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01월 26일 |
---|---|
쪽수, 무게, 크기 | 448쪽 | 568g | 140*210*30mm |
ISBN13 | 9791160943320 |
ISBN10 | 116094332X |
발행일 | 2018년 01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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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8쪽 | 568g | 140*210*30mm |
ISBN13 | 9791160943320 |
ISBN10 | 116094332X |
감사의 말 머리말 프롤로그 _ 순간이 모여 인생을 이루다 내던져진, 그리고 갇혀버린 우리 역사로 자기 인생을 기록하는 영웅과 이름 없는 필부 인생을 심정으로 표현하는 ‘그저 그런’ 사람들 욕으로 정리되는 20세기: 아버지의 마지막 증상 마지막까지 가만가만한 한탄: 어머니라는 여성의 성격학적 증상 자식조차 그들의 인생을 묻지 않았다 아들이 대신 쓰는 자서전 기록도 자료도 없는 보통 사람의 삶은 어떻게 복원될 수 있을까 심층 소망으로 들어가는 입구: 시네마 파라디소 과거로의 여행기 1부 몰락의 순간 _ 아버지의 식민지 시대 1장 기원 혹은 고향, 송곡리 ‘어쩌다’ 신분제가 소멸한 공간 식민지라는 껍데기 2장 제국의 소국민 보통학교가 남긴 것: “내가 일본말을 잘했어” 소국민이 되기 위한 의례 영달이 혹은 아버지의 교실 책 읽는 소년상 3장 청춘으로 들어가는 어떤 붐 소년을 사로잡은 만주 붐 일확천금의 꿈 만주로 가는 길 4장 국민의 자격: 나고야의 조토헤이 독립군도 친일파도 아닌 그 시대의 보통 사람 황국신민 육성을 위한 국가의 교육장, 영화관 스크린 위에 투영된 제국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없네” 신민으로 포섭된 아버지 아버지의 스무 살을 찾아 나고야로 향하다 국가라는 거대한 가족 “어째 오늘 밤 꼭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애요” 2부 탈출의 순간 _ 전쟁과 어머니의 레인보우 클럽 1장 창신동 산동네, 그들만의 세상 일본어가 필요 없는 창신동 산동네 이화장, 경성제국대학 그리고 효제국민학교 2장 전쟁과 운명, 증발된 사춘기 여성의 전쟁 기억 3장 전쟁이 만들어낸 기적들 두 가지 생명선 - 아버지와 유엔군 캐나다 부대의 철수와 파주행 4장 레인보우 클럽의 세상물정 삼거리의 이층 양옥 건물 체면이 필요 없는 생활력의 시대 “외로움 이전에 나는 살아야 한다” 레인보우 클럽이라는 신세계 환영받지 못한 삼거리의 아프레걸 양공주 “그런 썩어빠진 변명은 하지두 말어” 어머니의 길 5장 레인보우 클럽 저 멀리 아메리카 아메리카라는 이상향 “유학을 하고 영어를 하고 박사호 붙어야만” “불쌍하게도 한글을 몰라요” “나는 딱하게도 구식 여자였나 보아” “미국 얘기 들려주세요” 이름조차 명동이라 어두움은 싫다네 불타는 영화관 3부 꿈꾸는 순간 _ 삼거리 무지개 다방의 꼬마 주방장 1장 삼거리, 노씨 가족의 탄생 “나 슬퍼하지 않아. 이제 자식에게 내 애비의 보람을 느껴” “얘, 4?19혁명도 별수가 없구나” “청와대로 이사를 와서 우리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로 했어요” 삼거리의 가족들 가족 밖의 사람들 2장 한국 남자 아버지, 남자들만의 워커힐 “오늘부터 워커힐 쇼에 미라도 나가게 됐는데” 삼거리의 남성 연대 바람피우는 남자들 3장 여자 그리고 어머니, 아니 엄마 “그럼 바로 보는 법을 알려줄까?” “괜찮아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닥터 리는 스탠포드대학에서 AB학위를 받으셨다죠? 참 훌륭하십니다” 4장 나, 어린이의 삼거리 목격담 레인보우 클럽에서 무지개 다방으로 아들의 작은 전후 사회, 신산국민학교 어른들의 숨겨진 학교, 대한뉴스 아이들의 유신학교 “잘살고 못사는 게 팔자만은 아니더라” 삼거리 무지개 다방의 어린 주방장 삼거리의 이중성 “얄개야, 우리에겐 밝고 희망찬 내일이 있어” “난 그런 거 몰라요” 에필로그 _ 미래라는 순간 참고문헌 영화 목록 영상 목록 |
인생극장
노명우
사계절출판사/2018.1.26.
