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1년 12월 28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72쪽 | 514g | 142*210*30mm |
ISBN13 | 9788956605593 |
ISBN10 | 8956605599 |
발행일 | 2011년 1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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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72쪽 | 514g | 142*210*30mm |
ISBN13 | 9788956605593 |
ISBN10 | 8956605599 |
정의 원인 I. 사랑결핍 II. 속물근성 III. 기대 IV. 능력주의 V. 불확실성 해법 I. 철학 II. 예술 III. 정치 IV. 기독교 V. 보헤미아 |
밤새 흩뿌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쉬지 않고 자동차를 몰았다. 오스트리아-스위스 국경에서 고속도로 연권을 구입하여 앞창 운전석에 부착한 뒤 눈앞이 보이지 않게 내리치는 비였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무조건 달렸다. 유럽 남쪽의 뜨겁고 찝찝한 더위에 십여일 이골이 난 듯 피부에 감기는 습기와 차가움에 소름이 돋아도 무척이나 반가웠던 한 밤의 냉한 기운! 니스에서 출발할 때 입고 있던 청록의 가벼운 원피스차림으로 무사히 이 새벽을 건널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잠시, 밀려오는 피곤에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는 사이에 새벽을 지나 이른 아침으로 그렇게 새로운 시간이 우리 앞에 다가와 있었다. 물안개에 덮힌 산새의 영험한 분위기에 압도될려면 우선 이 거추장스러운 청록을 벗어 던져야 했다. 긴 면티의 따사로움과 휴게소에서의 따뜻한 세수는 떠돌이 여행의 마지막 의식과도 같았다. 손 안에 전해오는 커피의 뜨거움에 간절하게 생각나는 안네 소피 무터의 바이올린 선율과 철학자 알랭 드 보통. 이 두 사람은 이른 아침 스위스 이름모를 산악지대에 잠시 머문 내안의 나를 끄집어내기에 충분한 사람들이었다. 이 순간이 아니면 이 스위스인들을 언제 기억하리. 그렇게 내 여행의 끝자락은 서서히 저물어갔다. 밝아오는 새로운 날 속으로....
세상에 평범한 사랑이 있을까마는 나와 그녀가 만들어간 평범하고도 로맨틱한 시간속 이야기를 보통이 풀어가면 한 폭의 풍경화가 되었다. 그가 애정했던 철학가들의 여행도 우울에 잠긴 당신에게 던지는 위안의 글도 밤새 내린 빗물에 씻긴 맨얼굴의 산처럼 신선했다. 아니 읽으면서 무척이나 설레였다. 그런 설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을 읽고 제대로 정리가 안된 이유는 공감은 되나 정작 몰입에는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그의 글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본 지침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는 세상이 알아보는 철학자에 다양한 언어에 능통하고 자신의 전문분야를 글 속에 쏟아내는 작가이다. 어렵지 않은 철학 개론에 경쾌하게 접근해보려는 마음이 수반된다면 그의 글은 조금 관대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불안/Status Anxiety>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그는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 연인이 되고 싶어 더 가까이 접근해서 주목받고 싶은데 그러기엔 한참 부족한 내가 그 앞에 서 있다.
그렇다고 포기해야 할까. 비슷한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 경쟁을 한다고 한다. 경쟁심리에 필연적인 촉매제역할을 하는 질투는 내가 지금 어느 자리(status)에 서 있는지를 간파하고 부려야 할 최초의 욕망이다. 내 욕망의 부합되지 못한 결과로 인한 결핍은 내 이성과 용기를 갉아먹는다. 그로 인해 생기는 불안한 심리는 평범하지만 귀중한 삶의 한 부분을 잠식당하고 내면의 고통이 시작되는 그 지점, 바로 스트레스와 우울의 한 요인이 된다. 보통이 철학의 연대기적인 비유와 역사속에 통용되던 관습과 풍속을 예로 들어 인간 심리를 건드리는 이유는 과거인의 삶의 경험이 현대인의 그것과 한치도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통은 무척이나 도발적이다. 내 안의 나를 끄집어 내려면 미덕이 아닌 악덕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 불안이란 악덕의 원인을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으로 보았고 이를 치유하는 해법을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라는 주제로 지적인 제시를 한다.
