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1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352쪽 | 458g | 149*219*30mm |
ISBN13 | 9788957317730 |
ISBN10 | 8957317732 |
발행일 | 2019년 0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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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2쪽 | 458g | 149*219*30mm |
ISBN13 | 9788957317730 |
ISBN10 | 8957317732 |
추천의 글 1장. 예수의 발치에 함께 앉다 1부. 그분의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 2장. 예수께서 랍비로 오신 이유 3장. 진주 꿰기 4장. 제자의 총체적 목표 5장. 하베림이 되어 함께 성장하다 2부. 예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 6장. 랍비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소서 7장. 하나님의 임재를 유지하는 길 8장. 유월절의 재발견 9장. 유대 절기 속에서 만난 예수 10장. 랍비와 한 상에 앉다 3부. 복음의 깊이를 더하는 랍비식 가르침 11장. 랍비의 옷자락을 만지다 12장. 예수와 토라 13장.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제자 14장. 예수의 참 제자로 살아가는 길 감사의 글 더 깊이 읽기를 위한 묵상 질문 예수의 기도문 성경의 절기 용어 설명 주 추천 자료 |
랍비 예수, 제자도를 말하다
처음 로이스 티어베르그의 <랍비 예수>를 읽었을 때의 그 신신함을 잊을 수가 없다. 황량한 켄사스에서 오즈의 나라로 날아간 도로시가 된 느낌이랄까? 차가운 논리와 비평으로 점철된 고대세계에 대한 문헌들은 읽기에도 벅찼다. 그러나 랍비 예수 시리즈는 한 편의 SF 영화처럼 신선할 뿐 아니라 흥미로웠다. 이번에 출간된 <랍비 예수 제자도를 말하다>는 이전의 책과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공저자인 로이스와 앤가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스토리 안에 유대적 제자도가 무엇인지 설명해 나간다.
제자가 된다는 것이 뭘까? 저자들은 유대적 문화와 삶의 맥락 속에서 성경적 제자도를 찾아 나선다. 랍비에게 배운다는 것을 ‘발치에 앉다(sit at his feet)’라고 말한다.(16쪽)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이 관용구는 제자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제자라는 말을 성경 공부나 신학교에 입하는 것 등으로 한정시킨다. 그러나 히브리적 제자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가르침은 지적인 부분도 무시하지 않지만 진정한 가르침은 삶 그 자체이다. 랍비는 제자를 가르칠 때 책상에 앉아 공부하지 않고 자신이 삶으로 제자를 초대한다. 제자는 랍비의 전 삶을 배우게 된다.
“제자는 성경뿐 아니라 랍비의 삶을 통해 본문을 공부하길 원했다. 삶이야말로 토라를 삶으로 살아내는 법을 배울 현장이었다.”(45쪽)
진정한 공부는 삶이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은 곧 삶’(51쪽)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언어, 손 짓, 식사 습관, 독서, 여행, 잠꼬대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랍비가 일상생활 속에서 반응하고 살아가는 방식까지 아우르는 행동으로부터’(69쪽) 배우는 것이 제자의 학습법이다. 안게 사빈이라는 도예가가 일본에서 6개월 동안 도제교육을 받은 이야기는 참 배움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는 그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고작 그곳에서 한 일은 집안일을 돕고 단순 잡무를 거들었다. 그는 시간 낭비였다고 후회했지만, 돌아와 새 작품을 만들었을 때 탄성을 지른다. 그는 전혀 배우지 않았다고 했지만 ‘부지불식간에 새로운 작업 방식을 터득’(70쪽)한 것이다.
주님은 ‘제자 삼으라’ 명령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모든 삶을 개방하고 제자를 양성할 수 있을까? 나는 두렵다. 내 안에 숨겨진 악과 타인이 알지 못하는 모난 성격과 행동들이 탄로 날 것 같다. 겉으로 거룩한 척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유대적 절기와 다양한 삶의 습관들은 ‘하나님을 말씀을 삶으로 재현하는 방식들’이다. 제자도는 그러한 삶을 우직하게 따라 삶으로 재현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묻는다. 현대교회는 진정 제자를 삼고 있는가? 흥미로운 읽을거리와 신선한 도전들은 읽는 재미를 더해주지만 제자도에 대한 묵직한 물음에는 답할 자신은 없다.