sanbaram
<인생극장>은 1936년부터 2016년까지 자연인 노병욱과 김완숙의 삶을 담은 자서전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 세상의 무수히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한 책이다. 그들의 삶을 저자가 진행한 ‘세상물정극장’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복원해 가며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박정희의 생애와 비교하며 기술한다. ‘세상물정극장’은 식민지 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고전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으로 2014년 하반기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진행되었으며, 저자는 19966년 파주시 광탄면에서 태어나 기지촌의 풍요 속에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다. 지은 책으로 <세상물정의 사회학>,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등 여러 권이 있으며 <사회학이 쓸모> 등의 번역서가 있다.
노병욱은 일제시대 충청남도 공주의 한 시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만주로 가서 사진기술을 배워왔다. 고향으로 돌아와 조치원에 사진관을 차렸지만 징용으로 군대에 입대하게 되고, 나고야에서 일본군 조토헤이, 즉 상병으로 해방을 맞아 돌아왔다. 김완숙은 채석장이 있던 서울 창신동의 산동네에서 자랄 때 11살에 아버지가 죽고 15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6.25가 나는 바람에 어머니가 죽고, 종전이 되어 큰오빠의 집안 살림을 돕게 되었다. 그 때 아는 사람 소개로 노병욱을 만나 결혼식도 없이 동거하게 된다. 결혼 후 파주 광탄면 미군부대 앞에서 사진관과, 레인보우클럽, 그리고 미장원을 하면서 돈을 벌어 아이들 넷을 낳아 가르쳤다. 닉슨독트린으로 미군이 떠나고 한국군부대로 교체 되면서 비어홀과 다방으로 업종을 바꿨다. 이때 저자는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다녔으며 독일 유학을 마치고 사회인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늙어 치매에 걸려 고생하다 2015년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간호를 하다 지쳐 이듬해에 돌아가셨다. 사회학자인 아들은 그들의 삶을 정리하여 <인생극장>을 내었다.
“아버지는 가장이었고, 가장으로 행세 했고, 가장으로 대접 받았다. 비록 형식적일지라도 집안의 중요한 결정은 아버지의 승인을 거쳐야 했다. 집에서 만큼은 ‘동굴 속의 황제’였기에 치매 걸린 아버지가 내지른 욕의 퍼레이드는 이상 증상이라기보다는 평상시 모습의 연장이라고 하는 게 맞다.(p.29)” 가부장제 가정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일화다. 동굴 속의 황제처럼 가족 위에 군림한 아버지는 그 시대의 보편적인 아버지의 상이었다. 오래된 관습에 젖어 있는 모습을 치매에 걸려서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아버지는 1944년 4월 실시된 징병제에 의해 제국의 군인이 되어 해방 당시 일본군대 나고야의 조토헤이, 즉 상병이었다. 징병제를 통해 일본군 병사로 징집당한 조선인 청년은 약 21만 명이었다.(p.125)” 일제 말기에 조선인을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 문인이나 신문,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호도하는 선전을 일삼았다. 그 중에서도 우매한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영화였다. 영화관의 뉴스영화에 자신의 의도를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끼워 넣을 수 있다. 뉴스 영화는 어떤 때는 새빨간 거짓말로, 어떤 때는 하얀 거짓말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거짓말의 체계를 뚫고 진실에 도달할 능력이 없는 관객은 알고 속고 모르고 속는다. 이런 일은 일제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을 지나 군사독제정권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 되었다.
