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8년 03월 02일 |
---|---|
쪽수, 무게, 크기 | 552쪽 | 626g | 135*200*35mm |
ISBN13 | 9788967354893 |
ISBN10 | 8967354894 |
발행일 | 2018년 03월 02일 |
---|---|
쪽수, 무게, 크기 | 552쪽 | 626g | 135*200*35mm |
ISBN13 | 9788967354893 |
ISBN10 | 8967354894 |
머리말 1장 덴마크 1 행복 2 베이컨 3 지니계수 4 스펀지 칼 5 치킨 6 바이킹 7 72퍼센트 8 따뜻한 욕조에서 먹는 샌드위치 9 호박벌 10 데님 멜빵바지 11 얀테의 법칙 12 휘게 13 레고랜드와 다른 성지들 14 행복하다는 망상 2장 핀란드 1 산타 2 침묵 3 알코올 4 스웨덴 5 러시아 6 민중의 촛불 7 아내들 3장 아이슬란드 1 하우카르들 2 은행가들 3 덴마크 4 요정들 5 수증기 4장 노르웨이 1 던들 2 샤넬 에고이스트 3 제2의 크비슬링들 4 프리루프트슬리브 5 바나나 6 네덜란드병 7 버터 5장 스웨덴 1 가재 2 도널드 덕 3 스톡홀름 증후군 4 통합 5 카탈루냐인 6 소말리아 피자 7 정당 8 죄책감 9 머리망 10 계급 11 볼베어링 에필로그 감사의 말 |
북유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피오르, 침엽수림과 눈으로 덮인 호숫가의 작은 집 등으로 대표되는 자연환경, 그리고 부유한 경제환경과 평등, 질 좋은 교육 및 복지제도, 행복지수 높은 국가 등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북유럽 디자인', '북유럽 감성' 등 뭔가 정의하기는 애매하지만 공감되기도 하는 이미지도 있다. 한편 북유럽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동질한 사회집단이 아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의 총 5개국이 있고, 각국은 자연지리적 특성, 역사적 경험, 사회경제적 환경 등이 다르다. 하지만 편의상 유럽의 지역구분에서 북유럽으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같은 나라는 아닌 것이다. 앞서 언급한 '북유럽 이미지'들이 5개국 중 일부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일지라도, 북유럽 전체의 특징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게다가 그곳도 결국 인간사회일텐데, 혹시 해당 국가의 수많은 현상들 중 일부만 보고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가져볼 만도 하다. 하지만 이 국가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비판도 할거리가 없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대표 국가들에 비해서 가 본 사람도 적고 여러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단편적인 정보로 일반화된 것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북유럽'이라는 키워드로 네이버 검색을 했을 때 뜨는 연관검색어
과연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는 무엇일까? 북유럽에 가면 볼 수 있을까?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영국인도 그랬나 보다. 저자는 영국인 저널리스트인데, 저자 역시 서문에서 북유럽 국가에 대한 지식이 얕다고 언급한다. 우리보다 북유럽 국가들에 더욱 가까운 영국인도 그렇다는데, 우리가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겠다. 저자도 행복지수 1위를 자랑하는 덴마크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서,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여러 모습에서 배울 점을 찾기 위해 북유럽 여러 국가들을 돌아보고 관찰한다. 특히 저자는 덴마크에 오랜 기간 살아왔다.그리고 북유럽의 다른 국가들에도 머무르면서 북유럽 여러 국가의 사회적 특성을 비교하면서 이곳에 '거의 완벽한 사람들'이 사는 비결을 찾는 과정이 나온다. 그리고 혹시 '완전히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거의 완벽한' 사람들인 이유, 즉 우리가 북유럽 국가들에 가지고 있는 환상의 실상도 파헤쳐 본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순서로 각국의 이미지를 키워드 중심으로 제시한 뒤, 이와 관련한 이야기, 저자의 사회적 경험, 현지 전문가와의 인터뷰 등이 나온다.
