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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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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시인의 말

1부

소녀를 위한 야상곡 제1번 12
1998 14
베란다 16
발 17
우울한 산책 18
해무 20
대체로 흐림 22
수건돌리기 24
22세기 26
휘파람 28
장마 29
토끼풀 반지 30
유월 32
해바라기 34

2부

소나무 아래서 36
비 오는 날엔 희곡을 37
수심 38
관은 일인용 40
은조의 하루 1 41
은조의 하루 2 42
은조의 하루 3 43
읊는 여자 44
당신의 게으른 주말을 응원합니다 46
가스 검침 49
광장 50
유공자 52
바람이 불어오는 곳 54
청력검사 56


3부

마피아 58
주사위는 이미 60
사람이잖아요 62
동네 한 바퀴 64
미끄럼틀 65
하얀 피조물 66
비행운 68
임대 69
십자말풀이 70
엘리베이터 72
머리카락을 쓸며 74
어디로 모셔다드릴까요 76
신년운세 78

4부

절망의 힘 80
동물원 82
맡긴 적 없는 83
나의 완벽한 유서 86
기스 사과 88
잔혹 동화 90
폭설 이후 92
터미널 94
뮤지엄 96
시집 98
자판기 100
제한속도 30 101

**해설
시인의 에토스와 보살의 시혼詩魂┃유종인(시인)

저자 소개 1

군산 출생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82g | 125*188*20mm
ISBN13
9791193615607

책 속으로

소녀를 위한 야상곡 제1번

새벽 네 시
비틀비틀 열리던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는 밤마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만 건너 올라왔다

소녀가 싸움보다 싫어하는 단어는 내일이었다
괜찮아

늘 괜찮지 않았던 내일을
미루고자 밤을 지새웠건만

엘리베이터는
흰 건반만 건너지 못했다

문이 열립니다

소녀를 품고 자란 그녀는
검은 건반의 끝에서
춤을 춘다

*

수건돌리기

세수를 마친 나를 기다리던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수건

돌이라고 환갑이라고
이사를 했다고
사람들은 수건을 돌린다

수줍은 표정으로
내 뒤에 수건이 없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죽기 살기로 수건을 쥔 채
친구의 등을 노려보다
다음 사람을 찾아 헤매다
웃어버렸다

왜 하필 수건이었나
팬티도 양말도 아닌

수건으로
기념 말고 추모할 수는 없을까

죽은 지 며칠 지났더라
이제 열 손가락으로도 부족한데

*

토끼풀 반지

어른들 몰래 진달래 맛보고 봉숭아 찧고

왼쪽 볼이 멍든 언니가
네 번째 손가락에 상처로 엮어준 토끼풀 반지

풀과 나무는 눕고
언니와 나도 언덕에서 웃었다, 울었다

한 번 더 묶어줄게
손가락은 사랑할 때만 접어야 해

어느 날 네 번째 손가락은 사라지고

24시 해장국집 불빛 아래서 마주친 언니
작업복을 벗자마자 목숨 대신 묶어왔을 머리를 질끈,
손목에 남은 붉은 실 두 줄

토끼풀에서 술 냄새가 나

야, 넌 그게 아직도 기억나?

나체 같은 말
입 밖으로 흐르기도 전에 이미 젖었고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욕설
삼켜도 삼켜지지 않는 한숨 사이를 걸었다

우리 집 가서 눕자
거긴 좁잖아

*

자판기

낡은 자판기 앞
검지를 꾹

토막 난 채로
굴러떨어지는 표정

허리를 숙여 줍거나
얼굴을 거꾸로 들이밀어
히죽

비싼 표정은 이미 품절

오늘은
이 표정으로 살아야지

*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모서리가 닳아 어느 쪽으로 굴려도

달력은 빠르게 넘어가는데
루비콘강은 흐르지 않고

어제와 같은 식탁, 같은 커피
다른 것은
사회면 1면

결과는 계속
다시
6
6

드론에 잡힌 병사의 얼굴
태어나자마자 국적을 잃은 표정
숫자에 잊히는 우리의 이름
굴러다니는 목청들

카이사르가 쥐어준 빨간 점 여섯 개
그 사이 재난과 재앙

애쓰는 당신의 손을 잡아챈다

어차피
어느 쪽으로 굴려도

*

수심

욕조에 갇혔다. 혼자 놀던 양수로 들어가면 먹먹한 메아리가 들리고 밖에서는 뾰족한 소리, 묵직한 소리, 날카로운 비명이 스며든다. 귀가 막힐수록 소리는 더 선명해진다. 어린이 잠수 대회에서 일등하는 상상을 한다.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사랑을 배웠다. 라벤더 향 비누를 물에 풀면 거품이 생긴다. 투명하고 터지고 가볍다. 이건 분명 사랑이다. 거품에서 피가 흘렀지만 숨을 참는 데 성공했다. 기뻐야 하는데 왜 자꾸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지.

오리 장난감이 물을 먹으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나도 물속에서 울지 않을 수 있고 이젠 물 밖에서도 그렇다. 어린이들의 숨 참고 울기 대회가 있다면 이번엔 일등이다.

실수로 줄을 당겼다. 괴물이 나타나 그 많은 물을 꾸역꾸역 삼켰다. 두 손으로 막았으나 손은 귀를 막고 있어 어느 대회에서도 일등을 하지 못했다. 나는 배수구에 끼어 있는 머리카락만큼 지저분해진다. 나를 두고 떠나는 것들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 내장 속 물기가 메마를 때까지, 차가운 뱃속에는 용서만 남았다.

용서는 언제나 욕으로 발음된다.

출판사 리뷰

■ 시인의 말

다음에 또 만나

이 말의 깊이가

나를 아프게 했다
나보다 먼저 내 눈물을
목격한 자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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