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은요?”
“감식반은 채취 못 했네. 범인이 자기가 손댄 부분은 닦았겠지.”
“붙잡으려면 자루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없다니 이상하네요. 그리고 아주 가벼워요.”
“직접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 소재는 알루미늄 합금인 것 같아. 가볍고 가공하기 쉬우니까.”
“알루미늄은 약할 것 같은데요.”
“수사1과의 이누카이가 그걸 모르다니? 알루미늄이 청동보다 더 단단하다고 할 수 있어. 가공하는 방식에 따라 이렇게 이상적인 흉기로 완성될 수 있다고. 그래서 자료로 보존하고 싶다는 거네.”
“이상적이라고요?”
“가볍고 단단한 데다 가공도 쉬워.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지 않았던 걸로 봐서 다툰 흔적도 없어. 갑자기 뒤에서 찔려 상대방 얼굴을 돌아볼 사이도 없이 절명한 것 같아.”
“여성이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습니까?”
“이 흉기라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지.” --- p.15
“작가도 아이돌이나 스타 운동선수처럼 동경하는 직종이라서 꿈꾼다는 점만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이 분야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아이돌을 꿈꾸는 사람은 용모가 특출하다거나 노래에 재능을 지닌 사람이고, 스타 선수가 되려는 사람 역시 운동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죠. 그런데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90퍼센트 이상이 재능도 없고 끈기도 없습니다. 게다가 자각도 없고요.”
“어, 하지만 작품을 투고하는 사람들 수가 5만에서 10만 명은 된다고 하셨잖아요.”
“도저히 소설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을 투고한다는 거죠. 자신에게 작가의 자질, 이야기를 구축하는 소양이 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동네 야구팀에서 뛰던 초등학생이 프로 야구 입단을 위해 심사받는 것과 마찬가지죠.” --- p.32
“……그걸로 안 된단 말이에요.”
“뭐? 다시 말해봐.”
“그런 평범한 일 말고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일이어야 해요. 안 그러면 의미가 없단 말이에요.”
“아아, 인생 한 방이라는 거구나. 자네 같은 사람들 참 많단 말이야. 꼭 인생이 꼬이거나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한 방에 역전되는 걸 노린단 말이지. 왜 착실하게 인생을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을까? 평범한 직장인, 평범한 판매원은 안 되는 거야?”
“평범한 직장인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잖아요.”
“나왔다, 나왔어. 뻔질나게 들어 친숙한 그 인정 욕구! 나를 인정해줘, 나를 사랑해줘, 나 여기 있어. 변두리 폭주족도 아니고 그런 일에 체력과 시간 소비하는 짓 그만두라니까. 자네, 올해 서른둘이지? 앞으로 3년이면 서른다섯, 그러면 마흔까지 순식간이야. 그때까지 계속 이렇게 살 거야? 1차 심사위원들 외에는 절대 아무도 안 읽을 원고를 쓰면서, 수상 소감 발표하는 망상이나 키우면서, 낙선할 때마다 홧술 들이켜면서 1차 심사위원과 출판사, 거기다가 수상작까지 헐뜯는 걸 언제까지 허무하게 반복할 건가? 하나 덧붙이지. 서른 넘어서도 결혼 못 하고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모아놓은 목돈도 없으면서, 자기한테 영향력이 있다고 온종일 망상에 빠져 있는 생활무능력자들을 가리켜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 우훗.” --- p.46
“이인삼각으로 뛰면서 작가를 키워가는 타입과 수익에 얽매여 인기 작가의 원고만 모으는 타입. 하지만 그건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잖아요. 요는 이상주의자냐 현실주의자냐 하는 차이 아닌가요?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기보다 오히려 양쪽 모두 있는 게 건전한 업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응, 응, 맞는 말이야. 아스카 씨, 잘 아네. 어느 세계든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있는데 그 본질을 가만 보면 한 사람의 속에서 서로 다투는 두 가지 입장이라 할 수 있지. 달리 말하면 이상은 장래성, 현실은 수익성인 셈이야. 이 두 가지가 병존하지 않는 업계는 결국 쇠락하게 돼 있어. 출판사에 적용시켜보자면 문화 사업이라는 성격이 이상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기업이 성립되지 않으니 현실적인 영리도 추구해야 해.”
“그렇다면 왜 수익성을 추구하는 마다라메 씨만 미움 받을까요? 물론 하고로모 씨와 덴도 씨가 작가로서 이용당했으니 원망이 가슴에 사무쳤겠지만 그렇다고 살해할 만한 원한으로까지 이해되진 않거든요.” --- p.102
“그런 소리는 자기 작품이 밀리언셀러가 된 다음에나 지껄이든지, 이 멍청한 자식아.”
기리하라가 불쑥 중얼거린 말에 아쿠타가와가 얼어붙는다.
“머릿속에서 이미 시대의 총아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의 자네는 데뷔는 했지만 다른 출판사의 오퍼도 없고 몇 푼 안 되는 원고료로 생활보호대상자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 망상벽 기질의 저소득자에 다름 아니네.”
“마, 망상벽의 저소득자라니.”
“그렇게 불리기 싫으면 이런 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한 장이라도 더 원고를 쓰게. 자네가 선택한 일은 그런 거야. 알았으면 당장 가.”
“……빌어먹을.”
아쿠타가와는 침이라도 뱉을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워낙에 욱하는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기리하라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은 것은 주변에 선배 작가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p.143
‘항상 하는 푸념이지만 요즘은 돌파력 있는 신인이 안 나오네요. 데뷔작부터 폭발력이 없으면 정말 나중에 힘들어지는데.’
‘차라리 사고든 뭐든 안 좋은 일이라도 일어나주면…….’
‘아아, 안 돼, 안 돼. 수년 전에 조류 신인상 받은 신인이 데뷔한 지 일 년도 안 돼서 자살한 적 있잖아. 그때도 판매에 전혀 영향이 없었어.’
‘부장님, 그건 어쩔 수 없다니까요. 옛날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라면 몰라도 지금은 작가가 죽었다고 해서 베스트셀러 되기는 어렵죠.’
‘일단 이 세 사람은 신인상을 받은 보통 사람이니까요. 보통 사람이 죽었다고 주목하는 경우는 없어요.’
‘이 사람들은 죽어도 잡초도 안 자라겠구나. 정말 불경기야.’
‘불경기네요.’
--- p.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