먼저 저자는 덴마크의 여러 사회상을 살펴보면서, 왜 이 국가가 행복으로 유명한지 덴마크의 진짜 모습을 찾아본다. 덴마크의 영토는 현재는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작은데, 이전에 스웨덴 남부, 독일 북부까지 영토가 더 넓었고 아이슬란드, 노르웨이를 지배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현재 영토가 확 줄어든 역사와 관련하여, 현재에 만족하고 사는 생활태도와 연결짓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또한 덴마크가 복지수준이 높아서 평등할 것만 같았는데, 코펜하겐과 나머지 지역 간 격차가 꽤 컸고 계층 양극화 현상, 탈세 현상 등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최근 언론과 출판계에 종종 오르내리는 '휘게'라는 삶의 양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삶의 방식으로서 '휘게' 그리고 이와 유사한 '얀테의 법칙'이란 것도 소개되어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삶의 양식과 관련한 것들이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한편으로 저자는 휘게도 '논란이 될 만한 말을 피해야 한다'는 자기검열이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을 언급하면서, 결국 하나의 문화현상이고 이를 강압적으로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역시 어딜 가도 완전한 낙원, 유토피아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럼에도 이러한 사회 시스템이 유지되는 부분에서의 장점은 우리가 취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토를 빼앗기고 여러 전투에서 패배하는 와중에 무수한 굴욕을 당하면서 덴마크는 내부로 시선을 돌려 국민에게 변화와 외부 세력에 대한 공포를 주입했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놀라운 자급자족 능력을 키우고 자신들이 가진 게 얼마나 적은지 국민에게 이해시켰다. (p.40)
거의 의심할 여지 없이 덴마크는 두 계급으로 양분된 양극 사회가 되고 있다. 여유 있는 덴마크인이 점점 더 개인 의료보험으로 눈을 돌리는 중이며, 최근 집계로는 이런 사람이 85만명에 이른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 덴마크는 1인당 공공 부문이 세계에서 가장 크지만 복지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급격히 떨어지는 중이다. 덴마크 국민이 내는 세금을 생각하면 특히 기대치가 높겠지만,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덴마크인 중 불과 22퍼센트만이 공공 부문이 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p.81~82)
우선 덴마크인은 암시장에 열광한다. 토르벤 트라네스가 이끈 록울재단 연구팀은 최근 덴마크의 암시장에 관한 통계 자료 몇 가지를 발표해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이 조사에서 덴마크인 50퍼센트 이상이 전년도에 세금을 내지 않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한 적이 있으며, 30퍼센트는 가격이 괜찮았으면 사고 싶었을 거라고 인정했다. (...) 정치인들은 덴마크 민간 부문의 더 큰 이익을 위해 공공 부문 근로자와 보조금 청구자들의 탈세를 눈감아준다. 그리고 민간 부문은 이들 공공 부문 근로자들의 월급과 보조금 청구자들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p.92~93)
덴마크의 인류학자 예페 트롤레 린네트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휘게를 할 때 경쟁과 사회적 평가의 부담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한다." 이런 식으로 휘게는 스스로 무는 사회적 재갈처럼 보이며, 유쾌한 분위기를 공유한다는 개념보다는 자기만족의 느낌이 더 강하다. 또한 린네트는 휘게가 "사회 통제의 수단 역할을 하고 고유한 태도의 위계를 만들어 휘게를 할 수 없다고 간주되는 사회집단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암시한다"고 이야기한다. (...) '강압에 가까울 정도로 규범적'이라고 설명했다.(p.136)
'얀테의 법칙'은 비록 저자는 사회적 강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비교가 일상화되어 피폐한 우리 사회에서는 좀 배웠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핀란드에 대한 이야기였다. 핀란드는 북유럽에 속하면서도 다른 북유럽 국가와 차이점이 꽤 많았다. 우선 민족과 언어가 다른 북유럽 국가와 완전히 다른 계통이었고, 스웨덴에 몇백년동안, 그 이후 러시아에도 백년간 지배를 받았으며 지금도 소수의 스웨덴인들이 기득권을 가지고자 하는 핀란드의 역사는 다른 북유럽 국가와 차별적이었다. 사회적으로도 특이한 모습이 보였는데, 핀란드 사람들이 과묵한 점에 주목하면서 이를 추운 기후, 피지배 역사 경험, 고맥락 문화(high context) 등으로 다양하게 접근한다. 한편 핀란드 하면 교육이 떠오르듯이 저자도 핀란드의 교육문화에 대해서 궁금해하면서 분석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와 대조적으로 핀란드에 남성적 문화가 강하고 술꾼이 많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핀란드 사회의 여러 모습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 저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핀란드 사회상의 이유를 추적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홀에 따르면 '고맥락' 문화권 사람들은 같은 종류의 기대와 경험, 배경, 심지어 유전자까지 공유한다. 그들에게는 언어적 의사소통이 덜 중요한데, 서로는 물론 자신도 흔히 겪는 상황을 이미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말은 더 큰 의미를 지니지만 덜 필요하다. (...) 핀란드와 노르웨이 같은 고맥락 사회에서는 대체로 내가 어떤 사람을 상대하게 될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할지 예측하기가 쉽다. 핀란드인은 서로 전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 (p.198)
'시수(sisu)'는 끈기와 강인함, 남성다움의 정신을 뜻하며, (...) 핀란드 남성들이 열망하는 모든 것이며, 핀란드의 흙 아래 숨은 화강암 기반암이다. (...) 무뚝뚝하고 강인하고 '한결같이 결연한' 술꾼이라는 핀란드인의 자아상은 거의 전부 남성 중심이다. (...) 이런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이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직업인으로 핀란드 사회에서 보여준 두드러지는 역할과 유럽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생긴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하다. (p.216~217)
중립국 스웨덴은 핀란드과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과거 영토였던 핀란드를 거의 지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전쟁 초반에 국제연맹과 연합국이 핀란드를 지원하러 오는 길도 막았다. 당연히 일부 핀란드인에겐 앙금이 남아 있다. (...) 한 핀란드인은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은 핀란드가 소련과 맞서 싸우는 동안 기회를 한껏 이용했습니다."(p.239)
교직 훈런 지원자가 반문맹자인 경우가 없지 않은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핀란드에서는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교사에 지원한다. (...) 핀란드에서 교사 양성 과정은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 과정보다 어려울 수 있다. 보통 모집 정원의 10배가 넘는 지원자가 몰리며 때로는 경쟁률이 더 세다. 헬싱키대학교에서 2년 전에 120명이 정원인 박사과정에 2400명이 지원했다. 1970년 이후 내내 모든 핀란드 교사는 정부가 지원하는 석사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p.254)
아이슬란드는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민족적 특성이 유사해서 북유럽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고립되어 있다 보니 북유럽 국가들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독특한 문화가 발달했다. 저자가 주목하는 아이슬란드의 사회상 중 2008년 경제위기의 원인을 파벌문화, 미군부대 주둔 등에서 찾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 북유럽에 보편적이면서도 세속화되면서 거의 사라진 요정 신화가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전히 강해서, 실제로 요정에게 지역개발 시 의사를 물어본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었다.
