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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먼저 태어난 것, 그것뿐인걸
K-장녀 교사입문기
이롬
화서나무 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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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펼치며 2

네모난 작은 창문 12
K-언니의 탄생 30
숫자1, 그리고 0.8 42
어른이 될 수 있을까? 66
스무 살, 낯선 자유 87
학생+@=교사 110
어줍지 않은 교사 127
체육복 속에 숨은 아이 149
엄마 교사의 눈으로 165
발끝을 보다 174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베이비 부머 세대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맏며느리이자 중·고등학생 남매를 둔 21년차 영어 교사이며 문학박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선설을 믿고, 사람은 ‘선’을 향해 수렴하며 살아간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중반에 들어서서 온갖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 나만의 오티움(Otium)을 찾아 늘 진행형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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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43쪽 | 128*188*20mm
ISBN13
9791199455917

책 속으로

나는 참 욕심쟁이였다.
내 어린 시절의 욕심은 가라앉을 새 없이, 늘 둥둥 떠다녔다. 마치 떨어지면 안 되는 풍선처럼 부산스럽게 떠다녔다. 거스를 수 없었고 나는 늘 발끝이 부지런했다.
--- p.15

"1시간만... 1시간만 타게 해주면 안 돼? 이거, 100원 줄게...”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동전을 낚아채고는 자전거를 건네주었다.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아파트 단지 뒤편의 길고 완만한 내리막길. 그곳이 나의 무대였다. 페달을 밟고, 넘어지고, 무릎이 깨져 피가 흘렀다. 흙이 묻은 손으로 다친 무릎을 훔치듯 닦았다. 이때부터였을까?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아도 꾹 참는 것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
--- p.28

안방 아랫목,
그 작은 생명체가 눕혀졌다. 나는 숨을 죽였다. 행여나 나의 거친 발소리가, 혹은 내 거친 숨소리가, 혹은 더러워진 내 옷깃과 이불이 마주치며 만들 아주 작은 세계의 소리까지도 그 평화롭고 성스러운 정적을 깰까 봐 조심스러웠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본 그 모습은 마치 동화책 속 한 장면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일시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 속에서 나와 동생이 느껴졌다. 참으로 생경한 느낌이었다. 마치 깊은 숲속 오두막, 일곱 난쟁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백설공주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설렘과 경외감. 나는 딱 그 일곱 난쟁이 중 하나가 되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잠든 아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작을 수가 있지?
--- p.42

"아주버님, 지영이가 글쎄... 네... 학비가 많이 비싼가요? 기숙사에 들어가면... 아... 그 정도나...”
들키지 않으려 조심하는 그 작은 목소리는, 내 귀에... "우리의 형편으로는 안 된다”는 차가운 선고처럼 들렸다. 내 꿈의 크기가, 우리 집의 형편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목소리를 통해 깨달았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 동네 폐지함에 나의 꿈이 담긴 문제집들을 소중히, 그리고 단호하게 버려두고 왔다. 그것은 나의 첫 번째 좌절이었고, 꿈 때문에 처음으로 흘려본 눈물이었다.
--- p.73

먼 훗날, 내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 섰을 때, 그리고 학급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날의 놀이터를 떠올렸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이나‘교사'라는 직함만으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진정한 권위는 목소리의 크기나 나이가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단단한 내공에서 나온다는 것을.
--- p.105

하루 생활비는 5천 원. 그 시절 5천 원이면 두 끼 식사와 교통비, 음료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자린고비처럼 돈을 모았다.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서였다. ‘0.8’짜리 세상이 아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온전한 ‘1’로서의 나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 p.122

그가 소리를 지르며 나를 몰아세우던 순간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고,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조용히 앉아 있던 우리 반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배달원을 에워싸고 외치기 시작했다. 가장 앞장선 것은, 늘 무심한 표정으로 잠만 자던 바로 그 아이였다.
"아저씨, 우리 선생님한테 왜 그러세요?”
"우리 선생님이 뭘 잘못했는데요? 똑바로 사과하세요!”
"주문 잘못한 거 아니에요! 우리가 다 들었어요! 선생님이 아저씨한테 몇 번이나 확인했잖아요!”
열일곱 살, 그 순수한 얼굴들. 나를 지키기 위해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던 그 수십 개의 눈동자. 나는 그 순간,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동생의 언니도, 어설픈 신규교사도 아니었다. 나는 온전히, 이 아이들의‘우리 선생님'이었다. 학생이라는 존재 뒤에, 신뢰와 사랑이라는 아주 작은 'a'가 더해져 비로소 '교사'가 완성된다는 것을, 나는 그날 아이들의 눈을 보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직도 선명하다, 나를 향해 빛나던 그 아이들의 눈빛이. 그 눈빛은, 내가 앞으로 교사로서 걸어가야 할 길고 긴 길 위에서, 넘어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줄 가장 따뜻한 등불이 되어줄 터였다.
--- p.157