“전쟁 이후의 질서는 ‘양심이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다 벗어던질 수밖에 없게 하는 껍데기였다.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으니, 생존 자체를 겁박당하고 있는 위기 앞에서 ‘체면’으로 수렴되는 봉건적 가치는 너무나도 쉽게 쓰레기통에 버려졌다.(p.210)” ‘인’과 ‘예’가 강조했던 자리를 ‘눈치’와 ‘돈’이 대신 차지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먼저 읽어내고, 그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남았다. ‘돈’은 눈치 빠른 사람의 전리품이었다. 이렇게 6.25 전쟁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사람의 마음을 황폐화 시켰다.
“아버지는 큰소리를 치면서도 모든 것을 책임지지 못하는 전후 남성의 표본을 그대로 따랐다.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그런 전후 남성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했던 전후 여성의 운명을 공유했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억척스러움, 대범하면서도 침착한 심성, 큰소리치지 않으면서도 은근하게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 등 어머니는 삶의 모든 기법을 삼거리에서 깨우쳤다.(p.247)” 여자가 남자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남자는 결코 논리와 대화로 여자를 설득하지 않았다. 남자의 손은 남자의 혀보다 늘 빨랐다. 여자와 남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남자는 항상 혀가 아니라 손으로 그 갈등을 해소하려 했다. 당시 영화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남자가 여자의 뺨을 대리는 장면은 딱 그 시대의 통념을 보여준다.
“글자 하나하나를 모아 부모의 인생을 텍스트로 옮기는 시간은 나에게 산티아고 못지않은 치유의 순례길이었다.(p.421)” 시간이 흐르기에 부모의 인생극장의 막이 올랐고 그 막은 다시 내려갔으며, 그 무대를 물려받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부모가 살아왔던 생애를 기록해 나가면서 머릿속에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미래가 떠올랐다고 한다. 부모가 살았던 시기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무슨 일이든 해야 했으며, 고향을 떠나 부랑해야 했고, 힘없는 여자는 남자의 종속물처럼 살아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 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종결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사계절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의 과거에
대해 알지 못한다. 부모가 유명인이라면, 혹 그의 자서전이
있을 수도 있고 그가 쓴 책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자세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게다. 물론
그것들이 전부 진실이냐 하는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그저 그런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가
아버지이기 이전에 꿈 많은 소년이었고, 어머니에게 자신들과 같은 처녀시절이 있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학자 노명우는 자신이 직접 부모의 자서전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허나
부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단지, 초라하게 남긴
그들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을 뿐이다. 그들의 막이 내리고 난 다음,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이야기는 시작되는 셈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역시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기에 자서전을 각색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공유했던 소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되기 때문이다. ‘무명씨들은 아마 자신의 심정을 숨기는 재주를
키우며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 심정은 노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아무리 그런 재주를 키우며 평생을 살아왔어도, 그것을 아예 억누르기는 불가능하기에
심정은 슬그머니 꼬리를 드러낸다. 그 꼬리를 따라가면 우리는 어떤 증상과 만난다. 그 증상은 심정이라는 핵으로 가만가만히 다가갈 수 있는 통로이다.’ (27쪽)
그래서 그가 통로로 삼은 것은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대중영화였다. 책이나 신문은 엘리트 미디어였기에,
식민지시대와 해방 전후를 살아온 그저 그런 사람들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접할 수 있었던 대중영화야말로 그들의 심정으로 다가갈 수 있는 통로라고 여긴 것이다. ‘대중영화에는 특정시대의 소망이 담겨있다. 대중영화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은 채 보통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기대를 재현한다. (…) 부모가 공감했을 당대의 욕구와 열망의 흔적을 대중영화를 통해 추적하는 것이다.’ (42쪽)
그는 식민지시대를 살아낸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년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찾은 외국인들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나 식민지시절 제작된 영화들, 그리고 일제의 선전영화 속에 나타난 소년들의
