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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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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은 1800년대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문화를 공유하는 도시였다. 당시 인구는 20만으로, 도시의 서쪽에는 영국인들과 스코틀랜드 인들이 살았고, 동쪽에는 프랑스 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또 영국계와 프랑스 계를 불문하고 가난하고 카톨릭 교를 믿는 아일랜드 태생의 노동자들은 도시의 동쪽에 있는 불어권에서 살았고, 프랑스계 사람들 중에서도 돈 많은 부자들은 도시의 서쪽에 있는 영어권에서 살았다.
이와 같이 몬트리올은 대체적으로 도시가 종교, 언어, 지역적인 면에서 양분되어 있었으며, 도시 전체를 볼 때는 부자와 빈자, 영어와 불어, 신교와 구교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몬트리올은 또 사시사철 계절에 따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와 놀이 외에도 축제와 공연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운 분위기를 온 시민이 공유한다고 해도 두 지역간에 파여있던 갈등의 깊은 골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1885년 루이 리엘의 처형은 영국계와 프랑스 계 시민들 사이에 벌어져 있던 틈을 더욱 넓혀놓는 계기가 되었다. ---p. 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