"선생님, 햄버거 가게... 여기인데요.”
"아, 응. 근데 저기 잠깐만... 가야 할 데가 있는데, 같이 가자.”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바보같이. 나는 그대로 은하의 손목을 가볍게 잡고, 길 건너편에 있는 교복점 안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의 어색함을 조금은 씻어주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학생 하복 사시게요?”
"네... OO여고 하복 좀 보여주세요. 이 학생이 입을 거예요.”
은하는 한동안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은하야, 가서 입어봐. 괜찮아... 선생님이 사줄게. 걱정하지 마.”
아, 어떤 말을 해야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가장 직접적인 말을 그냥 뱉어버렸다. 은하는 아무 말 없이, 점원이 건네주는 하복을 받아 들고 조용히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 p.195

나는 소리쳤다. 교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누구든지 약자가 될 수 있어. 너희도 어디 가면 약자가 될 수 있다고. 지금 너희가 힘이 세다고, 다수라고 해서 한 사람을 장난감 취급하는 거... 그거 정말 비겁하고 비인류애적인 행동이야. 나는 너희가 공부 못 하는 건 용서할 수 있어. 수업 땡땡이치고 PC방 가는 거? 그래,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약한 친구를 짓밟고 그걸 즐거움으로 삼는 건... 선생님은 절대로 용서 못 해.”
--- p.220

계단 중간에 잠시 멈춰 섰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내 인생의 모든 발끝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엄마를 향해 달려가던 더러운 운동화, 아빠의 사랑이 담겼던 하얀 나이키, 고등학교 졸업식 단상의 구두, 바닷가의 맨발, 면접장의 불안한 발걸음, 그리고 교단의 단단한 첫걸음까지. 그 모든 발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의 욕심을 묵묵히 감당해 냈던 그 성실한 시간들이, 내 발밑에서 단단한 계단이 되어주었다.
‘그래, 괜찮았어. 나의 모든 순간은 틀리지 않았어. 나의‘0.8'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길의 시작이었어.'

--- p.233

출판사 리뷰

대한민국에는 유난히 ‘혼자 애써온 여자들’이 많다. 장녀로 태어나 집안의 균형을 먼저 배웠고, 가난 앞에서 꿈보다 책임을 먼저 선택했으며,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법을 일찍 익힌 여자들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수많은 얼굴 없는 여성들의 삶을 조용히 호명하는 에세이다.

저자는 장녀이자 ‘착한 딸’로, 그리고 20년 넘게 영어교사로 살아왔다. 늘 “착한 딸, 괜찮은 사람”이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참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단단함 뒤에는 설명되지 않은 슬픔과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었다. 멈추면 무너질 것 같아 달려왔고, 부족함은 언제나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렇게 살아온 한 여자가 어느 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울고 있는 ‘미처 자라지 못한 아이’를 발견한다.

이 책은 그 아이를 외면하지 않기로 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0.8의 삶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고백,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 그리고 “나도 그 길을 지나와 봤다”는 먼저 태어난 사람의 목소리는 많은 독자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특히 장녀, 맏이, 혹은 경제적·정서적 결핍 속에서도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에게 이 책은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만난 수많은 아이들, 세월을 건너 성장한 제자들의 얼굴은 이 책을 개인의 회고에 머물지 않게 한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다음 세대의 길이 되는지를, ‘선생’이라는 이름의 본래 의미를 통해 따뜻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성공담도, 극적인 치유의 서사도 아니다. 대신 오래 참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당신 자신을 안아주었나요?”

스스로를 뒤로 미뤄온 모든 여자들에게, 이 책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대답이다.

리뷰/한줄평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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