모습이 바로 그런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식민지시대 보통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식민세계에 들어감을 의미했다. 보통학교는 농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일본어를 배우는 경로였다. 식민화로 유교적 가치가 붕괴된 나라에서 공부는 그렇게 단지 출세를 위한 도구로 기능했다. ‘식민통치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그 몰락의 흐름에서 나만이라도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자라났다. 개인에게
탈출구를 제공하는 수단으로서의 공부, 그에 대한 물신적 집착은 각자도생을 생활윤리로 채택하게 했다.’ (82쪽) 그러나
누구나가 다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하의 그저 그런 소년/녀들은 기껏해야 보통학교를 졸업하는 정도였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보통학교를 마치고 당시의 붐을 타고 만주로 향했고, 강제징용의 대열을 따라 나고야에 가기도 했다. ‘야심이
넘치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 내던져진다 해도 자신을 가두고 있는 껍데기를 뚫고 나와 의지를 펼친다.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껍데기를 그저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에 적응하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 (106쪽)
전쟁 통에서 저자의 어머니는 고아가
되었다고 한다. 그저 그런 가정에서 그저 그런 아이로 태어났다는 것은 식민지시대나 전쟁 전후 모든 시기를
힘들게 살아냈다는 것과 동의어이지만, 거기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어쩌면 형벌과도 같았을 것이다. ‘전쟁은
거대한 상실이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을 살아낸다. ‘삶을
산다’라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하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사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 즉 악착같이 버텨야만 하는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184쪽)
전쟁이 끝나고, 4.19혁명이 일어나고 5.16쿠데타 그리고 10월유신이 이어져도 그저 그런 우리의 부모들은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서로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각자도생의 삶은 여전했다.
국가는 그런 사람들을 가르쳤다.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모든 관객은 애국가를 부른 뒤 <대한뉴스>와 문화영화를 봐야 했고,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다. 영화를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대중화하려는 창구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어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371쪽)
‘아이들이 학교에서 국민이
되는 방법을 배우고 상식을 익혔다면, 학교를 다니지 않은 어른들은 영화관의 <대한뉴스>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 <대한뉴스>는 마치 전국민을 대한민국이라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처럼 대했다. (…) <대한뉴스>의 보살핌은
세심하고 자상했다. 마치 학교 선생님처럼 해야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명쾌한 구호로 알려주었다.’
(372쪽) 그렇게
교육받은 우리 부모세대는 식민지시대 핍박 받고, 전쟁통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상처입고, 산업화시기 죽어라 일만 했음에도 <대한뉴스>가 가르쳐준 대로 그것이 당연한 국민의 길로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니 설사 국가가 자신들을 배반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저 그런 우리 부모들의 자서전이 슬플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저자는 자신의 부모님 자서전을 쓰면서
부모님들이 살았던 공간은 물론 자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고향, 그리고 동시대인이 살아낸 삶을 복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노인이라 불리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자서전이었다. ‘그들은 무식하기에 노인빈곤인구로 분류되면서도 나라가 잘살면 자신도 잘 살게 될 거라고 착각한다. (…) 그들의 무지는 그들의 죄가 아니다. 그 죄는 그저 그런 사람들을
자신이 연출하는 인생극장의 엑스트라로 동원해놓고, 그들의 무지를 이용해 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던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430쪽)
나도 부모님들의 자서전을 써 본다.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철 들고 나서야 그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것도 같지만, 그 이전의 인생이야기는 뿌옇기만 하다. 나
