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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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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374g | 128*188*30mm
ISBN13 9791187514558
ISBN10 118751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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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전체가 구름 그림자 안에 들어갔다.
---「첫문장」중에서

“아사코는 그런 타입을 좋아하는구나?” 하루요의 목소리는 길 양쪽이 복합빌딩 벽으로 빨려들어갔다. “내 타입이라든가 그런 거 아니고, 아아, 내가 기다렸던 그런 사람이다, 라는 느낌.” “나는 그런 얼굴, 어쩐지 믿음이 안 가던데.” “그런 얼굴이라니?” “잘생긴 얼굴, 이라기보다 남들이 호감 갖는 얼굴이라는 걸 자기도 뻔히 다 알고 있는 느낌이잖아. 그런 사람은 역시 어딘가 자기 위주일 수밖에 없어.” “진짜 하루요는 남자 보는 눈이 있다니까. 그래도 내가 원하던 사람이 나타났잖아. 그런 일이 이 세상에 있어도 괜찮은 거야? 아, 괜찮겠지? 실제 일어났잖아!”
--- p.38

바쿠가 내 앞에 앉아 내게 키스했다. 등에 바쿠의 손의 감촉이 느껴져서 흠칫했다. 이 사람에게 의지가 있고 그에 따라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을 방금 안 듯한 느낌이었다. 이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나 아닌 사람이 나에 대해 생각하고 관여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예상도 못했었다. 오래 키스하는 동안, 나는 무릎을 꿇은 자세가 되었고 그러다가 둘이 다다미 위로 쓰러졌다.
--- p.55

“아니, 그게 아니라 바쿠 말이야. 아사코, 저런 사람 정말 괜찮아? 저런 행동은 좀 아니잖아.” 하루요가 되풀이했다. 굳이 여러 번 말하지 않아도 처음에 알아들었는데, 라고 생각했다. “응, 진짜 좋아해.”
--- p.96

내 발이 바쿠의 어깨를 걷어찼다. 넘어진 바쿠의 등도 걷어찼다. 걷어차는 내 발을 바쿠가 잡아당겨서 외다리가 된 나는 미끄러져 다다미 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진 나를 바쿠가 껴안았다. “늦더라도 나는 분명히 돌아오니까, 응, 괜찮아.” 바쿠가 말했다. 바쿠의 오른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아 짱이 있는 곳으로 반드시 돌아올 거니까.”
--- p.106

키 큰 점원의 배웅을 받으며 신사이바시스지 상점가를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옷가게 들어가기 전에 걸어가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p.115

단지 똑바로 일어선 것뿐인 그 사람의 전부를, 나는 단번에 다 보았다. 심장이 한 차례 크게 꿈틀했다. 그다음은 계속 빠르게 뛰었다. 그 사람이 왜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외까풀이 중간부터 쌍꺼풀이 된 눈도, 직선적인 윤곽도, 입술이 얇은 큼직한 입도, 잘 알고 있다. 그 하나하나로 이루어진 전체는 꼭 다시 한 번, 단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오랫동안 계속, 다시 한 번만.
--- p.141

그동안 나는 왜 이 사람이 이 방에 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항상 머리 한 귀퉁이에서 이곳과 500킬로미터는 떨어진 그 연립의 한 방에서 나와 바쿠가 아직도 함께 있는 광경을 상상해왔는데 지금 내가 이 사람과 이 방에 있다는 건 바쿠는 이곳이 아닌 다른 방에 있다는 얘기다. 바쿠가 내가 아닌 사람에게 이렇게 눈길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슬펐다.
--- p.187

“료헤이, 진짜 좋다. 아사코에게는 저런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었어.” “저런 사람이라니?” “균형이 잘 잡혔고 주위를 환하게 해주고, 뭐랄까, 아무튼 편하잖아. 아사코는 행동적이 아니라고 할까, 묘한 지점에서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편이잖아. 료헤이는 그런 걸 잘 이해해주고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준다는 느낌이 들어. 틀림없이, 아마도.”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준다, 라는 데에서 나는 웃어버렸다.
--- p.201

“사랑이란 거, 착각을 끝까지 믿느냐 마느냐에 달린 것이더라.” 히토미 씨는 중얼중얼 말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직도 망설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싱크대의 그릇을 씻기 시작했다. 히토미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닫아야지.”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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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가 감독한 [아사코]를 워낙 좋아하기에, 이 원작소설을 대하며 처음엔 영화에서 생략된 행간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읽었다. 그러다 곧 영화를 잊고 마치 처음 대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몰입하기 시작했다. 시바사키 도모카의 감각적 문장에 실린 아사코의 내면의 풍경들이 툭툭 끊어지듯 빠르게 이어달린다. 그러다 여느 소설이라면 결말을 향해 평온하게 잦아들어야 할 것 같은 마지막 10분의 1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는 안전벨트를 매야 할 정도로 폭주하며 혼돈 속으로 뛰어든다. 티 없이 지순한가 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과감하고, 대책 없이 이기적인가 하면 놀라울 정도로 성찰적인 아사코의 이 매력적인 러브 스토리 궤적은 다른 한편 기이하기도 하다. 하긴, 그 모든 사랑은 불가해한 면모가 담길 때에야 비로소 사랑일 것이다.
- 이동진 (영화평론가)
어떤 등장인물이 스토리의 마지막쯤에서 중얼거리는 “사랑이란 거, 착각을 끝까지 믿느냐 마느냐에 달린 것이더라”라는 명언 그대로, 바쿠에게 맹목의 상태가 되어버린 아사코의, 독자 입장에서는 올바른 정보를 부여받지 못하는 ‘신용할 수 없는 화자’로서의 변모를 조금씩 드러내 보여주는 작가의 필치는 웬만한 서스펜스 소설보다 훨씬 더 스릴이 넘친다. 마지막 30페이지의 전개가 독자에게 가져다주는 경악과 오싹함이라니, 정말 엄청나다.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그때마다 눈이 둥그레지고, 아사코의 섬뜩할 정도로 이기적인 모습은 독자에게 ‘이제 두 번 다시 사랑 따위 못하겠다’라고 파르르 떨게 할 만큼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 도요자키 유미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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