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차 례
005 시인의 말 _ 제1부 013 목소리 015 아픔을 넘어 빛나는 017 전화 019 폭풍 같은 시간 1 020 폭풍 같은 시간 2 021 동행자 023 두 광대를 향한 나의 슬픔 024 가고가도 025 구속과 해체 026 방랑자 027 차이에 대한 대화 029 아이의 발랄함 030 깨어진 균형 속에서 031 틈 032 신기루 034 화장하는 여자 035 사랑, 그 그리움은 036 사랑으로 _ 제2부 039 거리距離 041 여행 042 영혼 044 어느 풍경 045 추억 047 닻 049 「성城」 050 역류 051 「의자를 수선하는 여자」 053 소외 054 인사 055 사람이 남기는 건 056 백남준 057 혜화역 059 속임수 060 아이들 세상으로 061 고뇌보다 자유로운 노래를 062 수數 _ 제3부 065 바람 066 회상 067 통로 068 시를 쓰시려거든 069 어느 노인들 070 소문 071 이사동 가는 길 072 순례 074 발돋움하고 075 조화調和 076 소리 077 눈 079 웃음 080 유혹 081 우리 동네 음악선생 082 외출 083 살림 084 풀피리 _ 제4부 087 어느 여인의 탄식 088 종합병원 24시처럼 089 어느 초병哨兵 090 호네오산 092 광장 093 간間의 한계 094 아픔 095 피라미드 097 백치들 098 소양교육 100 그래도 101 나라 102 인공지능 104 이 푸른 별이 105 관계 106 그녀의 붉은 미소는 107 물러서기 109 해설 | 소란과 평정의 변증 | 김홍진 |
황성주의 다른 상품
|
순간을 쪼개면 쪼갤수록
빨라질 속도 그 블랙홀 같은 심연에는 핵분열처럼 결합했다 부서지는 소용돌이가 몰아쳐 구원의 손길 같은 아이의 검은 눈동자도 생생한 여인의 붉은 입술도 잔잔히 흐르는 음악 소리도 어이없이 다치고 무너지고 추락하는 슬픔을 넘을 수 없어 빛보다 빠른 순간들을 사락사락 밟으며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사라지는 이들 아련한 모습을 바라보다 질서가 무질서요 무질서가 질서인가 되짚다 설레는 가슴 목소리로 사랑하고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폭풍 같은 시간은 순간순간 살고 지는 욕망 끝에 흩어지는데 심장박동 소리를 가진 기억은 돌아갈 수 없는 추억들을 끌어와 그림을 그리게 하고 글을 쓰게 하고 노래하게 하고 땀 흘려 일하게 하는 동력으로 흐른다 ---「폭풍 같은 시간 1」중에서 심장박동을 타고 모세혈관까지 흐르는 피 소리 들리는 자궁에 둥지를 튼 시심詩心이 희극과 비극을 소비하며 숨 가쁘게 사는 이들을 부양해왔으나 가파른 속도로 변해가는 이 편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가혹하게 밀려나 차가운 길거리를 쓸쓸히 떠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후들후들 떨리지만 오늘이 인류 최후의 날이라 할지라도 삶과 죽음을 섬세히 담아온 문학 동네에서 자석처럼 이끌려 사랑하고 아이를 낳으며 애태우던 목소리로 아내와 자식 이웃과 두런거리고 싶고 휑하니 스쳐 멀어지는 이들을 꿈결처럼 부르고 싶다 ---「소외」중에서 |
|
시인의 말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에도 복잡한 사람의 계절은 어수선하다. 치열한 경쟁으로 성장하고 활력을 얻기도 하지만 빈부 차이 신분 차이 서열 차이로 시달리는 이들 이 있어서일까. 어이없는 사건사고들을 일으키는 이들과 일확천금을 꿈꾸는 속임수들이 있기 때문일까. 하루도 아프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가슴 달래려 누군가를 찾아가도 생각 차이 감정 차이 오해를 넘지 못하고 서먹하게 돌아서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아름다운 열정, 자유, 깃발, 예능과 재능, 너그러운 눈빛들이 한없이 필요한 집단지성의 초석이 미약해 그런 걸까. 아니면 모르는 건 바다 같고 아는 건 한줌 반딧불 같아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곳일지라도 무언가를 찾아 다시 떠나야 하는 외로움 때문일까. 속절없이 가는 시간에 뜻대로 되는 게 없는 이 숨찬 날들도 돌아보면 하룻밤 꿈결이요. 화무십일홍 같은 축제인데 왜 이리 가슴시리고 고단한지 모르겠다. 죽음으로부터 태어나 쫓기듯 사는 불안함을 마법처럼 바꿀 수 없는 한 아우성은 피할 수 없을 거다. 그래도 인정사정으로 얽혀 사는 인생사 안팎을 담아보려고 나름대로 애써온 셈이다. |
|
시인이 떠돌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떠돎을 멈추게 되는 것, 항구에 정박하는 것, 닻을 내리는 것은 한계이자 끝이며 그것은 그에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죽음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방랑하는 움직임만이 현재의 삶을 삶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향해 춤을 추듯 가는 작은 발걸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세계의 소리이자 현실의 실증인 소란은 세계를 읽고 사태를 응시하는 시의 눈은 깨어있음에서 비롯한다. 시는 침묵의 고요 속에 파동하는 소란을 감지할 때 세계 속에 드러나고 세계와 호흡하게 된다. 소란은 생의 사태이고 시적 언어가 발원하는 자리이다. 이 과정 속에서 시는 정태적인 고요나 침묵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는 역동적인 언어, 깨어있고 활동하는 말들이다. 고요 속에 소란을 숨기고 침묵 속에서 소란을 불러일으키는 분주한 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소란만이 현실의 실증, 즉 살아 있음에 관한 시적 감각이기 때문이다. 삶의 형식은 때론 기쁘고 때론 슬프기도 한 것이지만, 삶에 대한 열망과 의지 쪽으로 향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눈물 가득한 현실에서 때론 소란스럽게 생에 대한 의미를 충실하게 감각하고, 때론 고요 속에 현실을 정관하면서 슬픔의 바다를 건너 기쁨의 세계, 영원의 세계로 진입하려 한다. 인간의 삶이란“가파른 언덕을 떠”돌다가,“먼 바다를 흰 점처럼 표류”하면서 문득 생을 채우는 것이 아픔과 슬픔, 상처와 고통임을 직관하고, 저 적멸 같은 평정의 고요를 지향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황성주의 시는 이 변증의 이중 지점을 향해 있다. - 김홍진 (문학평론가, 한남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