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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 갈 거예요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아침달 시집-01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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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54g | 125*190*8mm
ISBN13 9791189467173
ISBN10 118946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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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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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우리는 앉아서
자본주의를 배운다.

이 시대에 돈으로 생명과 영혼을 사고팔아서는 안 된다, 문장을 읽을 때

어린 친구가 묻는다.

선생님, 영혼은 어떻게 팔아요?

그는 이제 십 년을 살았으니 어떤 답을 해야 할까. 작년에 죽은 친구는 이 시간이면 성당에 갔었다.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좋은 곳에 있을 테지. 영혼은

호리병에 훅 담아 팔아요?

손을 모아 진지하게 입김을 후후 불고는 꺄르륵 웃는 것이다.
--- 「일요일」 중에서

창과 빛이 있으면
시를 쓸 수 있지
저 창에 쏟아지는 빛으로
질서를 말할 수 있고
문 두드리고 들어오는 빛으로
환대를 말할 수 있고
나의 몸을 떠난 채
등 돌리고 있는 신에 대해 말할 수 있다
--- 「품위 없이 다정한 시대에서」 중에서

기억에 무슨 가치가 있어요?
책을 덮고 그는 묻는다.

내가 말하는 건 워크맨과 삐삐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그거 말이죠?
너의 시선은 화면을 찾는다.

이제 나는 텔레비전도 없이 사는데
옛날에는 영화를 비디오로 봤다는 이야기 저도 들어봤어요.

우리의 대화는 사물과 사물을 쌓으며
움직인다.

우리는 뭘 알고 있을까?
--- 「삐삐」 중에서

그런 날이 있지. 하루 종일 하나의 빵만 떠올리는.

먹을 거 있어?
이거라도 괜찮다면.

가방 속에 넣어둔 포근하고 아름다운
빵.

출근길에 샀다가 종일 뒹굴고 퇴근길에 잊고 있던
버터 밀크바를 떠올리는 순간.

그에게는 오늘이 어떤 날이었을까. 짐승들은 좋았던 음식을 생각하며 하루를 살기도 한다는데. 손을 내밀고 온순한 눈망울을 그리다가

이게 뭐야?
다시 묻는 날.
--- 「버터 밀크바」 중에서

아까 천둥이 쳤었어요
오늘은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어린 친구들은 겨울왕국을 보러 가면서, 오늘 저는 좋은 곳에 가요, 제 두 번째 꿈을 이루는 거예요, 라고 떠들었는데

친구들은 꿈을 이뤘겠지 그들이 좋은 곳에 들러 언젠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까지, 그들의 시간은 흐를 것이다
---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중에서

한여름 천사를 그린다면
적어도 사람의 얼굴은 아니겠지.

냉면에 올라간
차갑고 아무것도 없는 오이를 건져낸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어. 오이는.
우리의 이름과 같아.
--- 「구빈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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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시는 아주 멀리서 들리는 소리 같다. 귓가에서 조곤조곤 들려주는 소리가 아니라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다. 조금 과장하자면 “가장 먼 은하의 개미”가 내는 소리처럼 희미하고 희박하게 들린다. 소리는 소린데, 너무 작아서 귀로 듣기보다 눈으로 담아야 하는 소리. 눈을 크게 뜨고 상상해야 겨우 감지되는 소리. 가령 “소리 내며 따라오는 눈송이”, “벌레의 울음소리로 엮은 양탄자”, “심해까지 울리던 종소리” 같은 기묘한 음풍경(音風景)이 시집 곳곳에 배어 있다. 때로는 “먼 조상의 이름처럼” 때로는 “까마득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소리의 풍경은 그러나 현실과 무관한 세계에 대한 탐닉의 결과물로만 볼 수는 없다. 그것은 “매우 멀리 있는 듯 낯설게” 보이는 한편으로,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의 소리처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소리이기도 하다.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있는 줄도 모르는 그 소리가 가장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보다 더 멀어 보일 때, 더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한 그 소리를 이상하게 증폭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김소형의 시는 발화한다. 무심히 버려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듯 침묵”하는 “창문과 빛”을 기어이 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의 시는 또 발생한다. 기어이 발생하는 시는 기어이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심히 쌓여서 버려진 눈이 “가끔은 지붕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행하는 것처럼, 시인 혼자서 내내 듣던 소리가 어느 순간 우리 모두의 귀를 놀라게 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 김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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