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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작품 해설 페르 라게르크비스트 연보 |
Par Fabian Lagerk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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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고개를 떨구고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사람은 전혀 힘이 셀 것 같지 않았다. 몸은 마르고 가냘팠으며, 팔은 한 번도 일을 해보지 않은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이상한 사람이다. 소년처럼 수염도 별로 없고 가슴패기에 털도 거의 없다. 바라바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p.11 바라바는 유월절에 있을 십자가 처형을 기다렸는데, 유월절에는 보통 사형수 한 사람에게 특사를 베푸는 관례가 있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 중에서 그가 뽑히다니! 억세게 재수가 좋구나! 그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 p.26 예루살렘에 내려왔던 친구들이 그가 좀 이상해 보인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감옥에 그렇게 오래 있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뻔했는데 이상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하고 받아들였다. 산적들은 그런 느낌도 곧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석방된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그렇다니 좀 이상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예전의 바라바가 아니었다. --- p.90 그의 눈은 또한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모든 창조물에 대해 느낀 그 증오심을 가끔씩 번쩍이곤 했다. 그의 눈 밑의 칼자국은 그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흰 수염 밑까지 깊숙이 파여 보였다. --- p.99 “이상하군. 그렇다면 왜 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새긴 표를 달고 있지?”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 p.134 그는 어둠 속을 걸어가면서 커다란 고독을 느꼈다. 밤길을 혼자서 걸어가거나 길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고독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라바가 온 누리에 깔려 있는 끝없는 밤 속에 혼자 있기 때문에 느끼는 고독이었다. 하늘과 땅,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혼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늘 혼자였지만 이렇게 고독을 뼈저리게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pp.152-153 단 한 번 바라바는 다른 사람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직 쇠사슬에 의해 묶인 것이다. 쇠사슬 이외의 다른 것으로 유대를 가져보지 못했다. --- p.153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서로 사랑하라고 한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이 밤에 어디에 있을까? 이 무더운 날 밤에 어디 갔을까? --- p.154 불이 퍼진다! 불이 퍼진다! 커다란 불바다가 이루어졌다. 모든 것이, 온 세상이 불길 속에 타고 있다! 보라, 주님의 왕국이 왔다! 보라, 주님의 왕국이 왔다! --- p.156 “저 사람이 주님 대신 사면받은 바라바요.” --- p.164 오직 바라바만이 아직 살아서 거기 홀로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가 늘 두려워하던 죽음이 닥쳐옴을 느끼자 어둠을 향해 말했다. “당신께 내 영혼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 p.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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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과 사랑의 의미를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영혼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믿음으로 향하는 내면의 혼란을 문학으로 그려낸 작품 《바라바》는 북유럽 문학의 거장 페르 라게르크비스트가 1950년에 발표한 20세기의 문제작으로, 스웨덴에서 출간되자마자 불어와 영어로 번역되었고, 1951년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작품이다.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의 내면 변화를 따라가면서 신, 인간, 숙명의 문제를 성찰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신앙과 사랑의 의미를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비극을 장엄하게 펼쳐냈다고 인정받는다. 바라바는 예수가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까스로 처형을 모면한 산적이다. 석방된 바라바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라게르크비스트는 상상력으로 2천여 년을 거슬러 올라 예루살렘과 로마를 넘나들며 섬세하고 담담하게 그의 행적을 따라간다. 2천여 년의 시간을 거스르는 대담한 문학적 상상력 저주받은 운명의 바라바는 어떻게 믿음의 문제를 대면하는가 바라바의 어머니는 산적에게 납치된 후 바라바를 임신하는데, 바라바를 출산하고는 죽는다. 이렇게 바라바는 처음부터 저주받은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 자라서 산적이 된 바라바는 또 다른 산적(바라바의 아버지)와 결투를 벌이다 그를 죽이고, 감옥에 갇힌다. 그러다 석방된 후 예수가 처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그 장면에 묘한 끌림을 느끼지만 그 힘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규명하지 못한 채 방황하기 시작한다. 바라바는 여러 기독교인을 만나 보지만 쉽게 그들의 믿음에 동참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일에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다시 산으로 들어가지만 다른 산적들은 늘 고뇌에 찬 바라바가 불편하기에, 결국 산에서도 떠난다. 소설은 바라바가 신앙의 문제를 받아들이기를 고민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방황과 혼란의 과정을 계속 담아낸다. 결국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다. 바라바는 어떤 사건에 휘말려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형벌을 받는다. 이제 바라바에게 믿음의 문제를 회피할 시간이 더는 없다. 그는 최후의 순간 어둠을 바라보며 “당신께 내 영혼을 드립니다”라는 말만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믿음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과정과 대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과감하고 폭넓은 질문 바라바의 마지막 말은 무수한 해석을 남겼다. 바라바는 끝내 믿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인으로 거듭났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가 말한 대상이 ‘어둠’이기 때문에 바라바가 끝끝내 믿기를 거부하고 어둠으로 대변되는 혼란을 받아들였다고 볼 수도 있다. 여운을 남기는 결말을 통해, 작가는 믿음이 단순히 종교를 가졌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믿는지의 문제라는 점을 전한다. ‘신앙 없는 신자’, ‘종교적 무신론자’라 불리는 작가의 별명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믿음의 문제를 종교로 환원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질문해 공허한 인간 내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탐색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믿음에서 혼란이 사라지고 맹목의 자리가 점차 커져가는 지금, 《바라바》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시의성을 잃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