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7월 20일 |
---|---|
쪽수, 무게, 크기 | 440쪽 | 478g | 128*198*27mm |
ISBN13 | 9791197021633 |
ISBN10 | 1197021639 |
발행일 | 2020년 07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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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0쪽 | 478g | 128*198*27mm |
ISBN13 | 9791197021633 |
ISBN10 | 1197021639 |
제1부 제2부 제3부 에필로그 해설 | 남진우(시인·문학평론가) 무無를 향한 긴 여정 작품론 | 서영채(문학평론가) 질주하는 아이러니 개정판을 내며 도움받은 책들 |
20여년전 장미희 주연의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예전에 했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인들이 멕시코로 이민가서 고생했던 이야기... 그정도 였던거 같다.(별로 관심없었던 장미희 주연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별 생각없이 김영하의 장편소설이라고 해서 구매한 책인데...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걱정스러웠다. 또 설마 지긋지긋한 일제시대의 뻔한이야기를 다루나?
하지만 역시 김영하였다.
남들이 뻔하게 끌어갈 이야기를 김영하는 각각의 캐릭터를 살려 지루하지 않게 표현했다.
그저 여타 이야기 처럼 뻔한 한국인 이민자들의 고생이야기를 다루는것으로 끝내는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인물들의 스토리를 그려나가며 풀어나간다.
미스터 선샤인 식의 뻔하디 뻔한 드라마가 아니라 그래서 슬프지만 재미있었던 이야기이다...
김영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어서 망설임 없이 골랐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이번 작품은 1900년대 초 멕시코의 에네켄(속칭 애니깽) 농장에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멕시코로 가면 돈을 벌어 올 수 있다는 말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배에 오른다.
일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밥이 나오는 생활은 그들로서는 꿈같은 것이었다.
일 년 내내 일을 해도 가뭄이 들거나 홍수라도 나면 그대로 허탕이었다.
보리를 거두는 봄까지는 굶주릴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 중략 -
겨울이 없는 나라, 땅은 넓은데 사람이 없어 그 값이 금과 다를 바 없다는 멕시코는
그들에게 꿈의 나라였다.
소설의 주인공인 김이정도 고아로 살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멕시코로 떠난다.
배에는 몰락해가는 나라의 왕족인 이종도의 가족도 있었다.
신분은 높았으나 가진 재산이 없었던 그는 멕시코에서도 자신이 양반으로 살 줄 알았던 세상 물정 모르는 자였다.
그의 딸이었던 연수와 김이정은 배 안에서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그들 외에도 전직 군인부터 무당, 도둑, 전직 종교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배 안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도착한 멕시코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총과 채찍으로 무장한 지주들과 에네켄이라는 생전 처음 보는 식물을 끊임없이 채취해야 하는 가혹한 노동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머나먼 이국 땅에 도착한 다양한 사람들의 생존 투쟁이 작품의 큰 줄기라 할 수 있겠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에네켄 농장에 귀속된 총 4년의 계약 기간을 버텨내는 이야기다.
2부에서는 멕시코에서 터진 내전에, 3부에서는 과테말라의 내전에까지 휘말리게 된다.
물론 배에 오른 것은 그들의 선택이었지만 사실상 사기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일제가 조선을 합병해버린 탓에 돌아갈 조국도 없어져 버린 상황.
하늘과 땅, 그 사이를 강산이라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강과 산이 없는 세상을 그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카탄엔 그 두 가지가 모두 없었다.
누군가는 지주에 붙어 작은 권세를 누리려 하고, 누군가는 탈출하다 목숨을 잃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권력자에게 몸을 팔아 생존한다.
때로는 집단으로 저항도 해봤지만 그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조선의 전통적인 신분제도에서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김이정과 연수의 사랑은 멕시코의 가혹한 환경에서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노예로 팔려왔기에 자유가 없었고, 시간이 흘러 자유를 얻은 뒤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거야.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어두운 작품이었다.
당연히 우리 조상들이 고생한 이야기니 유쾌하게 읽히지는 않겠지만, 저자 특유의 차가운 서술이 이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일말의 해피엔딩도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 저항해 보려고도 하지만 큰 물줄기에 휩쓸려가는 자갈돌처럼 개인의 움직임은 큰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남의 나라 내전에 참가해 목숨을 잃기도 하고 마약 중독자가 되기도 하며 작은 권세를 누리려다 반란에 진압되어 처형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들을 멀찍이 관찰하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별한 슬픔도, 애정도 묻어있지 않은 담담한 문체로 꼭 필요한 서술만을 남겨 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긴장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유지되는데 그 때문에 짧지 않은 작품인데도 꽤 짧은 호흡으로 모두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건은 픽션이지만 멕시코로 이주한 조선인 노예들의 삶은 실제 역사다.
태어날 시대를 자신이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 역시 시대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먼 미래에 전 세계인들이 조선말로 된 노래와 영화에 열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들의 고단한 삶에도 무언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비록 픽션에 한 발을 담가 둔 소설 속의 인물들이지만 한순간의 작은 희망조차도 갖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라져간 그들의 삶이 무척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100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의 삶은 잊혀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사소설 자체를 굉장히 오랜만에 접했는데, 역시 저자의 명성에 걸맞게 재미 면에서도 훌륭했고 읽은 후 여운도 오래 남았다.
조상들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누가 읽더라도 비슷한 감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었다.
2020.7.20 복복서가(2003.8.20 문학동네)
2021.05.28. 금. PM 15:00.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작열하는 5월과는 다른, 미안할 정도의 청명함과 시원함이다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하는 ‘검은 색을 띈 꽃’
‘검은 꽃’은 광복이 오기 전, 그러니까 일제 치하에 있기도 전,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이 러시아로 몸을 피하고 제 나라가 사라져가던 시기에 제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살아내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검은 꽃’도 ‘꽃’인 거라고 나라가 없어도 나라의 사람이길 끊임없이 희망하고 희망하고 희망하던 이들의 처절한 '희망가’이다.