역시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았을 삶을 통해 내 부모님의 인생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그분들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분들의 인생극장이 막을 내린 다음에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플 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 새겨진 '한국적인' 세망물정의 면면들
그 기원을 찾아 사회학자는 부모의 삶으로,
나아가 동세대 모든 이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 책은 가장 보통의 존재였던 부모의 '인생'을 '시대'와 '영화'를 통해 탐사한 한 사회학자의 세밀한 기록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전쟁과 개발독재시대를 거쳐 현재까지를 살아낸 부모의 삶과 당대의 한국 영화들을 소환해 씨줄과 날줄로 엮어 거대한 풍속도를 완성했다. 우리의 꿈과 소망, 고통과 좌절의 시간이 '인생'과 '영화' 속에서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며 바라보고 있음을 이 책은 정성스럽게 증명한다. _ 심재명(명필름 대표)
사랑에는 다양한 표현법이 있다. 그저 말로만 한다면 이론은 아니다. 이 책은 사랑으로 만든 책이다. 늙어 사위어가다 죽음 앞에 선 부모, 아들 사회학자는 텍스트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갖지 못한 부모에게 문자의 공간에도 마땅한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는 사랑하기에 이해하고 싶었고, 이해를 넘어 대화하고 싶었다. 빠르게 성장해 온 시대는 부끄러움이 많다. 감추고 싶은 자리도 사연도 많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저 외면하면 그만이다. 시치미 떼며 내겐 뿌리가 없다고 말하면 된다. 사랑하기에 부끄러움을 넘어서고, 부끄러운 부분이 오히려 사랑할 이유가 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부모 세대를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를 얻는다. 그들의 일부를 담은 채 새로운 땅으로 발버둥치며 나아가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할 힘을 얻는다. _ 서천석(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저자
노명우
1966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이후 파주에 주둔한 미군을 상대로 '레인보우 클럽'을 운영했던 아버지, 그 옆에 미장원을 열어 양공주들의 머리를 말았던 어머니 덕분에 달러 경제의 혜택 속에서 자랐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은 미군 부대가 철수하고, 그 자리에 한국군이 들어와 레인보우 클럽은 무지개홀로, 미장원은 무지개 다방으로 모습을 바꾼 뒤었다. 유년 시절 물정의 풍경을 구경하며 자랐다. 그에게 성장이란 학교에서 배우는 조국의 밝은 미래와 다방 손님들의 울분과 한탄 사이에 놓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이었다. 기지촌의 어딘가 모르게 부끄러운 풍요 속에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박사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꿈에 닿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미국이 아닌 독일에서 박사가 되었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에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열정을 물려받았고, 버밍엄학파의 문화 연구에서는 동시대에 대한 민감한 촉수의 필요성을 배웠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다. 지은책으로 [세상 물정의 사회학][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묻다][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계몽의 변증법-야만으로 후퇴하는 현대][계몽의 변증법을 넘어서][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아방가르드]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사회학의 쓸모][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구경꾼의 탄생](공역) 등이 있다.
2018. 02.
1983년생인 나는 1958년생 동갑내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1958년생 남자의 고향은 저자의 아버지 고향이기도 한 충청남도 공주이다. 그곳에서 중학교를 중퇴한 나의 아버지는 이후 온 가족이 함께 서울 불광동 오금리에서 청춘을 보내게 된다. 1958년생 여자는 경기도 동두천이 고향이다. 나의 어머니가 학창 시절 때 저자가 살던 곳의 미군 부대들이 아마도 내 어머니가 살았던 고향으로 이전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이런 요소 요소들이 어떻게든 얽혀있어 저자의 부모가 살던 이야기임에도 그 이야기를 통해 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을 그려본다. 우리 부모 역시 기록도 자료도 없는 '그저 그런' 삶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암살], [동주], [택시 운전사], 최근에 [1987]을 보며 우리네 삶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비장함과 영웅적인 요소가 없이는 감당해 낼 수 없는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그 시대 속에 던져졌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상상해 볼때, 나에겐 그들과 같은 '불의'에 대항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면 '불의'의 편에 섰을까? 그것 또한 어떤 강한 '신념'없인 가능치 않으리라. 그 당시 '그저 그런'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를 상상하기에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은 뭔가 괴리감이 있다.