인구가 31만 9000명뿐인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두 단계만 거치면 서로 다 알 확률이 대단히 높으며, 특히 아이슬란드의 지배 계층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역사가 있는 듯 하다. (...)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는 장기적 안정과 책임, 평등, 번영을 키운 바로 그 사회적 결속이 아이슬란드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p.294~295)
거널은 아이슬란드인이 현대의 개발을 방해하는 정령들을 기꺼이 믿는 것은 자연에 대한 과거 시골의 가치와 현대 세계의 더 근본적인 대결을 뜻한다는 하프스타인의 말에 동의한다. 한편 아이슬란드인이 그토록 미신을 잘 믿는 이유를 또 다른 이론으로 설명했다. "아이슬란다는 경건주의 운동[북유럽 지역의 토속 신앙을 근절하기 위해 특히 더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극단주의 루터교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7세기에 노르웨이에서는 이 같은 신화를 몰아내려는 대대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p.312)
노르웨이는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피오르, 대양에 접한 자연환경 등 더 '자연적인' 모습과 가깝다. 또 풍부한 석유 생산량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점이 차별성이다. 우리가 보기엔 다 잘사는거 같은데, 그 중 노르웨이가 더 독보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덴마크의 시샘을 사기도 하고, 스웨덴인들이 이주노동자로 일하기도 하면서 미묘한 국가 간 감정이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나름 '네덜란드병'에 걸리지 않게 국가적으로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언제까지 이런 부국의 모습이 갈지도 주목됬다. 한편 노르웨이에서 몇년 전 있었던 유색인을 겨냥한 폭탄 테러, 집단 학살 등이 저자를 비롯한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이었던지, 왜 이런 현상이 노르웨이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노르웨이 사회의 우익성(?), 인종차별, 무슬림 혐오 등의 현상을 분석하고 있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결과론 같기도 했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외국인에 비우호적인 면과 그 이유가 이해되기도 했다.
노르웨이는 우익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단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가령 노르웨이는 덴마크나 스웨덴보다 훨씬 적은 이민자를 수용했으며, 최근에는 거부된 망명 신청자들을 한 해 약 1500명씩 본국으로 송환했다. 브레이비크 테러 사건을 다루는 언론 보도 역시 수많은 노르웨이 우익 단체와 활동가, 블로거를 언급했고, 노르웨이에서 이슬람 공포의 불온한 하위문화처럼 보이는 현상을 소개했다. (p.347~348)
노르웨이는 늘 소작농과 어부들의 나라였으며, 국민은 작고 외딴 공동체에 흩어져 살며 수백 가지 지역 사투리를 썼다. 그리고 오랬동안 식민지였으며, 수도인 오슬로는 외국 문화 확산의 중추였기 때문에 덴마크가 코펜하겐에, 스웨덴이 스톡홀름에 거는 식의 기대를 걸지 않았다. 또한 덴마크와 스웨덴은 대립과 경쟁의 역사를 함께 겪은 까닭에 서로를 통해 자국을 바라보고 규정했지만, 노르웨이는 자기 나라만 신경쓰는 경향이 있었다. 산과 바다라는 거대한 물리적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였다. (...)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공업화가 도시화로 이어졌지만, 노르웨이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노르웨이 남부 도시 스타방에르를 중심으로 하는 서해안에 기반을 둔 석유 산업 덕에 이런 추세가 바뀌었다. 석유로 축적한 부 덕분에 요즘 수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노르웨이인은 풍족하게 산다.(p.364~365)
(...)(노르웨이에서 일하는 스웨덴인은 3만5000명으로, 시간당 최고 47달러의 보수에 혹해서 노르웨이 가게 등에서 반숙련직으로 일한다). 특히 많은 덴마크인이 즐거워한 이야기는 몇몇 스웨덴인이 노르웨이 가공 공장에서 바나나 껍질 까는 일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사실이다! 내가 확인한 결과 바나나는 유명한 노르웨이 샌드위치용 스프레드에 들어갈 재료였다. 게으른 노르웨이인과 착취당하는 스웨덴인이 한 일화에 다 등장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다. (p.373~374)
고립되고 사회성 떨어지는 노르웨이인에 대한 덴마크인들의 농담 ㅎㅎ
덴마크보다 노르웨이 북해 유전에서 더 석유가 많이 나와서 덴마크인들이 시샘한다고..
