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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꽃잎 지듯 바람 자듯 그렇게 이팝나무꽃 피는 시절 지금은 충전중이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꽃이 피고 새가 운다 없어질 있음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마음은 그러하다 유일한 기쁨 잠시 울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모양일까 그냥 가도 되겠다 하늘다람쥐에게 길고양이의 마지막 법문 미륵고개에서 만난 여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든지 2부 길 잃은 나도 돌아서 간다 애호랑나비 문수봉에 서서 둥근털제비꽃 물소리 새에게 금강초롱꽃 새비재에서 바람새 상고대 샛별 부치지 못하는 편지 아랫골에서 아름답고 어둡고 아늑한 숲속 3부 물박달나무 폐농 얼음꽃 할매집 소한 풍경 출상 협곡에서 문구점 아재 아버지 전 상서 사랑 파묘 기원에게 고백 귀거래사 백석 시를 생각하며 통증 4부 서시 - 운탄고도 1 함백산 - 운탄고도 2 검은 비, 검은 눈, 흰 산 - 운탄고도 3 두위봉 - 운탄고도 4 백운산 - 운탄고도 5 가공삭도 - 운탄고도 6 하루 - 운탄고도 7 수해 - 운탄고도 8 진폐 병동 - 운탄고도 9 새비재길 - 운탄고도 10 심연에서 - 운탄고도 11 수갱탑 - 운탄고도 12 물한리 - 운탄고도 13 먼 산으로 - 운탄고도 14 철암에서 - 운탄고도 15 유토피아 - 운탄고도 16 노가리 - 운탄고도 17 산중 한담 - 운탄고도 18 복사꽃 - 운탄고도 19 해발 1330미터 - 운탄고도 20 애장 - 운탄고도 21 허기 - 운탄고도 22 터 - 운탄고도 23 자작나무숲 - 운탄고도 24 구비길 - 운탄고도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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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얼마나 불완전한가? 기억은 얼마나 조작되기 쉬운가? 진실은 얼마나 진실하지 않은가? 석탄을 나르던 검은 길은 트레킹하기 좋은 하늘길이 되었다. 무연탄 자욱했던 검은 풍경은 조용히 신록에 묻혔다. 항상恒常한 것은 없다. 무연탄도 무연탄을 캐던 사람도 이 고원에서 다른 것을 캐며 삶을 살아내던 사람도 시나브로 사라져갔다. 끝이 명확히 보이는 번영이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항상할 줄만 알았다. 번성과 폐광, 이주와 몰락으로 이어지는 탄전의 역사를 고원의 대자연이 침묵으로 감싸고 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이생이 궁금했을까?// 봄이 되면/ 높은 산 깊은 계곡 사이로/ 나비 한 마리 포르르 날아오른다.// 광부의 쓸쓸한 혼이/ 저렇게 처연히 환생하는가?// 저것 봐 저것 좀 봐/ 참꽃 핀 봄마다 춤을 추는/ 저 뜨거운 혼백 --- 「애호랑나비」 중에서 나를 슬퍼하지 마라. 삶의 끝에 있다고./ 끝이라고 하는 말은 망상일 뿐이다./ 나는 흙과 물에 불과 바람에 넉넉히 귀의歸依할 것이다. --- 「길고양이의 마지막 법문」 중에서 어쩌다가 나는 통증의 몸이 되었다./ 고통은 비밀스럽게 생겨나서 몸 안에/ 미궁과 같은 통로를 만들었다. […] 통증만큼 확실한 실존이 있는가./ 생생한 느낌을 오롯이 체감하는/ 은밀한 고문. 죽어가는 몸을 보며/ 삶이 선명히 보이는 서글픈 아이러니. […] 이제 안 아픈 척하기가 힘들어졌다./ 부인하지 않겠다. 내 피의 DNA는 고통이다. --- 「통증」 중에서 오 그대가 가난한 나의 나타샤가 된다면/ 아득하고 싱싱한 나의 사랑이 깊어져서/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에 북극같이 폭설이 내려도/ 나의 아가씨여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릴 수 있겠네. 나의 아가씨여.