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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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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520g | 152*225*30mm
ISBN13 9788932030654
ISBN10 893203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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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대산세계문학총서 145번째 작품이자 국내에 최초로 완역된 소설 『그랜드 호텔』. 독일 바이마르 시대를 배경으로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여러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사회 소설이다. 그 당시 독일의 가치관과 여성주의 대두, 대중문화의 물결까지 한번에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 문학MD 김유리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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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착합니까?” 그가 놀라서 말을 내뱉고 더 사납게 노려보았다. “알겠습니다. 오늘 도착하는군요. 좋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묵을 방은 있나요? 그렇다면 방이 있었다는 얘기군요. 맙소사, 어떻게 총회장이 묵을 방은 있고, 내가 묵을 방은 없다는 겁니까!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이 안 됩니다. 무슨 소린가요? 먼저 예약을 했나요? 나도 예약을 했습니다! 오늘 나는 세번째로 온 겁니다.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오늘 세 번 왔습니다. 비가 오고 있어요. 버스는 만원이고, 난 건강이 안 좋습니다. 내가 아직도 몇 번을 더 와야 하는 겁니까! 뭔가요? 왜 이러죠?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여기가 정말 베를린에서 제일 좋은 호텔입니까? 그래요?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나도 최고 호텔에 투숙 좀 해봅시다. 안 되는 겁니까?” --- p.18

“네, 하지만 당신은 삶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오터른슐라크가 물었다. “선생께서 생각하는 그런 삶이 있을까요? 원래의 것은 항상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법이죠. 젊었을 적에는 나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있으면 저기에 있다고, 인도에, 아메리카에, 포포카테페틀 산이나 뭐 그런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데 가면 삶은 사라져서, 당신이 떠난 바로 이곳에서 조용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인생은 호랑나비 잡으러 다니는 나비 채집꾼 꼴입니다. 날아가는 것을 보면 참 멋있지요. 하지만 잡고 보면 색이 다르고 날개도 상하기 마련이죠.” --- p.54

크링엘라인은 걸어가면서 잔뜩 긴장했다. 너무 긴장해서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는 혼자 뭐라고 말할지 생각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프라이징 회장님, 아침 식사가 좋지요? 네, 저도 그랜드 호텔에 묵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럼 안 되나요? 우리 같은 인간은 그러면 안 되나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됩니다.’
[……] 그는 눈으로 프라이징을 찾았다. 프라이징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프라이징과 해결할 것이 있었다. 원래 그는 그것 때문에 그랜드 호텔에 온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프라이징 씨’라고 그는 말하고 싶었다. --- p.74

그루진스카야는 불을 켜고 일어나서 낡은 실내화를 신고 거울 앞으로 갔다. 시간은 거울 속에도 있었다. 거울이 제일 역력했다. 시간은 날카로운 비판에, 신문의 끔찍스러운 무례함에, 흉하게 늙은 발레리나의 최근 평범해진 공연에, 줄어드는 순회공연에, 작아지는 박수 소리에, 매니저 마이어하임의 당당한 말투 등 곳곳에 어디에나 숨어 있었다. 지친 발목으로 춤을 추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고, 32년간 발레를 공연하며 다니는 동안 제대로 숨을 쉴 틈도 없었다. --- p.96

아무 의미 없는 일이야,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 나는 무엇을 더 기다리나. 왜 고통을 참고 있는 걸까. 난 지쳤어.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당신들은 몰라. 때가 되면 물러난다고 나는 약속했어. 그래, 때가 됐어. 사람들이 내려가라고 휘파람 불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 유명하다는 것이 얼마나 추운지 사람들은 몰라. 나는 혼자야. 아무도 없어. 한 사람도 없어. 나는 허망한 사람, 불안에 떠는 사람일 뿐이야. 나는 항상 혼자였어. 아! 춤을 그만두면 누가 대체 그루진스카야에게 관심이나 가질까! [……] 그래, 마지막은 결국 죽는 거야. 니진스키는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 불쌍한 니진스키. 불쌍한 그루, 난 기다리지 않을 거야. 이제 끝났어. 이젠, 이젠, 이젠…… --- p.129~130

총회장 프라이징이 존경할 만한 인물이며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인 데다 훌륭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질서와 원칙을 지키며 훌륭한 생활 태도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삶은 제대로 정리되고 정돈되어 숨길 것이라고는 없는, 보기에도 훌륭한 삶이었다. 그것은 정리 상자와 서류 파일, 수많은 서랍과 일로 일관된 삶이었다. 프라이징이란 사람으로 말하자면 옳지 않은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잘못된 부분, 그의 삶을 공격하여 보잘것없게 만드는 도덕의 작은 병균, 조그만 불씨, 착한 시민이 입은 조끼의 청결함을 더럽히는 아주 작은 오점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 p.189

“어떻게 생겼느냐고요? 그녀는 늙었고, 아주 마르고 가벼워서 내가 한 손가락으로 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저기 주름이 졌고 눈은 울어서 부어 있고 마치 어릿광대처럼 뒤섞인 언어로 말을 합니다. 그래서 들으면 우스워서 눈물이 날 정도지요. 그런데 이 모두가 나한테는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어쩔 수가 없네요. 진정한 사랑입니다.”--- p.231

대형 호텔에서 일어나는 일은 제대로 마무리되는 빈틈없고 완벽한 운명을 갖지 못하는 법이다. 단지 부스러기, 조각, 부분만이 남을 뿐이다. 무관심한 사람이든 별난 사람이든 모두 객실 안에 들어 있고, 잘 나가는 사람이든 못 나가는 사람이든, 행복이든 파멸이든 전부 다 벽 안에서 일어난다. [……] 이 세상에 온전한 숙명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단지 불확실한 것, 시작만 하고 중단된 것, 완결되지 못한 결말이 있을 뿐이다. 우연으로 보이는 많은 것이 실은 법칙이다.
--- p.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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