스웨덴은 전체주의 국가라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단일민족국가를 유지하며 16세기 이후 북유럽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자부심이 민족주의, 전체주의적 사고로 연결되는 듯 했다. 스웨덴 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중립이면서도 나치 쪽 손을 든 이들이 많았다고 하고, 우생학에 근거한 정책을 국가에서 대놓고 하고 국민들이 지지했다니... 한편 최근에는 북유럽 중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국가이기도 한게 아이러니했고, 어떤게 스웨덴인들의 참모습인지 햇갈렸다. 여성의 권리를 중시하는 국가이고 최고의 평등, 복지 국가로 손꼽히지만, 왕정과 계급사회 전통이 몇백년동안 이어지는 불평등한 국가라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한편 덴마크의 얀센의 법칙과 유사한 사회규범이 스웨덴에서는 '라곰'이라는 명칭으로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최근 스웨덴이 행한 가장 대담한 사회적 실험은 다문화 분야였다. 지난 40년 넘게 스칸디나비아에서 제일 큰 나라였던 스웨덴은 다른 어떤 유럽 국가보다 많은 이민자를 수용했다. 오늘날 스웨덴 인구의 거의15퍼센트는 스웨덴 밖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며,(북유럽에서 두 번째로 이민자 수가 많은 덴마크의 약 6퍼센트와 대조적이다), 다음 세대까지 포함하면 인구가 거의 3분의 1이 스웨덴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이다. (p.409)
'라곰'은 스웨덴 사회의 다양한 행동 양상을 규정한다. 한결같이 비과시적인 소비 패턴부터 타협, 온건, 합의에 주로 의지하는 정부 체제까지, '라곰'은 덴마크의 허구적인 사회 선언문이자, 덴마크 이상은 아니더라도 스웨덴 사회를 규정하는 얀테의 법칙과 확실히 관련이 있다. 스웨덴인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더 무서워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거나 뽐내는 것을 더 싫어하며, 더 절제된 표현을 쓰고 겸손한 경향이 있다. (p.422~423)
"스웨덴은 우리가 주장하는 만큼 평등하지 않습니다.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 힘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어떤 집안 출신인지가 큰 차이를 낳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발렌베리 가문 출신이면 유리하죠. 사람들은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지만 헛소리입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불평등을 숨기는 데 아주 능합니다. 가령 사람을 부르는 경칭과 비칭을 폐지한 것도 불평등을 숨기는 한 방법이었죠. 스웨덴인은 더 '평범한 왕정주의자들'입니다. 현 상태를 받아들이지만 스스로 왕정주의자라고 하지는 않죠". (p.523~524)
각국의 여러 이야기들을 읽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잘 모르는 이야기들이 나오면 그때그때 검색도 해보면서 읽으니 재미있었다. 우리가 보기엔 북유럽 국가들이 가까이 있고 사회상도 비슷하고 친할것만 같았는데, 국가 간의 특성도 은근히 달랐고, 국가간의 식민지배, 경제사회적 환경 차이에 따른 감정도 있어서 말로 티격태격하기도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다시 생각해보니 한국, 중국, 일본이 가까이 있어서 친할것만 같다는 이야기랑 비슷한가...?). 그리고 이 책은 북유럽 여러 국가의 사회상을 학술적으로 딱딱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궁금증을 가지고 사회적 경험,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저자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점이 좋았다. 특유의 서양식 유머도 섞어가면서 저자만의 방법으로 궁금증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읽는 것이 흥미롭다. 책의 부제에 '미친 듯이 웃긴'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실 문화권이 달라서 그런진 몰라도, 그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속뜻을 아는 몇몇 유머는 피식거리면서 웃을 수 있는 대목도 꽤 있다.
한편 이 책의 내용도 "북유럽 여러 국가들이 다양성이 있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책의 내용이 보편적인 진리는 아닐 것이고, 이 책만으로 북유럽 사회를 다 알기는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북유럽 사회의 이야기들 중 몇 가지를 추가 및 보완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꽤 살기좋은 환경일 확률이 높은데, 그렇다고 완벽한 유토피아가 펼쳐져 있는 곳은 아니고 '거의 완벽한' 사회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북유럽 사회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작가가 이 다섯 나라를 탐방하고 취재해서 정리한 책이다. 책 소개에 '미친 듯이 웃긴'다는 소개글이 있어 빌 브라이슨을 떠올리고 읽었는데, 나는 좀 다르게 보았다. 빌 브라이슨처럼 웃게 하기보다는 웃기려고 한 듯한 말에서조차 진지한 충고를 읽었다고나 할까. 우습지 않으면서 진실하게 와 닿아 나는 좋게 보았다.