제목에 끌려서 구입해서 읽었다.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류모세 선교사의 “열린다 성경 시리즈”가 생각났다. 이스라엘 선교사가 현지의 식물, 동물, 풍습, 절기, 성전 등의 요소를 성경과 연결시켜서 새롭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이번 책에서는 유대교와 성경을 연결시키는 새로운 구성을 접했다. 기독교의 뿌리는 유대교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유대교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수구적인 종교로 남아버려서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말씀이 전파될 때 세상의 끝날이 올 것처럼. 예수님 자신도 유대인이었고 존경받는 유대인 랍비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복장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유대인 남자의 제법 존경받는 패션인 ‘옷술’. 중풍병으로 아파온 여인이 예수님의 옷술을 만지자, 그분의 권위에 의해 중풍병이 낳았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누가 나를 만졌는가’(p.212)하고 질문을 하셨을 뿐이다. 물론 거기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지만. 그냥 권위 있는 선지자였으면 단순히 가지고 있는 권위가 빠져나가 앞으로의 일을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권위는 중풍병자에게 새 삶을 주고 더 나아가 야이로의 딸까지 치료하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단순히 참고할 만한 새로운 성경해석법 정도로만 생각되어서 몇 가지 구절만 열심히 살피고 읽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만드는 유월절 잔치를 접하면서 속으로 깜짝 놀라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점점 더 몰입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8장 유월절의 재발견-p.140~173) 그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유월절에 잡히시고 십자가의 형벌까지 받으셨다’로 알고 있었던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론 예언은 예언대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기분이었다. 1) 예수님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던 기득권세력이 잡은 D-day인 유월절 만찬 후. - 유대인들은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해야 했다. 거기에 포도주 만찬까지 겹치니 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닥칠 시련을 준비하시면서 제자 중에서도 3명만 택하여 함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했건만 제자들은 만찬 후 쏟아지는 잠을 견디지 못하여 잠들었으니, 이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던 적대 세력이 예수님을 납치하다시피 잡아갔다. 2) 평소에 예수를 따르던 그 많던 무리는 예수님이 잡혀서 심판을 받을 때까지 뭐 했나? - 유대 랍비들도 말하기를 포도주를 많이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은 만찬을 끝까지 즐기지 못하게 막았으니, 만찬을 끝까지 즐긴 사람들은 얼마 없었으리라. 많은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도 역시 유대인의 풍습대로 일찍 집에 가서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마무리, 이것을 짐작한 적대 세력들은 모든 일을 새벽에 일사천리로 끝내버렸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제까지 막연하게 많은 유대인을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해버린 내가 부끄러웠다. 그들 중에는 분명 예수님께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치료를 받은 사람도 있을 텐데. 사람이라면 자기를 치료한 자를 배반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하면서 원망도 많이 했었다.
앞으로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성서 시대의 배경을 한 번 더 생각해볼 것 같다. 그러나 어떠한 새로운 관점이 들어오더라도 신앙의 깊은 뿌리를 가지고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혼동만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으로 많은 점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강조하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고, 유대인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곱씹게 되겠지만 나는 기독교인이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유대교와 같이 수구세력으로 회귀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랍비 예수, 제자도를 말하다
로이스 티어베르그.앤 스팽글러 지음
국제제자훈련원 펴냄
"지금, 여기에서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
"당신의 집이 랍비의 모임 장소가 되게 하라.
그들이 오가며 내는 먼지에 뒤덮이고
그들의 말을 목마른 자처럼 들이켜라."
(요세 벤 요제르/주전 2세기)
복음서는 그나마 성경 전체 중에서도
읽기 편하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십 세기 전 예수님이 사셨던 시대와의
시차, 종교 전통, 언어, 문화적인 다름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읽고 있는가!
물론 몰라도 말씀을 읽고 삶에 적용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분의 문화 속에서
다시 듣는 여정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낯선 시간, 낯선 문화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성경의 메시가 더 분명해지고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성경(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은
본질적으로 유대문서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유대교 전통이 예스럽고
여러 관행이 지혜롭고 성경적이라는 이유로 자칫
유대교에 매료되지 않도록 유의시키고 있다.
1세기의 이스라엘,
과연 메시아가 언제 어떻게 올지 의견이 분분하던 때에
사두개파, 열심당, 에세네파, 바리새파는
치열한 영적 모색을 했다.
그 때 나사렛 출신의 한 랍비가 있었으니...
과연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
이 책은 궁금증과 질문들로 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은 얼마나 유대적이었을까?
왜 우리는 예수님을 랍비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일까?
예수가 구세주이며 메시아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을까?
예수님이 받은 유대적 양육은 그분의 생애와 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예수님이 오시기 전, 수세기 동안 토라를 공부하고 가르치려는
진지한 열망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 있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런 학식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고자
'나의 주인master'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랍비'로 그들을 불렀다."
36쪽
토라를 해석하고 성경을 강해하고
비유를 들려주었던 랍비들,
랍비의 삶에 관한 여러 지식들은 예수님의 생애에
빛을 조명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예수님을 당대의 다른 랍비와 비교한다고 해서
그분이 그저 '또 하나의 랍비 선생'에
불과하다는 뜻이 아니라
삶과 죽음 전체를 통해 우리를 속량하시며
어떻게 살지를 가르치신 우리의 위대한 선생임을
강조시키는 책이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은
랍비의 삶과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며
어떻게 살아갔으며 무엇을 목표 삼았는지와
교집합이 많다는 점을 발견하니 이해가 좀더 쉬웠다.
랍비의 가장 큰 목표 즉 사명은
자신의 가르침을 계승할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었고,
하나님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생한 삶의 실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1세기의 예수님도
자신을 따를 제자를 양육하시고
제자도를 삶으로 살아내는 모범을 보이신 분이셨다.
이렇듯 '실제 말씀하신 바'를 아는 것에
한걸음 더 나아가 '생략하신 내용'을
1세기 유대의 랍비들의 삶을 통해 알아가는
지혜가 있는 책이다.
더불어 앎으로 끝나지 않고
랍비 예수가 가르치신 제자도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권면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유익함이다.
유대의 토라, 하베림, 주기도문, 유월절,
성전, 식사문화, 관습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토론하고
말씀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 성경을 통독하도록,
겸손함으로 랍비를 섬겼던 제자들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일상 속에서 섬기기 위해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하나님이 우리 삶에 행하신 간증 거리를
교회 안에서 서로 나누고 축하하고 있는지,
주님의 임재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지,
율법 그 이상을 하라는 도전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등을 도전해준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다. 구주의 삶과 가르침에 홀딱 반해 그분이 거니셨던 세상과 문화, 언어를 공부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역사의 외피가 한 겹씩 벗겨졌고, 나중엔 우리가 제자들과 나란히 예수님의 발자취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만일 예수님이 에스키모였다면 우리는 이누이트어와 문화를 공부하며 이글루와 얼음낚시와 북극곰을 주제로 연구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더 명쾌하고 강렬하게 들을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2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