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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의 인물
이성계는 함흥차사를 모두 죽이지 않았다 이성계는 망우리를 이름짓지 않았다 '용의 눈물'과 정릉 - 태종과 신덕왕후의 갈등 정도전이 조선을 건국했다(?) 서울 인구 증가의 주범은 한명회이다 연산군은 최고의 시인이었다 소현세자는 독살당했다 사도세자, 이렇게 죽었다 - 뒤주 속의 8박 9일 임윤지당은 최고의 여류 성리학자였다 김정호는 옥사하지 않았다 2. 조선의 역사 사육신 묘역은 공동묘지였다 조와 종은 어느 쪽이 더 좋을까? 종루 육의전은 어디일까? 성공한 해외원정은 대마도 정벌뿐이다 파헤쳐진 왕릉 - 성종릉과 중종릉의 비극 임진왜란과 민중의 참상 임진왜란은 이긴 전쟁이다 조선에 외국 왕들이 망명와서 살았다 조선시대에 재벌노비가 있었다 3. 조선의 땅 조선은 삼천리의 나라가 아니다 조선시대 10리는 4km가 아니다 백두산 정계비는 이렇게 세웠다 안용복의 활약과 울릉도 지키기 언제부터 '동해'라고 불렀을까? 메이지 시대 일본인의 울릉도 탐험기 일본은 독도를 불법 강점했다 일본의 독도 조사보고서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세계지도는 조선에서 제작했다 '대동여지도'보다 300년 전에 만들어진 '조선방역도' 일본의 비밀요원들이 한국 측량지도를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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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연산군은 많은 실정을 저질렀다. 연산군이 실정을 거듭하게 된데에는 즉위 초 자기의 생모인 윤씨가 폐비된 사실을 알고 되면서부터였으며, 그때부터 비극이 싹텄다고 할 수 있다. 연산군은 성종의 묘지문을 보고 판봉상시사 윤기무가 윤씨의 아버지인 것을 알았고, 윤시가 죄로 폐위되어 죽은 줄도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성리학자들이었던 당시의 관리들은 정치에 도움되는 경사에만 관심이 많았고 사장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사실은 연산군과 정부의 관리들이 정면으로 대결하는 양상을 띠게 했으며, 연산군에게 있어 그 탈출구의 하나가 시를 짓는 일이었을 것이다. 중략 … 인생 무상을 노래한 시 사물을 궁리하니 하늘보다 높고 인간사 헤아리니 꿈속과 같네 공명에 얽맴은 한갓 부질없는 것 길이 취해 꽃 구경함만 못하리 명예를 구하느라 수고하지 말고 모름지기 자주 술에 취하라 한번 이 세상 떠나가면 황천객 면하기 어렵나니 --- pp.5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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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역사는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정확한 역사를 접하기란 쉽지 않았다. 교훈이 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러는 동안에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축소되기 일쑤였으며, 왜곡되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현상이 뒷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역사적 진실인 양 전달되고 상식으로 굳어졌다.
--- p.3,---pp.7-13,---머리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