그동안 이 다섯 나라에 대해 나는 많은 호감을 키워 왔다. 아마도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 여행지, 사회복지 같은 부분에서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요소들을 많이 갖추고 있는 나라였고, 더러 우리에게도 적용시켜 보겠다고 일부의 정책들을 도입하려고 한 걸로 알고 있으니 지구상에서 선망의 나라들임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우리 쪽에서만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영국 작가가 이 책을 쓸 만큼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북유럽 외의 유럽 국가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주목하고 있었던 것 같으니까.
어찌하여 이들 나라는 살기 좋다고 하는 건지. 행복 지수는 어떻게 높게 나오는 건지. 물가도 높다는데, 위도가 높아 겨울이 길고 햇빛이 적어 우울하기 쉽다는데, 이들 나라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태도를 갖고 살기에 지금의 평가를 얻게 된 것인지. 한꺼번에 묶어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또 따로 떼어 각각의 나라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고 서로 간에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는지 작가는 참 친절하게도 말해 주고 있다. 읽는 재미 쏠쏠했다. 몰랐던 정보를 얻었을 때의 신기하고 산뜻한 기분, 내 정신이 한 단계 올라선 듯해서 살짝 우쭐해지는 기분까지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선진국의 교육 특징을 발표해야 할 경우에 대비하여 국민성이나 교육이나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해 각 나라별로 정리했을 것이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진 상황에 편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니 그만 섞이고 말았다. 덴마크와 핀란드 정도에서는 기억도 좀 되고 두 나라 간 구별도 되는 것 같더니 아이슬란드로 넘어가면서 어떤 것이 어느 나라의 특성이라고 했다는 것인지 헷갈리게 된 거다. 그걸 다 구별해서 외울 필요까지는 없다고 내 안달을 잠재우기까지 아주 조금 힘들었다. 이렇게 읽는 건 읽는 게 아니잖아 싶은 마음과 이렇게라도 읽고 북유럽에 대한 인상을 남기는 것도 괜찮은 것이라는 마음 사이의 갈등. 그리고 뒤쪽이 쉽게 이겼다. 어차피 내 기억력은 이제 빛을 내지 못하는 지경이니 외워 보려고 해도 어려웠겠지만.
바이킹의 역사가 있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지리적 특징이 있고, 북극에 가까운 기후적 특성이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나라와 다르고, 세상 어떤 나라와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건 각자는 각자의 삶의 몫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태어나는 게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해도, 태어난 운명에 따라 살아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대로 나라는 나라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더 잘 살기 위해 더 오래 살기 위해 살아 있는 생명체는 온갖 노력과 방법을 찾아 익히고 버리면서 생명을 이어가려고 하는 것일 테다. 그게 자연의 이치일 것이고 순리일 것이고 본능일 것이고.
부러운 게 있었다. 많았다.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도 있겠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그건 또 그 나라, 그 민족이 그렇게 살아오면서 힘써 얻었던 것들이라는 데에 이르렀다. 어떤 것도 거저 얻은 것은 없었을 것이고, 때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후손을 위해 얻어야 했던 것이리라. 다섯 나라가 서로 간에 지배하고 지배받은 역사, 최근에는 러시아 때부터 소련에 이르기까지 또 히틀러와의 관계로 인한 국가 간 갈등은 우리나라, 일본, 중국 간의 갈등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했다. 어쩌겠는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어깨 부딪히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을. 누구는 누구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또 누구는 누구를 무시하고, 어쩌면 이리도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기만 한 건지. 개인이든 국가든. 인간 참 불완전한 존재이구나 하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가 새삼스러워졌다.
이 책 속의 정보 중 어떤 것들을 다시 찾아 볼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챙겨 두려고 한다. 각 나라의 전문가들을 찾아 다니면서 인터뷰를 한 작가의 성의는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기자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의 전문성은 보여 주어야지, 그런 신뢰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그래서 이 작가가 쓴 다른 책도 또 읽어 보려고.
185
시간은 어떤 냄새일까? 먼지와 시계와 인간이 뒤섞인 냄새이다. 그리고 만약 시간이 어떤 소리일지 궁금하다면, 그것은 어두운 동굴을 흐르는 소리이고 울부짖는 목소리이고 텅 빈 상자뚜껑 위로 떨어지는 흙덩이 소리이고 빗소리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깜깜한 방 안으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나 낡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무성영화나, 새해를 알리는 풍선들처럼 허무하게 떨어지는 천억 개의 얼굴이다.
