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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정체
304호 여자 선의의 제삼자 시간의 구멍 그리운 목소리 마음의 여로 리셋 옮긴이의 말 |
Ichi Orihara,おりはら いち,折原 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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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때렸더니 조용해졌어요. 다쿠 짱, 냄새 나요.”
그날 밤, 남자아이는 코를 막으며 얘기했다. 때렸다, 조용해졌다, 그리고 냄새가 난다. 사와무라의 머릿속에서 세 단어가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떠올랐다. 그리고 세 단어가 하나로 이어져 하나의 문장을 형성했다. “때렸더니 조용해지고 냄새가 난다.” ---p.43 고령자, 희미하게 부패한 냄새. 틀림없이 노인은 죽었다. 그가 생각했던 대로다. 오렌지색 전구에 비친 채 누워 있는 인물은 미라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 이 노인에게서는 그렇게 강렬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역시, 이 가족은 노인이 살아 있다고 꾸미고 연금을 부정 수급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잡았다. 주거침입보다 무거운 죄. 민생위원으로 부정을 고발하는 거다. 악은 바로잡아야만 한다. ---p.143 “은행 같은 데 맡길까 봐? 이자도 낮고 담당 직원은 이상한 상품만 권하고……. 장롱예금이 최고야.” “하지만 누가 훔쳐 가면 모든 게 끝이에요.” “괜찮아. 금고에 넣어놨으니까.” “그렇습니까? 하지만 부디 조심하세요. 가끔 인사를 드릴 테니까. 그리고 문은 꼭 잠그세요.” (중략) 세누마는 민생위원이 돌아간 후 제자리에 서서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했다. 그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며 생각했다. 여기에 돈이 없어 곤궁한 서른여섯 살짜리 남자가 있다. 옆집에는 돈이 남아도는 할머니가 있다. 전도유망한 청년, 그리고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 이거야말로 불공평하지 않은가. 공평한 부의 분배가 이루어져야만 하는 게 아닌가. ---p.165 “거, 거짓말. 이럴 리가 없어!” 어젯밤 잠들 때 있었던 커다란 맨션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고 비빈 다음에 다시 봤다. “없어, 없다고. 어디에도 없어.” 어제까지 맨션이 있던 자리는 허허벌판이 된 채 풀 한 포기 나 있지 않았다. 초봄의 싸늘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녀의 가슴속에 침투했다. ---p.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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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이야기, 일곱 번의 서스펜스…
우리는 모두 ‘그랜드맨션’에 산다! episode 1 : 소리의 정체 202호에 살고 있는 사와무라 히데아키. 종일 집에서만 지내는 그는 언제부터인가 위층에서 나는 소음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살고 싶은 그에게 견딜 수 없이 신경 쓰이는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episode 2 : 304호 여자 303호의 마쓰시마 유카. 계약직 판매사원인 그녀는 요즘 들어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긴장한다. 누군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아닐까. episode 3 : 선의의 제삼자 직장을 퇴직하고 어머니와 살고 있는 206호의 다카다 에이지. 그는 오랫동안 윗집 아야카 양을 남몰래 사모해왔지만 그녀는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 다카다 에이지는 굳게 닫힌 문 뒤에 숨은 비밀을 추적한다. episode 4 : 시간의 구멍 백수로 곤궁한 생활을 가까스로 이어가는 세누마 도미오(203호) 이번 달 월세까지 밀리면 방을 빼라는 경고를 받은 날, 우연히 옆집 할머니의 대화를 듣게 된다. “은행은 이자도 낮고 이상한 상품만 권하고… 장롱예금이 최고야.” 그는 생각한다. 돈이라면 젊은 내게 더 필요한 것 아닐까. episode 5 : 그리운 목소리 독거노인인 다가 이네코(105호)는 빚에 쫓긴다는 딸의 전화를 받고 아무 의심 없이 거액을 송금한다. 그날 이후 맨션 곳곳에서 고령자를 노리는 보이스피싱이 속출한다. 피해를 당한 노인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내 모든 걸 아는 사람 같았거든.” episode 6 : 마음의 여로 103호의 무토 도메코는 이른 아침 찾아온 의문의 남자를 얼결에 밀어버린다. 남자는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그 자리에 수첩 하나가 남았다. 그 속에 삐뚤빼뚤 쓰인 오래전의 일기가 어쩐지 낯익다. 그는 누구일까? episode 7 : 리셋 다시 독거노인 다가 이네코의 시점.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건너편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던 그랜드맨션 2관이 보이지 않는다. 혼란에 빠진 다가 이네코는 이웃들에게 “하루아침에 2관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랜드맨션’과 그곳의 이웃들은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사와무라 히데아키의 시점으로 첫 에피소드는 시작된다. 부인도 집을 나가버리고 집에서만 지내는 그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은 이른바 사회적 ‘루저’가 되었다는 패배감과 층간소음이다. 계약직 판매사원인 마쓰시마 유카는 스토킹에 시달린다. 206호 다카다 에이지는 일본의 사회문제이자 우리나라에서도 그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한 연금 부정수급을 추적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세누마 도미오의 이야기는 청년실업의 그늘을 보여주고, 독거노인 다가 이네코 할머니의 이야기는 보이스피싱의 전형적인 사례를 그린다. 103호 무토 도메코의 이야기는 가장 잔혹하고도 집요한 폭력의 형태라는 가정 내 폭력을 생생히 묘사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건물 한 채가 통째로 사라지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랜드맨션’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 인물들을 조종하는 느낌마저 선사한다. 이처럼 각종 사회문제에 천착해온 작가 오리하라 이치의 사회적 시선을 담았으면서도 작가만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다양한 서술트릭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는, 소설적 재미로도 충만한 작품집 소설 《그랜드맨션》에서 나와 내 이웃의 오싹한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옮긴이의 한마디 《그랜드맨션》은 모두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랜드맨션’에 사는 입주민이 하나씩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한편 각각의 단편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이웃들이 다음 편에서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일곱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이루어지면서 결정적인 인물로 급부상하기도 한다. 독자들에게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각 단편에서 누누이 서술되는 글을 특별히 잘 기억해두길 바란다. 작가가 반복하는 일에는 반드시 이유와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중략) 단,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잠깐만 주의를 게을리 하면 작가가 곳곳에 놓은 덫에 걸려 허우적대다 자신의 무릎을 치는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