// 우리의 이야기로 긴긴밤이 짧아진다면/ 응앙응앙 우는 흰 당나귀쯤이야 없어도 그만이지./ 네가 나의 너라면 맑은 샘물 한잔으로도 충분하지./ 나의 나타샤여 영원한 나의 아가씨여. --- 「백석의 시를 생각하며」 중에서 더러 깊은숨 몰아쉬고/ 더러 심장을 부여잡고/ 더러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피어나는 저 꽃 지저귀는 저 새소리/ 오래 잊고 살았던 두런두런 사람들 소리/ 아아 이토록 간곡한 망각의 전조들// 새여 돌탑에 앉은 검은 새여/ 너는 하늘이 가깝겠구나/ 별이 가슴에 가득하겠구나 --- 「문수봉에 서서」 중에서 그래 사랑이나 우정은 나약한 자의 양식/ 마음에 무언가를 담아 본 적 없는 사람은/ 오늘도 그냥 걸어서 먼 산으로 더 먼 산으로/ 기다려 줄 사람 하나 없지만/ 싸리꽃을 보며 바위너설을 오르며/ 삶처럼 위태로운 절벽 위를 걸어서/ 청설모를 보며 멧돼지를 보며 찬샘 지나/ 민골 지나 구름인 듯 바람인 듯/ 형체조차 모를 죽음인 듯 삶인 듯/ 그 비슷한 무엇을 기대조차 않지만/ 산에 숨어들어 산에 기대어 산 사람 - 「먼 산으로 - 운탄고도 14」 중에서 어디로 가나요? 바람몰이 골에서 단숨에 올라온 한기에/ 샘물조차 얼어 버리던 물한리를 한 짐 세간 등에 지고 철부지 손 잡고/ 떠나던 당신 어디에 있나요? 투방집 툇마루에 앉아 장화를 털거나/ 삶처럼 높이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어 지상에 신의 표식을 새기던 이. --- 「물한리 - 운탄고도 13」 중에서 종일 걸어 닿은 아버지의 자취방/ 연탄재와 탄가루가 포자처럼 쌓인/ 산 중턱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방/ 들어서자 훅 풍겨오는 아버지 냄새/ 이 땅을 유리하는 어른의 고독한 냄새 석유풍로가 놓인 윗목 입 짧은 그분이/ 드시다 남긴 밥 반 공기 쉰 김치/ 한 종지 헌 신문지 위 핏빛 글씨/ 큰딸 생일 몇 년 몇 월 몇 일 큰놈/ 생일 몇 년 몇 월 몇 일 작은놈……/ 자식들 생각이 날 때 써 내려갔을/ 낙서 같은 불면의 마음을 엿보다가/ 열린 방문으로 문득 바라본 객지의 밤/ 낮선 하늘을 가르던 가공삭도 --- 「가공삭도 - 운탄고도 6」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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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헌은 니체 이상으로, 그리스인 이상으로, 고통을 응시했고, 비자연적 방법으로써 고통을 넘어가게 했다. 그렇게 그의 문학을 설계했다. 고통의 시 한 편 한 편으로 고통을 정당화하게 했고, 그를 고통의 나락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다.
고통을 긍정하고, 환희!를 - 긍정하고, 환희의 최후/고통의 시작을 긍정하고, 환희의 시작/고통의 최후를 긍정하고. 종말 고통 최후는 삶의 일부분이 아닌 삶의 전부다. 이것을 긍정하는 것은 대긍정으로서 전부全部 긍정이다. 긍정과 부정을 교차시키는 김동헌의 공력工力, 그리고 내공內功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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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탄고도 연작시들은 이 시집의 가장 깊숙한 곳을 붙잡고 있는 것으로서, 라이트모티브 이상의, 요컨대 아폴론적/디오니소스적 멜로디 역할을 한다. 아폴론의 잔잔한 멜로디가 결국은 근원적 모순 및 근원적 고통의 표상인 ‘근원적 일자Ureins’의 멜로디, 그 불협화음Dissonanz의 광포한 멜로디인 디오니소스 멜로디에 갇힌다. 이름다운 아폴론이 디오니소스에 정보를 새겨놓고 사라진다.
존재-인간-론과 존재-사물-론의 버무림을 말할 수 있다. 김동헌은 존재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불러주어 ‘객체지향철학’을 구체화하는데 성공했다. 강조하면, 존재인간론과 존재사물론을 합한 명실상부한 객체인간사물론으로서, ‘객체들의 민주주의’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 박찬일 (교수,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