한국에서는 북유럽인들에 대해 이미지가 꽤 좋은 편입니다. 완벽한 사회보장 시스템이 갖춰졌고, 키 크고 이목구비 뚜렷하며 성생활 풍조도 자유분방하지만 사회에는 질서가 확고히 유지되며, 일광량이 적어 기분이 음울해진다는 엄연한 과학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왠지 자연 풍광에조차 막연한 동경이 생깁니다. 스칸디나비아 누아르가 한때(대략 8, 9년 전) 대중문학 트렌드를 세계적으로 평정했었는데 이때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어서 열렬한 호응을 보냈더랬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고, 아무리 체제가 잘 구비, 작동된다고 하나 허점이나 모순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믿고 범죄율도 매우 낮게 유지되는 공동체이지만, 개개인은 그 나름의 아픔과 미련과 좌절된 이상을 갖게도 마련입니다. 이 책은 그런 북유럽 5개국에 대해 매우 유머러스하게 접근했고, 일반 상식적인 사항보다 작가 본인이 머무르며 몸으로 느낀 점들을 재미나게 풀어 준 내용입니다. 약간 산만한 감도 없지는 않고, 작가 개인의 관점이 전체 구성을 꿰뚫는 개성이라서 객관적 정보만을 짧은 시간에 추려서 정리(여행 등의 목적으로)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북유럽을 처음 방문하는 분들보다는, 이미 한번 정도 다녀오셨거나, 업무상 그들의 깊숙한 속사연에 더 관심 깊은 독자들이 "그랬었구나" 혹은 "그런 면도?" 같은 감상을 연발하며 파고들기에 더 좋습니다. 문체는 발랄하고 가독성은 거침없지만, 작가가 진짜 의도한 바를 정확히 캐치하려면 좀 심사숙고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긴 그 나름 천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겨레와 고장의 영혼을 엿보는 작업이 어찌 한 번 가벼운 눈길로 가능할까요.
모두 5장 체제인데 그 앞의 짧은 서문이 전체 내용을 잘 요약하며 이 책이 어떤 동기로 쓰여졌는지 독자에게 개념을 잡아 주므로 꼭 읽어 봐야 하겠습니다. 물론 재미난 수다투이기 때문에 부담 갖고 접근할 필요는 전혀 없고, 모든 문장이 흥겹게 재치있게 쓰였으므로 페이지만 펼치면 수다의 매력에 끌려 자연스럽게 페이지가 넘어가긴 합니다.
1장은 현재 작가가 체재하기도 한 덴마크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실 (책에도 나옵니다만) 덴마크는 한때 영국을 속국처럼 부렸고 스칸디나비아 일대를 호령한 초강대국이었으며, 바로 바이킹의 본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북방의 거대한 반도 영토를 모두 잃고 자그마한 유틀란드 고장과 그 오른쪽 섬만 보유하기에 우리는 이들이야말로 "바이킹 종갓집"이란 사실조차 잊곤 합니다. 영국의 오랜 기도문에 보면 "우리를 북쪽 사람들의 진노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 같은 구절이 다 있습니다. 데인인들이 대거 브리튼 섬을 침공해 왔을 때 거의 존망의 위기에 몰렸으나 한 군주의 용감한 거동으로 간신히 나라를 보전했는데, 이 군주를 가리켜 영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왕" 칭호를 붙이니 바로 알프레드 더 그레이트입니다. 여튼 그 정도로 이 덴마크가 역사의 지난 한 시절 무시무시했다는 소립니다.
책에서는 그런 아주 먼 지난 역사보다, 많이 위축되었지만 여전히 건실하고 탄탄한 사회를 지켜 내며, 높은 교양 수준으로 주변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는 현대 덴마크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잡아냅니다. 저자가 원래 영국 분이라서, 영국과 얽힌 과거사(근대사)도 자주 언급됩니다. 예컨대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석권할 때, 영국에서는 이 덴마크가 프랑스 편에 가담할까 우려하여 예방 전쟁 같은 걸 시도했다고 합니다. 두 차례에 걸쳐 코펜하겐을 포격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프랑스와 애초에 나란히 설 생각이 없었던 덴마크인들이 기수를 거꾸로 돌려 영국과 적대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p37:11의 "...덴마크를 프랑스의 손에 넘기려는..."은 "넘기지 않으려는"의 오타로 보입니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국가를 꼽을 때 지표상 1위로 자주 선정됩니다. 하지만 이런 실사나 조사 결과가 과연 얼마나 진실과 객관을 반영할지, 저자나, 심지어 덴마크인들(저자와 개인적으로 만난)조차 회의감을 표현합니다. 확실한 건 덴마크 사회는 부유층도 빈곤층도 매우 적은(적어도 다른 서유럽 부자나라들과 비교해서) 편이며, 이 덕분에 심각한 사회 문제의 발생도 시민 사이의 갈등도 매우 적다는 겁니다.
평등이 이처럼 높은 수준의 만족과 "웰-비잉"을 보장한다는 점에 외부 학자들이 폭 넓게 동의하지만, 덴마크인들의 만족도는 한편으로 다소 위협을 받는 구석도 있습니다. 일각에서, "분명히 한계세율을 낮춘 결과로 이웃 스웨덴의 소득 수준이 상승한 걸 보라(p111)"면서, 살인적인 세율에 대한 불만이 제기됩니다. 일 년의 1/3 이상은, 오직 국가에 세금을 내기 위해 일함이나 마찬가지이고, 이런저런 간접세까지 너무 많이 붙습니다. 한때 고칼로리 유제품 소비를 줄이기 위해 "비만세"를 부과했다가, 국내 낙농업과 유통 섹터에 큰 타격을 주자 황급히 폐지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나는 소득 72%를 세금으로 내는 사람임!" 같은 자부심을 여전히 보유한다고 하죠. 한국 같으면 참 상상하기가 힘든 분위기입니다.