내가 가장 하찮아 보일 때, 주변의 관심어린 시선과 어설픈 칭찬에 위안을 받는가? 그런데서 위안을 찾고자 하는게 기분 나쁘지 않은가? 내 불안의 요소가 턱없이 사라지지도 않을 뿐더러 나는 그대로일 것이다.
세상을 돌아다닐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거대한 세상의 모습에 한없이 작은 나의 실재를 보는 것, 내안의 허구를 삭제하고 사실에 입각한 내 맨얼굴을 대하는 일, 그렇게 나를 던져도 좋을 만한 세상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실제로 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것일 수도 있다. (p321)
예술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가? 과연 내게 예술이 필요할까? 궁극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그렇다고 세밀한 분석과 기막힌 논리로 무장을 한 적도 없는데 나는 언제나 예술적인 호기심에 갈증을 느낀다. 이 또한 나의 허구는 아닐런지, 세련된 코스모폴리탄을 꿈꾸다가도 질릴대로 질리면 긴 스카프 걸친 보헤미안 기질에 살짝 발을 담근다.
1787년 3월, 괴테는 폼페이를 두번 찾았다. 그는 나폴리에서 이렇게 썼다. "세상에는 많은 재난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것처럼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오락거리를 준 재난은 없다." 스탕달은 <로마 산책 Promenades dans Rome 1829>에서 "콜로세움의 그 거대한 폐허의 구석에서 얼마나 멋진 아침을 보냈던가!"라고 회상하면서, 폐허를 보는 것이 "기억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기쁨"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스탕달은 심지어 콜로세움은 새로 지었을 때보다 폐허일 때가 더 매력적일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p315)
물욕의 향유가 깊어지다보니 소유가 계급을 구조화하고 사회적 물의를 빚어 누군가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이 21세기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높은 코스트의 겨울점퍼를 입어야만 하고 그 값을 치루기 위해 아이의 부모는 등골이 휜다. 그 옷을 입은 아이는 일진에게 매질을 당한다. 고가의 옷을 입을 자격이 없으므로 그걸 입으면 같은 계급이 되니깐, 왕따인 너는 그런 걸 입을 자격이 없다가 결론이다.
1830년대 말 왕의 얼굴을 배(poire)로 비유하여 그림을 그린 무명화가를 잡아들여 재판에 붙이는 일화는 우리의 정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한 대목이었다. 프와르는 과일의 배를 말하지만 얼간이, 바보, 우둔한 사람을 칭하는 속어이다. 화가의 진술이 더욱 이채롭다. 나만 잡아들일 것이 아니고 세상에 존재하는 배나무란 배나무는 모두 자르고 배모양의 물건들은 모두 없애야 한다. 그는 2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정치 풍자와 해학이 파안대소를 자아내게 하는 대목, 잊지 말고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불안을 느꼈는지, 무엇때문에 불안을 느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말을 했듯니 나역시 불안은 타인과의 관계가 있을때 느껴지는 정서적인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에 느끼던 불안은 주로 뭔가로 인해 부모님께 혼날것에 걱정이 되어 느껴지는 것이었고, 학창시절에는 주로 쪽지 시험이나 시험 성적때문에 불안을 느꼈던듯 하다. 대학시절에는 익숙하지 않은 홀로서기를 향한 과정의 여러 불안이 있었던듯 하고 사회생활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책임과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불안을 느꼈던듯 하다. 결혼을 해서는 아이를 키우며 노심초사 이런저런 걱정에 의해 불안을 느꼈던듯 하다. 나의 인생 전반을 생각해보며 인생이란 불안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나의 상태는...나는 남의식을 하지 않는 지극히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성격이라 가족 모두 건강하기만 하면 불안이란 없는 상태이다.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은 나와 입장이 다를것이다. 부양가족의 책임에 의한 불안도 있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느끼는 지위에 대한 불안도 있을것이다. 바로 이 책의 초반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책에서는 지위에 의해 느껴지는 돈, 명성, 영향력이라는 불안은 포괄적으로 사랑의 수단으로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표현한다.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가장 열렬한 욕구의 충족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라 한다. 즉 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에 가난을 부끄러워 한다고 한다. 나도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가난이 싫은것도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것도 모두 타인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인듯 하다. 아무리 나같이 개인주의적인 성격이라 하더라도 어쩔수없이 타인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는 관심에서 멀어질까 두려울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위축이라는 감정에 불안을 느낄것이다.
