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선 자신의 상처에 정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약해져야 할 때 약해지고 무너져야 할 때 무너지고 울어야 할 때 울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그리고 믿음의 형제자매 앞에 내어놓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바울 사도가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고후 11:30)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인생 여정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나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연결 고리가 나에게서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습니다.
---「1장 모두가 아프다」중에서
하나의 생명은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다른 생명에게서 도움을 받고 다른 생명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 안에서만 생명은 존재합니다. 서로가 타자를 위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바로 이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 이 생명의 원리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잘 보입니다. 사랑은 자기중심성에서 비롯하는 질병을 치유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향하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에서 보람과 기쁨을 맛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생각을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입고 살고 있는지’가 하나요,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인지’가 다른 하나입니다. 앞의 사실을 기억한다면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게 될 것이고, 뒤의 사실을 기억한다면 책임감을 느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은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내가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2장 살아야 할 이유」중에서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입니다. 당신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전혀 없지만, 당신은 그분의 영원한 사랑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당신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하나님께는 무조건적으로 사랑받는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기억하십시오. 당신 곁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입니다. 당신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도, 당신이 상처를 준 그 사람도, 때로 원수 같은 그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입니다.
---「3장 사랑이 길이다」중에서
우리는 점점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잘못을 해 놓고 사과하지 않는 것 혹은 궤변으로 상대방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것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연약함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연약해서는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변호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강한 것이며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상처가 더 흔해지고 깊어지며,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더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4장 용서하기보다 어려운 것」중에서
믿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평평한 운동장에서 영원한 춤판에 참여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까지 지금 서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의롭게 살아가도록 힘쓰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치도록 힘쓰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희생당하고 낙오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야 합니다.
---「5장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중에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마치 세상이 자기 것이라도 되는 양 인생을 허비하며 사는 일부 재벌가 사람들, 자신에게 맡겨진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양 오만하게 구는 일부 정치인들, 대중 앞에 나타날 때마다 지옥 같은 사생활을 감추고 화려한 모습을 연출하는 일부 연예인들…. 영적인 면을 보지 못하면 이런 사람들이 부러워지고 또한 분노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안다면 그들의 현실 뒤에 있는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6장 현실을 넘어 진실을」중에서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 결핍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이유는 이 진실을 기억하고 선포하고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결핍 의식에서 벗어나 충족 의식으로 회복됩니다. …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든 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처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깊이 고개 숙입니다. …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고 자족하자는 말은 이러한 사회 현실을 외면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 현실이 이토록 왜곡되어 있기에 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 왜곡된 세상에서 버틸 힘을 얻고 또한 그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얻고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7장 하나님으로 충분하다」중에서
믿음은 고난을 제거하자는 노력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 믿는다는 것은 모욕과 박해와 비난에서 벗어나 존경과 칭찬과 보상만을 추구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누구나 당해야 하는 고난은 그대로 있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믿기 때문에 자초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이 더 많아집니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마음 깊이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믿음의 길에서 크게 넘어질 수 있고, 때로 중도에 믿음의 길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인생의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의 믿음의 실력을 키우십시다. 피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은혜의 능력으로 거뜬히 이겨 낼 수 있도록,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에 부딪히게 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8장 약함을 자랑하는 이유」중에서
믿음은 고난을 제거하자는 노력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 믿는다는 것은 모욕과 박해와 비난에서 벗어나 존경과 칭찬과 보상만을 추구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누구나 당해야 하는 고난은 그대로 있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믿기 때문에 자초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이 더 많아집니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마음 깊이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믿음의 길에서 크게 넘어질 수 있고, 때로 중도에 믿음의 길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인생의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우리의 믿음의 실력을 키우십시다. 피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은혜의 능력으로 거뜬히 이겨 낼 수 있도록,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에 부딪히게 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품어야 할 신비입니다. 삶을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 사람 중에 그 문제에 대한 정답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많은 의문을 품은 채 죽음을 대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품어야 할 신비’라고 생각하고 살아간 사람들은 때로 부조리해 보이고 때로 억울한 일을 겪어도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살아갑니다. 삶이 그렇기에 죽음도 그렇습니다. … 우리는 이 세상밖에 보지 못합니다. 죽음이라는 터널을 지나면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죽음이 문제요 불행이요 절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십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아십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탄생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9장 죽음은 소중하다」중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혹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종교성의 이유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미리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차이가 너무도 커서 감히 알 수가 없습니다. 어린 자녀가 아버지의 생각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그렇기에 미래의 일을 알아내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다스리시고 또한 모든 것을 때에 맞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 있는 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때 이른 것도 아니고 때늦은 것도 아니라 제때에 가장 아름다운 일들이 됩니다. 그분 안에 머물러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때가 좋은 때이고 모든 일이 좋은 일입니다.
---「10장 언제든 좋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