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청계천(개천)을 뚫어라
2. 정릉의 신장석을 묻어라 3. 청계천의 조산과 땅꾼 이야기 4. 부정관리를 가마솥으로 삶던 혜정교 5. 청계천의 출구, 장충단과 광희문 6. 서민의 골목, 피맛골 7. 무교동과 내외주점 8. 청계천 색주가 9. 서민의 술집, 목로주점 10. 장안의 명소, 명월관 11. 서울의 북촌과 남촌-청계천이 갈라놓은 남과 북(1) 12. 서울의 우대와 아래대-청계천이 갈라놓은 남과 북(2) 13. 남주북병과 남산골 샌님-청계천이 갈라놓은 남과 북(3) 14. 답교놀이와 이안눌의 로맨스 15. 포도청, 포졸, 그리고 다모란 누구인가? 16. 영도교와 정업원 17. 명월관의 애국기생 18. 건천동 충무공 생가 19. 청계천의 모산, 목멱산(남산) 20. 남산공원과 조선신궁 21. 관철동과 우미관 22. 청계천의 남쪽 동네, 구리개 23. 다방골 기생조합 24. 서울의 처녀귀신 25. 청계천변의 납작 태화정 26. 청진동 해장국 27. 살곶이 다리 28. 구리개의 도깨비집 29. 배다리 이야기 30. 서울의 다리 31.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32. 종로 네거리 보신각 근처 33. 종로 3가 이야기(1) 34. 종로 3가 이야기(2) |
|
청계천의 원류인 중학천의 서쪽 동네를 청진동이라고 했다. 이 청진동에는 근처의 동십자각 앞에 매일 새벽이면 모이는 장작 실은 지게꾼이나 마차들이 모여들어 장작을 부린 후에 비로소 아침 해장을 했기 때문에 청진동에는 해장국집이 많았다.
요즘 젊은이한테 술국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국에다 술을 넣어서 끓인 거냐고 물어본다. 그럼 해장국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청진동에 가면 먹을 수 있다고 대답한다. 따지고 보면 술국과 해장국은 같은 것인데, 술국이란 말은 해방과 더불어 없어지고 만 것이다. 해방이 된지 50년이 훌쩍 넘었으니, 젊은이들이 술국이란 말을 모를 수밖에. 지금 해장국이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청진동 골목을 연상할 만큼 한동안은 청진동 골목이 해장국 골목으로 번창한 때가 있었다. 종로 1가 서울관광호텔에서 종로구청에 이르는 약3백 미터쯤 되는 거리 양쪽으로 죽 해장국집이 간판을 내걸고 제각기 여기가 원조라고 하며 크게 번창했었다. 그때가 1970년대 통행금지가 폐지되면서 밤새워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에서 놀던 젊은 남녀가 쌍쌍이 나와 새벽 동이 트면서 청진동 해장국 골목을 찾을 때였다. --- pp.264~265 |
|
여기서 남주북병의 유래를 제대로 살펴보자. 청계천을 중심으로 남촌과 북촌의 구별을 두었는데, 북촌에서는 떡을 손꼽았다고 하는 것은 북촌의 떡이 맛이 좋거나 솜씨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북촌에는 떵떵거리는 양반이나 종로의 시전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떡을 쪄먹을 수가 있지만. 남촌에는 빈한한 선비들, 즉 남산골 샌님들이 살고 있어서 떡을 쪄먹을 수 있는 형편이 못되니까 그저 술이나 빚어서 나물 한 접시를 안주 삼아 홀짝 마셨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남산골 샌님이란 말은 남산에 살고 있는 샌님이란 뜻인데, 샌님이란 생원님의 준말이다. 남산골에는 벼슬을 못한 불우한 양반이나 과거에 떨어진 선비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이런 말이 생겨난 것이다. --- p.1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