'불안'이라는 말은 단어 자체에서 어두움이 느껴져 유쾌하지 않은 단어인듯 하지만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철학은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불안 덕분에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능력을 계발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불안이라는 감정덕에 많은것을 조심하고 살아가고 있다. 역시 이 세상에 필요없는 감정이란 없는것인가 보다.
이 책의 저자는 불안을 여러방향의 근본부터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한 결과 지금 사회속에서는 불안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풍족할수록 불안도 증폭된다. 가진자는 잃지 않으려고 불안하고 가지지 못한자는 가지지 못해 불안한 것이다. 어차피 우리 인생과 동반자인 감정 불안! 어차피 느껴야 할꺼 필요할때만 꺼내 느껴보도록 하자.
쾌적한 집에 살며 편안한 일자리로 출퇴근하며 행복해 하다가도 경솔하게 동창회에
나갔다가 옛 친구 몇 명이 멋진 일에 많은 수입으로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하냐는 생각이 드는 이 '불편한
진실', 키 작은 사람이라 해도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 살면, 키 때문에 쓸데없이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
이 불편한 진실을 풀어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둘러싼 불안을 다루고 있다.
이런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을 사랑 결핍, 속물 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다섯가지로
분류한 뒤 이에 대한 해법으로는 철학, 예술,정치,기독교,보헤미아를 제시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되는 속성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관심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로 하기만 해도,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기만 해도 우리 기분은 시커멓게 멍들어버린다. 누가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주면 갑자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환희에 젖는다."
아~내가 머릿속에서 맴돌면서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이렇게 보통의 글로 명쾌하게
설명되니 내 머릿속도 완벽하게 정리가 되는 것같다.
불안의 원인중 놀라웠던 것은 '능력주의'에 대한 설명이었다. 과거에는 사회적 위계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질적 관점에서 보자면 즐겁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였다. 그런데 요즘같은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 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능력주의 사회에서 상속이나 다른 유리한 조건없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개인은 과거 아버지에게서 돈과 저택을 물려받았던 귀족은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개인적
정당성의 요소를 확보했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적 실패는 과거에 삶의 모든 기회를
박탈당했던 농민은 다행스럽게도 겪을 필요가 없었던 수치감과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듣다보니 내가 어떤 일에 대해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 것이 완벽주의 성향이라
그런것으로 판단했었는데 그 이면에는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로 보는 사회적 이목에 대한
두려움도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불안에 대한 해법중 가장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예술'이었다. 예술이 해법이
된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소설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표준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꾼다는 말에 어느정도
수긍이 되었다. 도덕적 렌지로 보면 높고 강한 사람은 작아지며, 이혀져 뒤로 물러나있던
인물이 오히려 크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소설의 세계에서는 덕의 움직임이 물질적 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 예로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을 든다. 나도 예전에 꽤 좋아했던 책이라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다. 오스틴은 이 책에서 설교사처럼 진정한 위계의 개념을 설파하지
않는다.
그녀는 위대한 소설가 특유의 기예와 유머로 우리가 진정한 위계에 공감하고 그 반대의
위계에 혐오감을 느끼도록 이끈다. 자신이 우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의 맥락 안에서 그 이유를 보여준다.그래서 우리
삶을 비평하고 그럼으로서 그 삶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술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서였다면 사회적 지위로 인해 그냥 지나쳐버렸을
사람들의 가치를 이해하거나 평가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우리 본성의 일탈을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게도 하며 실패나 패배에 대한 단순화된 관점을 버리게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굳이 이런 해법을 찾지 않아도 불안에 대한 원인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어느정도는 불안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라고 하니 우선 욕심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그래도 이 책은 한줄 한줄 음미하며 읽어야 할 정도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누구나 불안을 느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이렇게 여러 철학자들의
다양한 각도에서 사색하고 조명한 이론들을 듣다보니 새겨들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또한 내용과 더불어 적절한 사진과 위트있는 삽화로 흥미있는 철학서로 기억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