본 책을 통해 비범할꺼라곤 1도 없는 '그저 그런'사람들의 이야기, 비범한 사람들이 던져놓은 그물 망에서 그 시대를 어떻게든 살아내는 우리네 삶을 발견해본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껍데기를 그저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에 적응하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p.106)
일본인들이 한국을 통치하던 시대, 그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최경례를 하며 그 삶에 순응해 살았으리라. 그것이 독립군도 친일파도 아닌 그 시대의 보통사람의 순응하는 삶의 태도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내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막내 아들 박지만씨를 굉장히 잘 아는 사람처럼 여겨졌었다. 또 내 할머니는 육영수 여사를 위대한 여성상으로 꼽으며 박근혜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닮았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곧잘 하셨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신문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와 할머니가 대통령의 가족사를 그리 잘 아실까? 싶은 의문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당시 영화들이 얼마나 정부에 귀속되어 있었는지 실상을 알 수 있었다. 정부는 일제시대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세뇌시켰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국가가 제작한 <대한뉴스>를 본 뒤 국가가 선택한 '문화영화'를 통과해야만 관객 자신이 선택한 극영화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였었다. 문화영화에는 박정희의 세 자녀의 일상을 기록한 <유쾌한 삼형제>라든지, <어머니와 지만이의 하루>와 같은 영화였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박정희 대통령 가족을 우리네 옆집 이야기 하듯한 연유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문화사업이 갖고 있는 힘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왜 박정희가 3S를 강조하였는지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 부모의 부모세대를 거쳐온 나 역시 그 문화를 교과서처럼 받아들이며 매체가 강조하는 것에 더 귀를 기울여오지 않았나 반성도 하게 된다. 사실 교과서도 정부가 언제든 마음먹고 제 멋대로 휘두를 수 있음을 우린 지난해 목도하기도 하였지만.
몇 해 전 부모를 잃은 사회학자 아들이 극심한 우울을 견디고 버티어 다시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 본 책은 단순히 저자 부모의 발자취 뿐 아니라 내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발자취와 한국의 근현대사를 되집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정부가 제공한 교과서 내용의 근현대사 내용이 아닌 내 부모가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를 마주할 수 있어 반가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계속 곱씹고, 곱씹고, 곱씹어도, 그래서 비범하지 않았던 이 땅의 모든 어른들을 '그저그런' 어른이라고 말하기에는 '그저그런' 삶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했던 어른들의 모습도 있었기에 계속 마음에 남아, 다시 몇 자 적어본다.
우선 지난 달 1박2일 편에서는 일제 암흑기 시대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고된 노동을 했던 '그저그런' 어른들의 삶이 방영되었었다. 고된 농사로 근근히 하루를 버티어내는 삶이 었으나, 그마저도 아끼고 모아서 애국하는 비범한 자들에게 자금을 조달하였던 '그저그런' 어른들의 삶.
그리고 만주에서 김좌진 장군이 이끌던 청산리 전투에서 또한 '그저그런' 아낙네들의 섬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싸움이 잠시 소강 상태로 접어들자, 어랑촌에 있던 우리 쪽 부녀자들이 주먹밥을 싸서 행주 치마에 담아 와 독립군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밥 드시고 힘내서 꼭 이겨 주세요."
_ 이야기로 풀어 쓴 한국사 8. 한예찬 글. 지경사. p68.
물론 세상은 비범한 사람들의 그물로 이끌어져 가는 것이 일면 맞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하기엔 '그저그런' 사람들의 평범한 듯 비범했던 행동들까지 싸잡아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같아 계속 마음이 쓰였다.
'그저그런' 우리네의 평범한 듯 비범한 행동들로 인해 때론 비범한 자들의 비범한 듯 평범한 계획이 무산되기도 한다. 우린 '그저그런' 사람인 나는 그런 내일을 꿈꾼다.
<인생 극장> 속 '그저그런' 삶을 살아내신 부모님 또한 평범하지만 평범치 않게 이땅을 그 나름 애써 지켜오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