덴마크는 동화 작가 안데르센처럼 세계 문학에 큰 영향을 준 위인을 여럿 배출한 나라기도 하죠. 이 책에서는 "아네르센"이란 표기가 일관되는데, 이게 맞습니다. 덴마크어는 d 발음이 안 날 때가 많고 특히 nd 철자에서 d는 무조건 발음 생략입니다(단 ndr에서만은 다 발음됨). 뿐 아니라 현대 대중 문화에도 아이콘처럼 인식되는 인물들이 다수 있어서 이 책에도 이름이 여럿 거명됩니다. (근데 매즈 미켈슨 언급이 없어서 의외였어요. 이 책에서 여러 번 나오는 007에도 나왔고, 특유의 이지적이고 침울한 페이스 때문에 미드 <한니발>에서 주연인데도요) 저자가 강조하는 덴마크인의 민족성을 상징하는 단어로서 "휘게"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데 이 책의 백미이므로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장은 핀란드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잘 알지만 핀란드는 코카서스인이 아니라 핀 족이라고 멀리 아시아에서 동진해 온 겨레입니다. 책에도 나오듯 정관사 부정관사 전치사가 없어서 유럽인, 특히 영국인 저자에게 매우 특이하게 보이며(사실 프랑스, 독일어 화자가 보면 영어도 참 이상한 말인데 자기 별난 점은 자기 눈에 안 보이나 보죠), 몽골어나 일본어와 혈족일지도 모른다는 언급이 책에 나옵니다. 우랄- 알타이 어족 가설은 사실 근래에 폐기 직전 단계인데 여튼 저 입장에 의하면 우리 한국어도 핀란드어와 계열이 멀지 않습니다.
핀란드는 사실 덴, 노, 스, 아 등 다른 4개국과는 이처럼 혈통이 다르지만, 오랜 기간 동안 덴마크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기에 스칸디나비아의 역사에 이들을 함께 개관하는 게 무리는 아닙니다. 표트르 대제가 18세기 초 21년 동안 "북방 전쟁"을 스웨덴과 벌여 결국 핀란드를 손에 넣었는데, 핀란드인들의 지도자는 노련하게 교섭을 벌여 지나친 수탈과 예속 상태가 발생하지 않게 외교를 참으로 잘 펼쳤다는군요. 이러다가 레닌이 10월 혁명을 일으킨 와중 은근슬쩍 독립을 해 버리고, 이후 명실상부 주권국으로 잘 살다가 2차 대전 직전에 스탈린에게 침공을 당합니다. 아마 스탈린은 이 약소국을 나치 독일이 선점할 경우 전개될 악몽을 막기 위해 벌인 조치이겠습니다만, 여튼 이 때문에 약소국 핀란드는 엄청난 피해를 겪습니다. 웃지 못 할 일은 이 작은 나라의 저항을 감당 못 해서, 스탈린 역시 큰 국력의 손실을 보고, 이 과정을 지켜 보던 히틀러가 소련의 부실이 어느 정도인 줄 짐작한 후 얼마 뒤 전격 소련 침공을 감행했다는 겁니다.
소련이 거세게 밀고 들어오자 핀란드는 (안타깝게도) 나치 독일과 손을 잡습니다만 이 부분은 약소국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며 이후 연합국들도 다 양해를 해 줍니다. 영리하게도, 핀란드는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재빠르게 손을 바꿔 소련 등과 동맹을 시도하는데, 협상이 이뤄진 후 이번에는 자국 내에서 독일군을 몰아내려고 필사적으로 전투를 벌입니다. 한번 마음 먹으면 더 강한 적을 향해서도 매서운 투지를 보이는 민족성은 세계에 강한 인상을 주었고, 소련도 내심 겁을 먹고는 배상금과 일부 영토 할양 선에서 멈춥니다. 참고로 책에는 1/10에 가까운 영토를 빼앗겼다고 나오지만, 사실 카렐리아는 핀란드 본류인 핀 족과 좀 혈통이 다른, 또하나의 소수 민족 거주지입니다. 그나마 카렐리아 대부분은 여전히 핀란드 땅이기도 하고요.
