕고,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 엄마, 여자, 연인, 친구, 남자, 수녀, 벤치, 운동기구, 절두산, 강 건너편으로 국회의사당, 순복음교회, 방송국, 자전거, 풀밭, 바람의 방향에서 바람의 방향으로 휘어지는 나무들, 내 안으로 흘러드는 가장 먼 강물.
--- p.91
우리 동네가 된다는 것. 슬리퍼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어슬렁거리는 동선이 생긴다는 것. 잘 모르는 가게 주인과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 뒷골목에 있는 오래된 빵집과 오래된 떡집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 가장 맛있는 떡과 빵을 고를 수 있다는 것.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 지도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곳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 길을 자꾸자꾸 발견하게 된다는 것. 알게 되는 골목만큼 잠시 멈춤, 즉 간단(間斷)의 시간도 늘어간다는 것.
--- p.95
그러나 내가 명동을 자주 걷는 것은 ‘풍성한 시간’이어서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게 명동은 서울예전(물론 지금은 서울예대라고 부르지만)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시라는 것을 쓰게 됐는데, 시를 쓰는 순간에만 시간을 만나는, 그러니까 나에게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뜨거운, 숨 막히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을, 슬프거나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충만해서 뜨겁고 숨 막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p.114
소란스러운 시장의 한 구석에서 고요를 만나게 될 때, 고요한 묘지의 한구석에서 고요 안의 고요를 만나게 될 때, 그 고요는 둘 다 잘 스며 있다. 묘지에서 만나는 고요, 시장에서 만나는 시장의 고요. 둘 다 잘 삭아 있다. 시장에 스미는 고요와 묘지에 스미는 고요는 닮아 있다.
묘지에서, 시장에서, 고요를 만날 때, 그것이 고요의 맨 얼굴 같다고 생각된다.
--- p.131
사람은 사람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를 산책할 수 없다면 나 스스로를 산책할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하여, 사람이 된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할 때만이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을 통해서만 사람 너머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니체의 문장대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 사람이다.
우리는 무엇이기 때문에 지상의 시간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무엇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는 한없이 주저앉아서, 때로는 한없이 울면서 사람을 배워간다.
오늘도 사람 속을 걸으며 사람과 이별한다. 이별하며 사람을 이해한다.
-8. 사람 속은 내내 일렁이는 숲이에요(169
세상에 와서 제일 많이 발음한 단어. 나를 세상에 나타나게 한 장본인. 엄마와 나는 하나에서 분리된 둘. 하나가 품었던 하나. 큰 하나가 품었던 아주 작은 하나.
부르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사람. 내 몸이 커진 만큼 자신은 쪼그라들어가는 사람. 오늘도 힘들어서 어쩌니, 나보다 먼저 나의 하루를 살아보는 사람. 내가 걸을 밤길에 마음이 늘 마중 나와 있는 사람.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
세상에 나와 첫 산책은 엄마와 했을 것이다. 나보다 몇 배는 키가 큰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었을 것이다.
--- p.173
앞으로도 문득문득 월정사 천년의 숲길을 걸을 것이다. 전나무 숲길로부터 한암스님의 좌탈입망 모습까지 걸을 것이다. 막막할 때, 나 또한 자연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 묵언에 가까워지고 싶을 때 이 길에 올 것이다. 모성이 깃든 전나무 숲길을 걸어볼 것이다. 걸으면서 달의 근원, 월정(月精), 그 빛의 근원을 가늠해보도록 애쓸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요와 부딪친 내 내부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느닷없이 몸속에서 절 한 채가 떠오르는 순간을 만나게도 되면 좋겠다.
--- p.194
한 편의 시 안에서 같은 단어를 전혀 다르게 써서 언어의 ‘안과 겉’을 보여주는 힘. 유사한 문장만을 가지고 세계의 역전을 보여주는 힘. 모든 움직임은 ‘도저히’라는 정지 상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언어로 증명하는 힘. 모든 것을 다 뚫고 들어가 끝내 남은 원형까지를 확인시키는 힘. 조사 하나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론을 전복시키며 세계의 본질을 꿰뚫는 이 놀라운 아이러니라니!
--- p.204
방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방의 침묵을 쓰는 것.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쓰는 것, 그림이 내게 알려준 것. 갤러리에 가는 것. 그리지 않은 것을 보러 가는 것.
어느 그림 앞에 멈춰 섰던 순간, 가슴이 뛰었던 순간, 빛이 촤르르 내려오던 순간.
식목. 좋은 작품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몸 안으로 이 말이 떠오른다.
---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