1905년 4월,
조선인 1033명은 조선에서는 어림도 없는 돈을 벌 거라는 소박한 ‘희망’을 들쳐매고 멕시코로 향한다. 그리고 그들의 희망은 그럴싸해보였다. 적어도 ‘일포드호’ 안에서는 그랬다. 세계 정세가 재편되고 있던 혼란의 땅을 비웃기라도 하듯 잔잔한 물살을 헤쳐가는 일포드호에서는 귀족과 고아가 사랑을 나누는가 하면 파계 신부는 자신을 괴롭히던 무엇으로부터 탈출한 셈이었고 별 볼일 없던 천한 신분의 대다수는 앞으로 펼쳐질 평등과 부에 대해 지껄였으며 자신의 황제가 멕시코에서의 안락한 삶을 하사할 거란 사대부의 신념까지도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멕시코에 도착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신세계>를 들으면서도, 짐승처럼 책정된 몸값으로 에네켄 농장에 내팽겨쳐졌음에도 여전했다.
사 년만 버티면 에네켄 농장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돌아갈 고국이 없다면 신대한을 세우겠다는 그 모진놈의 ‘희망'
낯선 땅에서 민족적 정체성 없이 살아가면서도 이들은 지독하리만큼 희망의 끝자락을 놓지 못한다. 희망의 끝은 늘 절망이었음에도 이내 다른 희망을 찾아내고 그 희망도 얼마 못 가 절망으로 재배치 되지만 원래 작았던 마냥 끊임없이 크기를 나누고 잘라서라도 붙들고 있다. 이 와중에도 왜 신분은 목숨 같으며 왜 사랑은 하는 것이고 기약도 완성도 없는 무엇을 향해 제 몸이 사라질때까지 왜 날카로운 희망 조각을 놓지 못한 채 피를 흘리는 것인가.
“이정은 너무 늦게 돌아온 것에 대해 사과했고 연수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늘 지는 쪽에 있었다고 이정이 변명처럼 말하자 연수는 그래도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던 운명이었으면 좋겠다고, 조금은 책망처럼 말했다.” P329
이정에게 연수는 돌아가야만 하는 ‘제 나라’였다. 그리고 이정을 기다리던 연수는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도 없이 운명의 물살을 타고 흘러왔다. 그 모진 풍파를 견뎌낸 댓가로 10년이 흘러서야 마주한 연인은 더 이상 검은 눈매가 생동하는 열여섯 소년의 ‘이정’이 아니었고 이정을 처음 받아들이던 볼 방긋한 소녀 ‘연수’도 아니었다.
이제는 다른 남자의 여인이 된 ‘연수’고 제 나라를 잃어 갈 곳이 없어진 ‘이정’이다. 이 둘을 맞이하는 지독한 현실 앞에 잘못은 누구에게 있고 이해는 누구의 몫인지, 나는 아무래도 알 길이 없다.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P295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거야.” P347
조선의 것이라고는 가진 몸뚱아리밖에 없어 마야 피리에 맞춰 노래하던 내시 출신 김옥선. 우스운 생각일 수 있지만 지금 그의 옆에 있다면 내가 지은 시 인지 노래인지 모를 이것도 흥얼거려 주길 청해야겠다.(제목은 ‘희망가’라고 해두고...)
허이~ 흐이~
내가 갈 곳 어딘지 알려주오
내 희망이 무언지 알려주오
내게 그런 하찮은 요행도 사치라면
어느 날 내 꿈속에 찾아와
잘했다! 미소라도 지어주고 가오
살아생전 어렵다면 나 죽은 뒤에라도 찾아와
내 나라 사람으로 죽었다 귀띔이라도 해주오~
백 년이 훌쩍 지나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가’는 더 이상 필요 없어졌을까?
“모든 나라가 평등하며 정체는 공화국이 될 것이다. 원하는 마야인들은 들어와 살 수 있으나 우리의 지배를 받는다. 어째서? 김이정이 물었으나 장윤은, 그런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말투로 반문했다. 그럼 우리가 그들의 지배를 받으란 말인가? 이정은 지지 않고 따졌다. 어째서 반드시 한쪽이 다른 한쪽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자코 있던 박광수가 힘없이 말했다. 왜냐고? 우리가 사라질까봐 그러는 거야. 우리는 소수고 마야인들을 셀 수 없이 많지. 그들과 섞여 종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봐 그러는 거야. 그렇지만 우린 어차피 모두 죽어.” P341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과는 거리를 잴 수 없을 정도로 먼, 숲만이 이불 덮은 듯 펼쳐진 ‘밀림’에서 조차 우위는 나누어 진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지배하는, 주체만 다를 뿐 같은 궤적을 향해가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도 그렇다.
물론, 100년 전 멕시코에 내버려진 이들에 비하자면 국가의 개념이 당연해서 치열함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할 수 있겠지만 힘의 논리로 분배되는 강과 약은 늘 존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형태이거나 세련됨으로 포장되어 자신들이 지배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갈 뿐.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 결정권을 가진 채로 남과 북은 분단되어 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뉴스와 유튜브 영상이 여과없이 쏟아져 나온다. 당연히 강대국은 혹 하는 명분을 만들어 이익이 되는 편에 무기와 자금지원을 하는 형태로 분열을 종용하면서... 100년 전 그들처럼 지배 받지 않기 위해 지배하고 사라지지 않기 위해 사라지게 하는 과정에서 국민은 처참하게 희생되고 그러다 결국, 패배한다면 국가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그러니까. 애석하지만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희망가’는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