책에도 나오듯 핀란드는 이후 냉전기에 소련을 향해 알아서 기며, 공산 국가가 아닌데도 언론 출판 영역에서 소련의 심기를 상하게 할 수 있는 주장이나 표현은 검열을 통해 공개 금지 처분을 하는 등 주권국가로서 다분히 체신이 더럽혀질 만한 길을 걷습니다. 이걸 핀란디제이션이라고 불렀다는 말이 책에도 잘 나오죠. 한편으로 저자가 재미나게 설명하는 것처럼, 핀란드는 공산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과는 대단히 우호적인 사이를 유지했는데, 특히 무역 부문에서 소련과 상호 보충 포지션의 물자가 많아 그야말로 찰떡 궁합의 재미를 장기간에 걸쳐 봤다고 합니다. 이러던 게 1990년대 들어 소련이 갑자기 무너지고 정정이 불안해지자 자국에도 일시 경제 공황이 들이닥칠 정도였다고 하네요. 우리가 의미 깊은 시사를 받는 건, 저 위 폴란드와는 달리, 영리하게 경제적 실리를 챙겨가며 강대국과 잘 지낸 그들 핀란드인들의 지혜입니다. "스칸디나비아인들보다 더 스칸디나비아적인 국민", 이것이 저자의 요약입니다.
아이슬란드는 아마 전세계에 큰 존재감을 부각한 게, 1980년대 중반에 있었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사이의 미소 정상회담일 겁니다. 한국도 이후 부시(부친)과 고르비가 제주도에서 잠시 만나는 이벤트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아이슬란드 역시 인구 적고 환경 쾌적한 곳에서 산뜻한 국가 체제를 이루고 사는 강소국으로 우리가 알지만, 이 책에서는 더 구체적인 역사를 조곤조곤 얘기합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오랜 세월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고 독립의 역사도 짧지만, 특이하게도 여전히 덴마크인들과 친하게 지내며 선진 문화를 흡수함에 있어 덴마크의 조류를 일순위로 참고한다는군요. 이뿐 아니라 친족 중 덴마크에 한 사람 정도 연고가 없는 가정이 없을 정도랍니다. "우리는 촌놈들 아닌데 덴마크인들은 우리를 그린란드인들보다 좀 나은 정도로밖에 안 봐요!"라며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귀여운 투정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게 민족 간 적대 관계로 치닫지 않고 즐거운 이야깃거리 마련 정도로 그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노르웨이는 독립의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이웃 스웨덴하고도 꽤 긴장감이 남아 있고, 20세기에는 나치 독일에게 침공, 점령을 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덴마크도 비슷합니다만 이쪽은 왕실부터 해서 조금이라도 존중을 받는 분위기였는데, 노르웨이는 많은 굴욕을 당했고, 그래서 그 짧은 기간 동안 레지스탕스의 저항 족적이 매우 뚜렷합니다. 이웃들이 한결같이 짚는 민족성은, "노르웨이 사람들 참 따분하고 재미없다"이죠. 여튼 노르웨이는 석유의 발견, 또 전통적인 수산업의 발전, 풍부한 천연 자원 덕에 지금은 오히려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나아가 세계 정상권의 1인당 소득)입니다.
스웨덴은 정치적으로 참으로 안정된 체제이며, 노벨상을 수여하는 등 문화, 예술, 학문의 발전상도 두드러진 선진국입니다. 허나 특히 라이벌(?) 관계인 덴마크인들이 보기로 "답답하고 완고한 사람들"이 가득한 고장인데, 이는 워낙 낙천적이고 융통성이 큰 덴마크인들이 내리는 평가라서 그럴 수 있습니다. 또 스웨덴이 인접 착한 나라들의 우려를 사는 단 하나의 요인은 극우 정당의 존재입니다. 특히 노르웨이 같은 나라가 파시즘 때문에 얼마나 큰 시련을 겪었는지 고려하면 경계심이 드는 게 당연하죠.
전체적으로 스칸디나비아, 혹은 더 범위를 넓게 잡아 북유럽 5개국의 특징은, "평범한 사람이 태어나면 더없는 천국이겠으나, 뛰어난 사람은 매 순간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나라"입니다. 이들 나라에서 경제인들이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도대체 혁신이란 게 없다."입니다. 허나 사람이 받은 것 많게 큰 사람은 남한테 베풀 줄도 알고, 자신이 봉착한 위기도 여유와 슬기를 잃지 않고 잘 관리합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이 북유럽 국가들이 여태 겪은 경제적 위기만도 여러 차례인데, 그때마다 특유의 지혜로 돌파구를 찾아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여유 있고 신뢰가 가득한 사회(자전거에 자물쇠를 안 채운다고 하니 고대 중국 태펑성대를 가리키는 성어 "도불습유"의 경지가 따로 없겠어요)에서 자란 사람들이기에, 공연히 비뚤어진 못된 심사를 부리기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바른 길을 잘 찾는 겁니다.
책은 저자가 직접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육성"를 가득 담았습니다. 사실 추상적인 이미지나 지난 역사에 그 일면만이 담긴 채 왜곡되어 통용되는 민족성 등은 우리가 깊이 신뢰를 줄 건 아닙니다. 자신 개인의 경험을 과도히 일반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직접 겪어 보지도 않고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함부로 단정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즐거운 접촉, 소통이 풍성한 이야기를 읽으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사실은 다분히 유쾌하게 놀리는 어조입니다)"이 어디 북유럽에만 있겠나 싶었습니다. 작가의 후속작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