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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방콕

아무튼, 방콕

아무튼, OO-01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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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60g | 110*178*20mm
ISBN13 9791188343072
ISBN10 1188343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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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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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태껏 방콕만큼 가성비가 뛰어난 효율 1등급의 여행지는 보지 못했고, 따라서 새로운 여행지를 탐색하고 선택할 때는 방콕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방콕은 수년째 왕좌를 사수하며 역대급의 승률을 자랑하는 왕중왕 같다. 매번 다른 도전자들이, 이를테면 시애틀과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전자들이 여럿 등장해 각기 다른 매력을 어필하면서 방콕을 위협하지만, 방콕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 p.11

우리에게 배정된 택시가 정차 구역에 멈춰 선다. 내심 핑크색을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초록색이다. 어떻게 택시가 핑크색일 수 있는지 볼 때마다 신기하고 재밌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니까- 나는 여행의 운을 공항에서 시내까지 타고 들어가는 택시의 색깔로 점쳐보곤 한다. 핑크색 택시를 타면 나이스, 그렇지 않으면 쏘쏘일 거라 생각하는 식의 놀이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쏘쏘인가 보다, 하면서 기대감을 낮추는데, 쏘쏘면 그나마 다행일 거라는 경고처럼 운전석에서 웬 상노인이 나온다. --- p.16

애인이 창가 옆 소파에 앉아 호텔 안내 책자를 넘겨보는 동안, 나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창밖을 바라본다. 지금 내가 누워 있는 자리에서는 옅은 구름이 듬성듬성 퍼져 있는 차분한 하늘과 강 건너편의 고층 빌딩이 만들어내는 간결한 스카이라인밖에 보이지 않지만, 내게는 그 별것 아닌 풍경 또한 너무나도 방콕이다. 나는 갑자기 왜 웃느냐는 애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혼자 히죽거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그 정도로 기분이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 만큼 차가웠던 침대 시트가 어느새 내 체온을 머금고 포근해졌다. 우리가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호사와 여유가 이 객실 안에 있다. --- p.38~39

아무래도 나는 내심 이 수영장이 나의 도피처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이곳은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일희일비하게 되는 내 나라나 남의 평가와 기대 때문에 자꾸 우왕좌왕하게 되는 내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기를,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행복해졌다가 불행해졌다가를 반복하는 내 일상이나 남의 시선과 생각에 매여 스트레스 받는 내 생활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곳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여기 있는 동안에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를,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지친 몸과 망가진 마음을 추스를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 p.54~55

나는 겨울의 방콕보다는 여름의 방콕을, 방콕의 건기보다는 방콕의 우기를 더 좋아한다. 건기는 요즘 우리나라의 여름과 그리 다르지 않거나 훨씬 더 뜨거워서 나에게는 다소 버거운 여름이지만, 우기는 내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여름이 바로 이거다 싶을 만큼 모든 게 적당한 여름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견딜 수 있고 기꺼이 견디고 싶은 여름이랄까. --- p.63

하지만 우리는 기어코 방콕에 갔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방콕 시내를 활보했다. 심지어 며칠 전 폭탄이 터진, 반 토막 난 시신과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즐비했다는 그 아비규환의 현장을 일부러 찾아가 추모의 묵념을 하기도 했다. 사방에 깔린 경찰과 군인 덕분에 오히려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능한 일이었지만, 테러라는 게 우리에게 일어날 일은 아니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 p.117

“방콕을 좋아하는 건 우리의 공통점인 거지.” 애인은 내 쪽으로 완전히 몸을 틀고, 나는 애인을 똑바로 쳐다본다. “우리는 거의 겹치는 게 없잖아. 난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넌 비린 건 질색하고, 난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넌 숙취가 심하다면서 꺼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 그래, 난 역사책 읽는 게 좋은데 넌 그런 건 조금도 관심이 없고, 난 옛날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게 좋은데 넌 유치하고 시간 아깝다고 뭐라고 하잖아. 근데 우리 둘 다 방콕은 좋아한단 말이지. 이런 건 진짜 흔치 않은 거잖아. 그러니까 특별한 거지. 안 그래?
--- p.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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